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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페미니즘 교육] "엄마가 없는 사람도 있지"
 
윤아름·서울 청량초 기사입력  2018/09/13 [22:31]

 

식탁 위에 놓여있던 핸드폰 화면에 발신자 '엄마'가 뜨며 벨이 울리는 것을 보고 7살 아이가 흠칫 놀란다. 엄마의 핸드폰에 엄마가 전화를 걸다니. 아이의 놀란 표정의 의미를 알아본 나는 웃으며 전화를 받는다. 아이도 이제야 눈치를 채고 웃는다. 통화를 마친 후 잠깐의 혼란을 겪은 아이가 귀여워 장난을 걸고 싶어졌다. "너만 엄마 있는 줄 알았어? 엄마도 엄마가 있다고! 세상에 엄마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항상 일상의 대화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고, 이 정도면 가족에 대한 문장으로 적절한 건가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받아친다. "엄마 없는 사람도 있지. 엄마가 저번에 아빠가 아기 낳은 이야기 해 줬잖아." 아뿔사 아이의 말이 맞다. 나의 실수를 깨닫고 바로 사과를 했다. 나는 아이에게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남성 비티(미국인)가 몸에 남겨두었던 포궁(자궁)으로 임신하고 출산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이는 인지적 기억을 넘어 이미 세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내면화된 기억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다.
 

턱수염을 기른 남자의 얼굴로 임신한 여성의 불룩한 배를 갖고 있는 사람 '비티'. 이 사람을 엄마라 불러야 할까? 아빠라 불러야 할까? 사람은 여성, 남성 둘로 나누어지지 않으며, 엄마 혹은 아빠만 둘인 아이, 또는 엄마나 아빠 한 명과 사는 아이, 다양한 행태의 가족과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이어서 두 명의 아빠와 사는 스텔라가 부모 초대의 날에 학교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담은 그림책 '스텔라네 가족(미리엄 비 쉬퍼)'도 읽어주며, 일상의 대화로 시작하여 주제에 맞는 그림책 읽기까지 일련의 교육을 자연스럽게 해냈다고 내심 뿌듯했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아직도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가족의 다양성을 떠올리다니.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에게 또 한 수 배우는 순간이다.
 

처음 아이에게 성교육, 성적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는 사실 조금 긴장하기도 했다. 아이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혹시 낯설고 이상하다며 표정을 찌푸리지는 않을까 하는 살짝 굳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이가 특별할 것도 없다는 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긴장은 사르르 사라졌다. 끊임없이 세상을 탐색하며 왕성하게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가고 있기에 그 어떤 것이라도 금세 내면화할 수 있는 말랑하고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아이와 성, 젠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것은 이제 그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대화의 즐거움을 교실에서 아이들과 실컷 누리기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다. 
 

4학년 사회 교과에서 가족의 다양성을 가르치는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세상의 모든 가족(알렉산드라 막사이너)'을 함께 읽고, 여러 동물 친구와 사람이 한 집에 모여 사는 둘리 만화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실제로 선생님 주변에 혼자 사는 친구,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사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 또한 가족의 형태라고 말하며, 요즘에는 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여자끼리 혹은 남자끼리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한 아이가 "선생님, 우리 아빠가 동성애하면 지옥 간다고 했는데요?"라고 묻는다. 전혀 나쁜 의도 없이 평소 갖고 있던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선생님의 말이 충돌을 하니 궁금한 마음으로 질문을 한 것이다. 해맑은 표정으로 혐오 발언을 하는 상황을 보니 마음이 더욱 쓰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은 혐오표현이며 잘못된 편견이라고 분명히 가르쳐야 할 교사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아, OO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그런데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동성애에 대한 나의 입장을 분명히 내세우는 순간 닥쳐올 학부모의 항의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최근 대선 토론회나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들에게 덫을 놓듯 의도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이 TV를 통해 각 집에 생중계되고 있다. 과거에 통일교육, 노동교육하는 교사를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공격했던 수구 언론 및 세력들은 이제 변화된 시대 속에서 지지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빨갱이 대신 동성애를 주적으로 바꾼 듯, 성적 다양성을 교육하는 페미니스트 교사를 공격하고 있다. 성에 관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고, 삶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교사의 중요한 역할임에도 이것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는 현실이다.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가 시급하다.  
 

세상을 향해 열린 자세로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타고난 말랑한 마음이 굳기 전에, 혐오를 배우기 전에 학생들에게 젠더 감수성 교육을 당당하게 하고 싶다. 여성, 성소수자가 성별로 인해 차별 받지 않고 평등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또 그러할 권리를 보장하는 페미니즘 교육을 시작하는 그곳이 우리 사회의 혐오를 멈출 수 있는 길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내면 깊이 자리 잡은 빛나는 젠더 감수성을 보고 우리가 더 많이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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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13 [22:31]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