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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전임 이유로 해직된 후 1년 동안 수업하는 꿈만"
[인터뷰]이민숙 교사...'법외노조 철회'12일째 단식중
 
박근희 기사입력  2018/09/07 [15:12]
▲   학생과 학교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던 이민숙 교사는 하루빨리 교단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최승훈<오늘의 교육>기자

 

해직교사 이민숙. 현재 이 교사의 사정을 설명하는 7글자다. 이름 앞에 붙은 해직교사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를 단 채 3년이 흘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결성된 이듬해인 1990년에 조합원으로 가입한 이 교사는 사실 30여 년 활동하며 꽤 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당차고 강한도 그 중 하나. 많은 이가 이 교사를 당차고 강한사람으로 기억한다.

 

이 교사는 교단에 서자마자 전교조에 가입했다. 대학교 때부터 마음먹었기에 행동으로 옮기는데 고민이나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찾아간 지회사무실에서 내뱉은 첫 마디가 조합원으로 가입하려고 왔어요.”가 아닌 저는 무슨 일을 하면 되죠?”였다. 그 후 분회장, 지회 사무국장, 대변인, 본부 교육선전실장까지 초고속 승진(?)’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인터넷 브랜드를 따 메가패스라는 별칭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실제로 이 교사는 빠르고 강한이미지를 표현하는 메가패스마냥 앞서 있었다.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살리는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고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을 땐 마음을 함께한 교사들을 대표해 시국선언에 나섰다. 7차 교육과정 개정 때는 전국을 돌며 날카롭게 문제를 짚어내고 명쾌하게 설명하며 중요성을 알려 나갔다. 그해 열렸던 전국일꾼연수에서는 앙코르 발제를 하며 ‘7차 교육과정 스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교사의 앞에는 늘 징계와 해직이 놓여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었던 교사를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세월호참사 시국선언 때는 구속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 서야 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와 관련한 2심 재판에서 패소한 2016년에 해고는 현실로 다가왔다. 당시 전임으로 나와 있던 이 교사는 그럼에도 전교조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라는 질문에 망설임도 없이 돌아온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전교조를 지켜야 하니까요.”

 

1986년에 대학교 새내기가 된 이 교사는 민주화운동이 뜨겁게 일어났던 그 시절에도 소위 운동권은 아니었다. 대구가 고향이고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 생각한 모범생이었다. 동맹휴업을 외치는 선배에게 손을 들어 집회를 하더라도 수업을 다 듣고 해야 한다.”라며 따져묻던 장학생이었다.

 

그런데 사실 전 소심해요.”라며 운을 뗀 이 교사는 해직 이야기를 꺼내자 눈물을 글썽인다. “2016년에 해고된 후 삭발을 했어요. 그때 교선실장인 저는 당시의 상황을 객관화해 속보를 내야 했으니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느낄 겨를도 없었죠. 그러다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1인시위를 했는데 한 시간 내내 울었어요. 경복궁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보니 예전에 답사왔던 추억이 떠오르며 이즈음이면 역사는 무엇인가를 가르칠텐데 나는 왜 머리를 깎고 거리에 서 있는 걸까 싶었거든요.”

 

매일 수업일기를 썼던 역사 교사, 생활지도가 제일 재미있다는 선생님, 아이들과 함께할 때가 제일 좋다는 스승이었기에 이 교사 역시 징계와 해고가 두려웠다. 그래서 이민숙은 고민하지 않았을 거야, 겁나지 않았을 거야,”라는 말에 서운함이 밀려온다. 그러나 해고된 후 1년 동안은 수업하는 꿈만 꿨다는 이 교사는 다시 소망한다. 법외노조 취소를 요구하는 단식농성 12일째. 곡기를 끊어서라도 돌아가고 싶은 교단으로, 매일 한뎃잠을 자면서도 만나고 싶은 아이들을 만날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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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07 [15:12]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