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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교단생활] 팔딱팔딱 살아있는 아이
 
조향미 · 부산 만덕고 교사 · 시인 기사입력  2018/08/30 [23:35]

 

예전보다 훨씬 성숙하게 무르익은, 

그러면서 또 예전의 패기를 

잃지 않은 제자를 만나는 일은 

교사에겐 큰 복이다. 

지금 학교의 풋내기들도 저렇게 

잘 익어갈 날 오겠지.

 

18년 만에 민주를 만났다. 호주에 살고 있는 제자인데, 두어 달 우리나라로 여행을 온 참에 나에게 연락을 했다. 

 

민주는 호기심이 많고 팔딱팔딱 살아있는 아이였다. 그 시절에는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혔는데 고교 2학년 때 제인 구달의 평전을 읽고 난 뒤였다. 점심시간에 내 자리로 오더니 쪽지를 한 장 던지듯 놓고 사라졌다. 

 

"선생님 저 결심했어요. 동물조련사가 될 거예요"

 

아이쿠 이게 무슨, 책 한 권으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나. 책을 의미 있게 읽은 것은 고마우나 걱정도 되었다. 평소에 법대를 가겠다고 했고 정의감이 높던 아이라 그것도 괜찮다는 생각도 했었다. 불러서 물어봤다. 

 

"진로를 너무 즉흥적으로 결정한 거 아냐? 법대 간다며."

 

"그건 사실 부모님 생각이고요. 저는 개의 눈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해요. 동물과 함께 살고 싶어요."

 

그런데 그 애를 3학년에 담임으로 맡은 거다.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꿈은 변하지 않아서 수의학과를 가겠단다. 예나 지금이나 점수가 상당히 높은 학과다. 

 

민주는 1학년 때부터 만만찮은 학생이었다. 자기주장이 강해 교사들이 힘들어했다. 

 

그날 우리 학교에서 애들에게 해 준 즉석 강의를 들어보니, 학창시절 자신을 내치지 않고 품어준 선생님이 세 분인데 그중에 나는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고, 덕분에 지금처럼 잘살고 있단다. 절대 길들여지지 않는 그 아이의 도전정신, 탐구정신을 나는 좋아했지. 여름방학 때 가출하여 혼자서 윤구병 선생의 '변산 공동체'에 가서 이틀 동안 문간에서 자다가 겨우 어른들의 허락을 받아 더운 여름 한 달 농사일을 했던 아이였으니. 그때 내가 수업시간에 '변산 공동체'에 관한 글을 읽히긴 했지만, 그 애는 새로운 배움을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받아들였다. 고분고분하지 않았으나 키울 맛이 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학교의 의미 없는 관습들에 도전하다 지쳤는지, 3학년이 되어서 자퇴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보충과 야자를 모두 빼 줄 테니 이왕 다닌 학교 졸업은 하라고 설득했다. 그리하여 학년부장의 눈총을 받아가며 유일하게 정시 등하교를 하는 학생이었다. 그리곤 목표로 하던 수의학과를 당당히 합격해서 못마땅해하던 선생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줬다.

 

그렇게 들어간 수의학과에서 민주는 또 실망을 했다.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학과를 온 학생들은 소수이고 모두들 돈벌이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그 뒤에 학교를 다녔다 쉬었다 하며 아주아주 많은 나라를 여행했단다. 50개국 정도를 다녔다니. 그때 지금의 남편을 일찍부터 만나서 오래 연애했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다. 수의사 생활을 하며 한국에서 남편이랑 얼마 동안 살다가, 자식에게 한국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아서 호주로 가서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예전보다 훨씬 성숙하게 무르익은, 그러면서 또 예전의 패기를 잃지 않은 제자를 만나는 일은 교사에겐 큰 복이다. 지금 학교의 풋내기들도 저렇게 잘 익어갈 날 오겠지. 제자들이 쑥쑥 자라나니 선생들은 황혼으로 저물어가도 아쉬울 것 없다. 그나저나 한국은 언제 아이들을 키워보고 싶은 나라가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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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30 [23:35]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