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참으로 오만하다

곽노현·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전 서울교육감 | 기사입력 2018/06/25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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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참으로 오만하다
곽노현·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전 서울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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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5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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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봐도 지금은

법외노조 전교조에 대한 깊은 공감과 위로의

공식 언어가 필요한 때다.

법외노조 상태 해소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한 때다."

 

시기와 형식, 내용이 모두 그렇다. 박근혜 노동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를 직권취소할 수 없다는 청와대 발표 말이다. 정권출범 후 1년도 더 지나 노동부 장관이 전교조 지도부를 만나준 지 단 하루만이다. 사회부총리도 아니고 청와대 대변인이 직접 발표했다. 완충지대를 패싱하며 타협 가능성을 스스로 봉쇄했다. 논쟁적 법리를 내세워 대법원의 판결이나 국회의 입법 변경을 기다려야 한다고 못 박았다. 공감과 위로의 언어는 나오지 않았다. 전교조는 더 못 기다리겠다며 지도부 삭발식으로 즉각 고강도 투쟁을 예고했다. 

 

한 달 전에 제기된 재판거래 의혹의 최대피해자이자 2주 전에 시도교육감을 10인이나 배출한 전교조가 지방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법외노조 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요구하고 나서리라는 건 얼마든지 예측 가능했다. 구체적인 재판거래 의혹문건까지 드러난 상황이라, 책임 있는 정부라면 벌써부터 선거 이후 대화방안을 마련해놓고 물밑으로 접촉했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랬던 징후가 안 보인다.

 

정권출범 이후 청와대와 사회부총리, 노동부 장관은 법외노조 전교조 지도부와 상호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지속적 대화와 접촉에 인색했다. 전교조의 고통과 피해에 공감하며 먼저 손을 내밀기는커녕 이상하리만큼 만남 자체를 회피해왔다. 5만 명 전교조 교사의 노동기본권을 전적으로 부정한 중대현안인데도 촛불정부의 노동부 장관이 지금까지 딱 한 번 전교조 지도부를 만나줬으니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랴. 

 

반면 지난 19일의 첫 회동에서 노동부 장관이 직권취소 가능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청와대는 전광석화의 스피드로 움직였다. 대변인 발표에선 문재인 청와대 특유의 따뜻함, 공감, 배려, 존중의 언어를 약에 쓸래도 찾아볼 길이 없다.

 

전교조의 직권취소 요구는 신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방편일 뿐이다. 직권취소가 아니더라도 전교조가 수용할만한 방안이 왜 없겠나. 전교조는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안타까움과 미안함, 인정과 격려, 치하와 기대의 따뜻한 언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내 기억에는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사회부총리도 노동부 장관도 언제 한번 따뜻하고 품격있는 공감과 인정, 치하의 언어로 공개적으로 법외노조 전교조를 위로해준 적이 없다.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보라. 전교조는 박근혜 정권의 표적탄압 1호가 돼 4년 내내 온갖 고통과 희생을 치렀다. 그래도 지방선거까지 참고 기다렸다. 그리곤 10명의 교육감을 냈다. 전남과 울산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뒀다. 그사이에 박근혜와 양승태 간 재판거래 의혹의 최대 당사자임이 드러났다. 전교조 조합원들의 피가 끓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한 거 아닌가. 

 

그 사이에 법외노조 통보가 위헌·위법·부당 조치라고 판단한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중앙지방법원장이 되고 김명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됐다. 촛불혁명 덕분이다. 전교조 교사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열정적으로 촛불을 들었다.

 

어떻게 봐도 지금은 법외노조 전교조에 대한 깊은 공감과 위로의 공식 언어가 필요한 때다. 법외노조 상태 해소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한 때다. 교육감 10인을 배출한 전교조의 저력을 인정하고 치하하며 교육혁명을 위한 파트너십을 요청하고 다짐해야 할 때다. 청와대는 완전히 거꾸로 갔다. 

 

형식과 시기, 절차와 내용 어느 한구석 봐줄 만한 데가 없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만에 하나 청와대가 대변인 발표 이전에 사회부총리와 본격 협의가 없었다면 사회부총리가 항의성 사표라도 내야 할 판이다.

 

심지어 남북 사이, 북미 사이도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정부가 전교조의 신뢰를 얻는 데 필요한 어떤 추가적 대화나 타협 노력도 없이 일방적으로 직권취소 불가방침을 천명한 처사는 청와대가 대범하고 유연한 법사 정권보다 편협하고 신경질적인 율사 정권으로 기울 위험성이 다분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지금에라도 사회부총리가 중심을 잡고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정치적 동기에 의해 시작돼 무리와 과잉이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다시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법외노조 전교조의 고통과 애로에 주목하고 대법 판결이 나오기 전에라도 정부 차원에서 법외노조 상황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가시적 조치를 해야 한다. 전교조 지도부와 공감적 차원에서 물밑대화를 거듭하며 신뢰를 구축하고 만일 일정한 절차가 필요하다면 그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교육감들의 협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성급한 개입으로 사태가 꼬였지만 진지한 대화로 해결 못 할 바는 아니다. 먼저 이명박근혜 정권 내내 전교조가 청와대와 국정원, 노동부로부터 부당하게 당해온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위로해야 한다. 그럼에도 교육감 10명을 만들어낸 전교조의 저력과 기여를 흔쾌히 인정하고 교육개혁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함께 할 것임을 밝혀야 한다. 내가 전교조 지도부라면 대통령이나 사회부총리가 진솔하고 품격있는 언어로 전교조에 따뜻한 공감과 위로, 인정의 뜻을 공개적으로 전할 때 비로소 다시 대화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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