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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의 위기와 교육권의 위기(1)
 
진보교육연구소 비고츠키교육학실천연구모임 기사입력  2018/06/20 [02:35]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들이 힘들어합니다. 혹자는 교권을 형편없이 추락시키고 그 자리를 학생인권 담론으로 채웠기 때문이라고 원망합니다만 제대로 된 교권이라 할 만한 것이 잠시라도 있었는지 의문이고 문화적 취향조차 간섭받는 상황에서 학생인권이 신장되었다고 보기도 애매합니다. 다만 교사들이 매우 힘겨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만은 명백한 팩트입니다. 

 

현실이 시궁창이라 해서 아이들을 마구 패고 쫓아내던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비고츠키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도약으로 나아가기 위한 '위기' 국면이라는 초긍정적 입장을 가지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문제가 발생한 뿌리를 발생적 관점에 따라 추적해나갔을 겁니다. 

 

지금 교사들이 겪는 난관은 국가 교육 정책의 소산입니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 초기부터 교사는 '동네북'이었습니다. 파시즘적 교육체제가 양산한 문제들을 학생과 학부모 위에 교사들이 '군림'하기 때문이라 선동했습니다. '꼰대'로 살라더니 '서비스공급자'로 변신하라는 겁니다. 신자유주의 정권은 교사들을 욕받이 무녀로 이용했습니다. 교사 공격이 연일 이어졌으며 아무나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교원평가와 성과급은 적대적 교육관계의 제도적 발판이었습니다. 교사들은 권한은 없이 책임만 한가득이고 엄청난 노동 강도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을 넘어 대들기까지 합니다. 그것도 일상적으로. 

 

아이들은 왜 이러는 걸까요? 질풍노도 시기 '기성세대와 사회에 대한 막연한 반항심'으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가장 유력한 원인은 '발달의 문제'입니다. 교사에게 함부로 하는 아이들은 교사에게만 그러지 않습니다. 친구들에게는 더 함부로 합니다. 여러 또래에 맞는 기능들이 결여된 채 몸만 커진 아이들입니다. 미발달이 문제인 것입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어린이 청소년 발달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사회적 관계이며 특히 성인과의 관계이고 상호작용입니다. '어른 없이 자랐다'는 생각이 딱 듭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정책과 각종 제도로는 교사가 학생들과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고 주도해나가기 어렵습니다. 발달지연과 발달왜곡 현상을 보이는 아이들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마련하고 실천할 여유가 지금 교사들에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보다 많은 일들이 처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다시 시작은 '교사'들로부터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구조를 교사들이 함께 나서서 건설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직은 생계수단 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여느 헬스러운 직장과 다름없게 될 테니까요. 우리의 미래는 몸만 큰 어른이들로 가득해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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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0 [02:35]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