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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강좌] 법원의 잃어버린 믿음에 대해
 
장종오 변호사 · 법률사무소 해별 기사입력  2018/06/20 [02:30]

 

'교사들에게 들려주는 교양강좌'에서는 선생님들의 숨은 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교사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지식·교양을 보내주세요(chamehope@gmail.com) 조합원들의 인문학 소양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1981년 최초의 여성으로 임명되어 25년간 미국 연방대법관으로 재직하였던 산드라 데이 오코너는 "우리는 의견을 관철시킬 군대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법원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 대중의 신뢰에 의지할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법치주의가 확립되어 있는 나라라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법원이 믿을 것은 '법원의 공정함에 대한 신뢰' 뿐이다. 그런데, 우리의 법원이 옳고 그름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에 의하여 결정된다면? 아니 실제 그런지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믿기 시작한다면? 그것만으로 법치주의는 붕괴다. 

 

그래서 법관에게는 법정 밖의 일에 있어서도 실정법 위반을 따지기 이전에 공정성에 의심을 야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법관이 진행 중인 다른 법관의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고, 언급하고, 나아가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어떨까? 

 

2000년 7월 12일 미국 뉴햄프셔 하원은 주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한다. "주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당 지도자가 관련되어있는 사건에 대하여 하급심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소송 진행 상황을 확인하였다"는 것이 탄핵 사유 중 하나였다. 결론은 그와 같은 사유의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탄핵 되지 않았지만, 대법원장이라도 하급심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소송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1969년 8월 일본 삿포로지방재판소에서 항공자위대시설 건립을 반대하며 보안림 지정해제의 집행정지를 구하는 주민들의 사건을 맡고 있던 민사1부 재판장에게 지방재판소장인 선배가 편지 한 통을 보낸 것이 문제가 되었다. 

 

"머리말을 생략함을 용서 바랍니다. 먼 길 출장 다녀오시느라 노고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의 사건에 대해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별지와 같이 급하게 씁니다. 귀형의 한 선배의 조언으로서 이러한 생각도 있구나 하는 정도라도 좋으니 일단 보시고…"로 시작하는 편지였다. '정도를 넘어 섰지만 재판 잘하라는 선배의 충정'이었다는 명분으로 '주의처분'을 받고 전보로 종결된 건이지만, 정부와 군대가 관련된 사건이었던 만큼 지금도 그 '배후'가 의심되고 있는 스캔들이었다.

 

최근 대한민국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에서 생성된 것으로 나온 문서들, 현직 지방법원 또는 고등법원의 부장판사들이 작성한 문건들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공정함을 위한 절제가 아니라 불공정한 결과를 위하여, 특히 정치권력의 이해와 여론의 방향에 촉각을 세우고 처신을 고민한 작업들이 알려졌다. 재판도 하지 않는 판사들이 "각하는 부적절하고, 바람직한 기각 이유, 인용 이유, 일부 인용 이유"까지 작성하고 있었다. "법원이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지방의원의 의원직을 상실시키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방안"도 판사들이 검토하고 있었다. 이것이 실제 판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문건을 작성하고 방안을 검토한 판사들이 다른 판사들에게 전화나 편지는 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갖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근로자들의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서 청와대가 대외적으로는 입장표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대내적으로는 "재판 과정에서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최대한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으로"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면, 대법원이 재판과정에서든 그 직후든 청와대와 접촉하고 교감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법원 판결에 마치 어떠한 의혹이라도 있는 양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하여는 당해 사건들에 관여하였던 대법관들을 포함하여 대법관들 모두가 대법원 재판의 독립에 관하여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되었습니다."라고, 2018년 6월 15일 "대법관 일동"은 성명을 발표했다. 의심스럽게 해서 지금 곤란하게 되었지만 '재판은 재판대로 공정하게 했으니 믿어야지 쓸데없는 이야기는 삼가라'는 취지로 읽힌다. 판사가 소설(小說)을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듯 재판에 직접적인 개입, 간섭을 하지 않았고, 실제 재판을 한 사람들이 독립하여 판결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범죄가 되느냐는 항변으로도 들린다. 판사의 윤리는 법원이 정한다는 폐쇄성도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모두가 인정해야 할 점은 오코너 대법관이 말한 대로 "법원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 대중의 신뢰에 의지할 뿐"인 법원이 이제 "자기 확신" 이외에 의지할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믿습니까?"라고 묻고 그저 "믿습니다."라고 외친다고, 잃어버린 믿음이 다시 복원되지는 않는다. 실정법 위반이 없으니 문제될 것이 없고, 의혹을 양산하는 자들의 입이 문제라고 할 일도 아니다. 우리 헌법은 국민에 의해 직접 구성되는 의회로 하여금 법관을 탄핵으로써 파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국민들의 지혜로 우리의 법원을 바로 세워야 할 엄중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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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0 [02:30]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