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씩씩한 '가시내' 이야기가 필요하다

김새롬 · 경기 승지초 병설유치원 | 기사입력 2018/06/20 [02:06]
페미니즘 교육
더 많은 씩씩한 '가시내' 이야기가 필요하다
김새롬 · 경기 승지초 병설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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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0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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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에 관한 국민청원에 정부가 초중고 인권교육 실태를 조사하여 체계적인 통합인권교육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답하였다. 애석하게도 유치원에 관한 이야기는 빠져있었다. 교육의 첫 출발점이자 인격의 기초를 형성하는 유치원 시기를 놓치고 시작한 교육이 과연 페미니즘을, 인권을 담아내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 교육은 유치원 시기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수많은 히어로들의 등장은 유치원 어린이들도 흥분시킨다. 그들이 보고 열광하는 히어로들은 아이언맨, 슈퍼맨, 베트맨, 스파이더맨 등 각종 '맨(man)'들이다. 악의 무리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수많은 영웅을 보고 주먹을 힘껏 들어 올리며 나도 자라서 그런 '맨'들이 되겠노라고 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자 어린이들은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여자 어린이들도 남자 어린이들만큼의 꿈을 꿀 수 있도록 선택지가 같아야 하지 않을까?

 

'가시내'라는 동화는 씩씩한 여자아이 '영웅'에 관한 이야기이다. 처음 동화의 표지를 보며 아이들과 동화의 내용을 상상해 보았다.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전쟁터에 가지 못한 여자아이가 갓을 쓰고 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자 여자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하였다. 수없이 보아온 남자 영웅서사에 성별만 바뀌었을 뿐이다. 동화를 다 듣고 장군이 여자아이를 전쟁에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힘이 약해서요.", "여자애라서요."라는 대답들이 나왔다, 실제로 여자아이들은 '모두 다' 힘이 약하다고 생각하니?"라는 질문에는 게임활동에서 남자아이를 이겼던 여자아이의 이름을 말하며 "○○는 힘이 세고 달리기도 빨라요."라고 말하였다. 나는 아이들이 분명 경험을 통해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많은 어른들의 입을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만들어 내고 요구하는 씩씩하고 힘이 쎈 남자아이, 고분고분하고 얌전한 여자아이를 익숙해하며 당연하게 여기기에 이르렀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자주 상기시켜주고 사례를 소개하고 계속 이야기하며 내면화된 고정관념의 틀을 부숴주어야 한다. 동화를 듣고 난 느낌을 이야기 나눌 때 아이들은 "갓 쓴 애가 멋있었어요.","또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수업 이후에도 열심히 동화를 들여다보고 키득거렸다. 나는 그날의 상기되어 있던 여자아이들의 빛나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여자 어린이들에게는 더 많은 씩씩한 '가시내'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어린이들은 무엇이든 꿈꿀 수 있다.

 

누리과정 '우리나라' 생활주제로 활동할 때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남자 위인들이 있는데 수많은 여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하고 생각한 적 있지 않은가? 나 역시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적어도 우리의 '지금'이 있기까지 여성도 같은 영향력을 끼쳤음을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옛 그림 주제에서는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멋지게 키워낸 '엄마'이기 이전에 얼마나 뛰어난 그림 솜씨를 지닌 여성이었는지를 소개해주었다. '초충도'를 감상하고 나만의 초충도를 꾸며 보고, 그림 속에 나오는 여러 곤충들과 식물들로 빙고 게임을 하며 아이들이 옛 그림을 친숙하고 즐겁게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를 빛내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주제에서는 같은 직업군의 남성과 여성을 같이 제시해 주었다. 남자 축구선수로 박지성 선수를 소개한다면 여자 축구 선수로는 지소연 선수를 소개한다. 같은 직업을 가진 다양한 사람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을 사진자료나 영상으로 준비하여 직업과 성별은 관련이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어린이들은 무엇이든 꿈꿀 수 있다.

 

대단한 페미니즘 교육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교실 속의 환경이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을 구분 짓는 놀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사용한 언어가 여자는 '예쁘게','공주처럼', 남자는 '멋지게','왕자처럼' 자라게 하지는 않는지, 제공하는 교육 자료가 성차별적이지 않은지를 살피고 고쳐나가는 것이다. 페미니즘 교육은 교사의 변화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우리는 나아질 것이며,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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