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3일 교육감 선거 등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보름가량 앞둔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해봤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공무원·교사의 정치 참여 보장'을 이미 현실화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는 31일부터 시작되는 선거운동 기간에 교사들도 각 시·도의 교육감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을 각자의 기준으로 비교하면서 지지하는 후보를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교육감 후보의 공약이 현실적인지, 아닌지를 분석하고 특정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파악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지지 후보를 결정할 수 있는 지렛대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여전히 '상상'이다. '대통령' 이후 다시 '교육감'이라는 중요한 선거를 맞았지만, 교사들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공직선거법 60조에 의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로 규정된 탓이다.
충남의 한 교사는 "학교현장과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주는 교육감을 뽑는데,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을 못하니 답답하다."라면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교사들의 의견과 입장을 충분히 말해야 교육개혁에 대해 활발히 논의할 수 있다."라고 했다.
자기검열도 여전히 되풀이된다. 매번 선거 때마다 '이런 것을 해도 되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자신만의 온라인 공간에 후보의 공약을 비교해서 올려둘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의 선거 관련 글을 공유해도 되는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글에 대해 '좋아요'나 '♡'를 누를 수 있는지 등등.
경북의 한 교사는 "도대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투표참여 독려 정도나 할 수 있는 것 같다. 교사가 아닌, 공무원 신분이 아닌 사람들이 부럽다."라면서 "식물인간이 생각난다. 정치적 식물인간."이라고 말했다.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려는 정부나 국회의 움직임은 굼뜨다. 정부는 자신의 국정과제를 국회의 처리에 맡겼다. 국무조정실 국정과제 관리관 관계자는 "국회를 중심으로 여야가 논의해서 결정을 하면 따르는 것이 입장"이라고 했다. 정부가 교사의 정치 참여 보장을 위한 관련법의 정부 개정발의안을 지금까지 준비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국회의 논의가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공무원·교사의 정치 참여 보장 당론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관련법 개정안도 10명 정도의 소수만이 서명해 발의됐을 정도다. 현재 국회에는 박주민 의원과 이재정 의원(이상 더민주),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무원과 교사는 정당에 가입하거나 후원할 수 없고, 선거운동 등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금지하고 있는 문제의 법조항을 바꾸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공직선거법과 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정치개혁소위원회에 지난 1월 31일에야 회부됐다.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2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정및인사법 심사소위원회에 상정만 됐을 뿐 논의는 진척되지 않았다.
가장 '폭력'적으로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처리한 것은 2008년 주민직선제로 처음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민주시민 후보였던 주경복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송원재 전 전교조 서울지부장 등 전교조 서울지부 관계자 6명이 교단을 떠나야 했던 사안이다.
▲ 2012년 주경복 서울교육감후보 선거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교사직을 상실한 교사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부를 규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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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후보는 특수목적고(특목고)와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확대 반대, 교장선출보직제, 교무회의·학교운영위원회 의결기구화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경쟁교육 반대와 학교 민주화' 방향인 주 후보의 공약은 전교조의 요구가 다르지 않았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해 '교육감 선거 관련 후보자의 선거비용은 정치자금법에서 규정하는 정치자금에 해당하지 않는다. 교사·공무원도 후보에게 선거비용을 대여해 줄 수 있다'는 유권해석에 따라 주 후보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조합원과 교사들에게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전화를 걸었다.
주 후보의 낙선으로 교육감 선거는 끝났지만, 이들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조전혁 의원이 '전교조 선거 개입설'을 제기하며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100여 명의 이메일 자료를 최장 7년 치까지 압수수색하는 등의 저인망식 수사를 벌인 검찰은 이들을 기소했고, 법원은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등을 들어 이들에게 2012년 11월 교사직을 상실하는 형을 최종 선고했다.
이 판결로 이들은 아직까지 '거리의 교사'로 살고 있다. 송 전 지부장과 김민석 전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은 오는 2022년 11월까지 공무담임권과 선거권,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김학한 전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 등 4명은 지난해 11월에야 공무담임권과 선거권, 피선거권을 회복했을 정도다. 이들은 2010년 이후 곽노현 전 교육감과 조희연 전 교육감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민주진보교육감 탄생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 전 지부장은 "적어도 교육감 선거에서만큼은 교사들의 자유로운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것이 교육의 발전을 위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나아가 직무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폭넓게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사가 당당하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나 올까. 그 시기가 문재인 정부 임기 안이기를 교사들은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