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마당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우리 가족은 전교조 조합원입니다"
전교조 결성 29주년 | 특 | 별 | 인 | 터 | 뷰 |
 
박근희 기사입력  2018/05/15 [13:52]

 

▲ 전교조 결성 때부터 조합원으로 활동해 온 이종숙 교사(왼쪽 첫번째)와 발령 3일 만에 조합원으로 가입한 노병섭 교사(왼쪽 두번째)는 부부의 연을 맺었고 이제는 두 딸 노나미(오른쪽 두번째), 노나현(오른쪽 첫번째) 교사도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 사람이 마주했다. 전교조 초창기부터 조합원으로 활동해 온 두 교사와 이제 막 조합원이 된 두 교사다. 베테랑(?)과 새내기의 차이일까. 뭔지 모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베테랑 조합원들과 달리 새내기 조합원들에겐 긴장감이 감돈다. 그런데 이들, 가족이라 한다. 매일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한집안 식구라는 얘기다. 다섯 식구 중 네 명이 교사, 그리고 모두 전교조 조합원이다.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먼저 어떻게 조합원이 됐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조합원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엄마인 이종숙 교사다. 1988년에 교단에 선 이 교사는 입시로 학생들이 자살하는 현실에서 '교육 현장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는 전교조 결성 전. 이 교사와 같은 생각을 한 교사들은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를 만들어 한목소리를 내며 '교원 노조 결성'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갔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전교조 결성식에 참가했던 이 교사는 '엄혹함'으로 당시를 회상한다. "결성식이 열리는 전날 정읍에서 많은 교사가 서울로 향했어요. 저도 그중 하나였죠. 하지만 서울행은 그야말로 첩보 작전이었어요. 경찰의 검문과 정보원의 감시가 심해 잠도 흩어져 지인의 집에서 자야 했고 연락책이 알려준 대로 이동해야 했죠. 결성식 장소도 계속 바뀌었는데 제가 속한 팀은 연세대로 갔어요. 다행히 검문이 없어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할 수 있었죠."
 

그 날은 1989년 5월 28일이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교조는 그렇게 세상에 등장했다. 남편인 노병섭 교사는 결성 후 대량 해직 사태가 일어나던 무렵인 1989년 9월에 조합원이 됐다. 발령 3일 만이었다. 각각 정읍지회와 전주·완주지회에서 활동한 두 사람은 얼마 후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혼 후 노 교사는 전교조 전북지부장, 본부 사무처장 등 중책을 맡다 보니 해직 교사 명단에 '단골손님'처럼 이름을 올렸다. 2016년 시국선언으로 여전히 해직 상태인 노 교사는 현재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을 맡고 있다.
 

'가장 선호하는 직업 부동의 1순위'인 교사. 그러나 두 교사가 걸어온 길은 누가 봐도 평탄치 않다. 부모님을 보며 자란 두 딸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원망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과 달리 유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놀러 가는지 알았어요."라는. 여기에 이 교사가 추임새를 넣는다. "집회에 데리고 간 건데 너희들은 몰랐던 거지. 전교조 어린이학교에서 63빌딩도 가고 그랬으니까."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마치 모태신앙처럼 어렸을 때부터 전교조와 함께한 두 딸은 교사대회를 비롯한 많은 집회에 참석하며 시쳇말로 '프로참석러'가 됐다. 우여곡절은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있었다. 이번엔 '일제고사 거부'였다. 학생과 학교 간 성적으로 '줄 세우기'라는 비판을 산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데 첫째 나미 씨와 둘째 나현 씨는 자연스럽게 참여했다. "일제고사를 거부한 학생은 전교에서 저 혼자였어요. 너무 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당시를 떠올리는 나미 씨의 말이 끝나자 나현 씨는 빙그레 웃으며 "저도 전교생 중 유일하게 시험을 거부한 학생이었어요."
 

집회 현장은 놀이터, 일제고사 거부는 시험을 안 보는 특권(?)쯤으로 생각한 두 딸이 부모님에 이어 교사가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전교조 가입도 그렇다. 예비교사 연수에 가입 신청과 홍보에 나선 전교조 담당자는 '어릴때 보다 더 알던 선생님'이었다. 두 딸 모두 특수교육 교사의 길을 걷게 된 데에도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함께한 봉사활동이 영향을 줬다.
 

첫째는 중등 특수교육 교사 2년 차, 둘째는 유아 특수교육 교사로 올해 3월 발령받았다. 교사로 일해 보니 부모님의 고단함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는 두 딸. 2년 차인 첫째는 "처음엔 행정업무로 엄마에게 하루에도 몇 번이나 도움을 구했어요. 그래서 수업준비나 학생과의 시간이 모자라는 점이 힘든데 부모님도 이런 점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한다. 교육청으로 첫 발령 받은 둘째는 학교 현장에서 일할 날을 손꼽고 있다.
 

일하다 든 궁금증이나 고민이 생기면 두 딸은 이제 선배 교사인 부모님에게 묻는다. 메신저가 소통 창구다. '교장선출보직제는 뭐냐'는 질문부터 행정업무 처리까지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얘기를 메신저로 주고받는다. 부모님이 30여 년 동안 교사로 일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들으며 학교 현장이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노 교사는 고개를 흔들며 답한다.
 

"학교 현장은 많이 달라졌어요. 30년 전 학교는 모든 게 교장의 명으로 이뤄졌는데 전교조가 '민주교육법 개정'을 외치며 제도적으로 바꿔냈죠. 촌지 없애기나 무상급식실시도 하나의 성과이고 혁신학교로 견고한 입시경쟁교육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이고 정치적인 탄압 대상이에요. 그런데 몇 년 전 보수 언론사에서 진행한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단체'조사에서 전교조는 정당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중요한 역할을 해 왔음을 보여줬죠."
 

전교조의 역사와 함께한 부모와 그 뒤를 따라 전교조를 알아가는 두 딸. 29년 동안 학교 현장과 교육의 현실은 더딘 듯 그러나 빠른 듯 변화해 가고 있다.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이 공존하며. 이러한 현실이 앞으로 네 교사와 전교조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9년 후, 두 딸이 결혼해 태어난 자녀들이 교사가, 전교조 조합원이 된다면 그때는 바뀌지 않은 것보다 바뀌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끝내고 늦은 저녁을 할 때, 이 교사에게 전화가 왔다. '왜 자기만 빼고 밥을 먹느냐'는 아들이 볼멘소리를 한다. '너는 조합원이 아니잖아'로 응수하는 이 교사. 이들이 보여줄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행보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8/05/15 [13:52]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