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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미니즘 수업
 
임이랑 · 경기 수원칠보고 기사입력  2018/05/15 [13:11]

 

1. 3월 초, 모둠을 구성하고 모둠이름과 구호를 정하는 시간.
 

남학생 네 명으로 이루어진 한 모둠의 이름은 '김치', 구호는 '보이루'였다. 왜 '김치'라고 지었냐고 물으니 김치를 좋아해서란다. 아무래도 '김치녀'가 떠오르지만 김치를 좋아해서 '김치'라고 지었다는데 할 말이 없다. '보이루'는 무슨 뜻이냐고 하니 그냥 인사란다. 혐오표현임을 직감하고 '건전한' 말이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또다시 할 말이 없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일단 넘어갔다.
 

퇴근 후에 검색해보니 '보이루'는 '1인 방송 BJ의 이름+하이루'라는 뜻이지만 사실은 '여성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하이루'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했다. 한창 유행 중인 여성혐오 표현이었다. 내 직감이 맞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수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김치'와 '보이루'를 쓰는데 교사가 그냥 넘어가면 '그래도 되는구나' 생각하고 이것이 용납되는 분위기가 되기에 어떻게 짚고 넘어갈지 생각하느라 잠을 설쳤다.
 

수업이 시작되고, '김치'라는 모둠이름과 '보이루'라는 구호를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드는지 전체 학생들에게 물었다. 몇몇 여학생들이 "김치녀가 떠올라서 기분 나쁘다", "보이루 진짜 듣기 싫다"는 말을 분명히 해주었다.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니 다행히도(?) 네 명의 남학생들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학기 초부터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하면 앞으로 내 말은 아예 안 들을 학생들도 보여 전략적으로 거기까지는 나가지 않았지만 앞으로 계속, 심화 발전시켜, 수시로 할 것이다. 페미니즘 교육을.
 

2. 여학생이 다른 여학생을 질투한다.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학생과 사귀기 때문. 질투에서 그치지 않고, 그 여학생이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고 루머를 퍼뜨린다.
 

고등학교 영어교과서 1과의 내용이다. 너무나도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이고, 이성애중심주의적이다. 몇몇 학생들이 이 내용을 해석하면서 "이딴 년들은 패야 돼."라고 말한다. 헐. (위의 '보이루'반 과는 다른 반이다.) 이 학생들과 상담을 해보니 자신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일상적으로 습관적으로 혐오표현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본문 해석을 끝내고, 이 내용이 과연 'politically correct' 한지에 대해 텍스트비평 활동을 하였다. 무의식적으로 '역시 여자의 적은 여자야'라는 성차별적인 사고를 확대재생산할 수 있다며 학생들은 교과서 본문이 문제적이라고 지적하였다. 교과서는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던 학생들이 문제의식과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게 되었다.
 

3. 교과서에 영화 <The Help>의 대본이 실려 그 내용을 수업시간에 해석하면서 여러 종류의 차별에 대해 다루었다. 인종차별에서부터 나아가 성, 나이, 장애, 학력, 출신 지역 등에 따른 차별에 대해 글로 쓰고 토론하면서 학생들의 높은 인식 수준과 멋진 언어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동지애를 느꼈다.(이 수업사례는 페미니즘교육 자료집에 실었다.)
 

Thanks to the courage of these ordinary women, the world learned about the unfair treatment suffered by African-American maids.
 

Reading this novel, I realized that ordinary people can change the world.
 

본문 속 이 두 문장을 해석하면서 #MeToo운동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미투가 뭐야?"라고 묻는 학생들도 있어 동영상을 보며 설명한 후, <The Help>와 #MeToo Movement의 비슷한 부분, 내 주변 사람이 미투를 한다면 어떻게 지지할 수 있을까, 미투 없는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등에 대해 써보게 했다.
 

대부분 학생이 훌륭한 글을 써 내려 갔지만, 일부 학생이 '미투는 메갈과 같은 잘못된 페미니즘에 의해 변질됐다', '피해자가 내 가족이 아니면 전혀 도와주지 않을 거다'와 같은 말도 써내어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 내가 미투해도 지지하지 않으려나. 미투할 게 많은데. 내가 용기 내어 나의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말하면 메갈이라고 하려나. 속상했지만 저 학생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앞으로도 계속할 거니까, 페미니즘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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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15 [13:11]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