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헛된 투쟁은 없다"

권혁소 · 인제 원통고 · 시인 | 기사입력 2018/04/1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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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헛된 투쟁은 없다"
"나는 교육노동자"… "거시적 안목으로 노조 자주성 갖길"
권혁소 · 인제 원통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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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1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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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육노동자"… "거시적 안목으로 노조 자주성 갖길"

 

▲ 2018년 3월의 원영만 전 위원장     

 

다른 현장 다른 연대

"전교조의 힘은 정권의 탄압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려는 참교육에 있으며, 그 핵심은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자주성과 단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조합이 자주성을 포기하고 자본과 정권에 휘둘리면 노동조합이라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힘들수록 단결해야 힘이 나고 어려울수록 연대해야 희망이 생깁니다."

 

2016년 8월 30일, 전교조 강원지부가 마련한 '조촐한' 정년퇴임식에서 원영만 동지가 밝힌 퇴임사 일부다. 원영만 삶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원영만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위원장 재직 시(2003~2004)의 선거 관련 발언을 문제 삼은 정권으로부터 2006년 '국가공무원법과 선거법 위반'으로 '당연하지 않은 퇴직'을 당했다. 시효도 끝나고 '진보 교육감'이 들어서서 복직의 희망을 품었지만 2012년 돌연 위암 확정 판정을 받았다. 위를 몽땅 잘라내는 대수술이었다. 그는 끝내 교단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정년을 맞았다.

 

그를 만나러 가는 3월 하순, 설악 서편은 골골이 겨울 폭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가 사는 동해 바닷가, 설악산 동편 자락엔 목련과 벚꽃이 벙글고 그의 집 마당에도 앵두꽃이 피고 있었다. 그는 자주색 점퍼를 입고 맞아주었다. 작년 집들이 선물로 서각한 당호 '원영만 황선희의 너나고루'가 그때 그 자리에 의연해서 반가웠다.

 

"뭔 질문이 이렇게 어려워요?" 미리 보낸 인터뷰 질문지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왜 그러세요, 아마추어처럼. 그런 건 다 폼이잖아요. 좀 있어 보일까 해서 그런 거예요."

 

그는 정년퇴임 후 양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양양군 강현면의 '대문터' 마을인데, 전교조에서 이런저런 직함을 걸고 일했던 동지들 여섯 가족이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마을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 마을을 '전교조 마을'이라 부른단다. 공동체 이름도 있는데 '모두고루'다. 원영만 동지는 '모두고루'의 촌장이다. 그의 아내 황선희 동지는 부촌장쯤 돼 보였다.

 

그는 1980년 3월, 철원의 김화중학교에서 첫 교육노동을 시작했다. 86년의 '5·10 교육민주화 선언' 참가로 그해 9월 영월 녹전중학교로 강제 전보를 당해야 했다. 부단한 투쟁 끝에 다음 해 9월 다시 살림집이 있던 원주로 복귀하지만, 그것도 잠시 89년에는 전교조 결성으로 해직과 동시에 구속까지 된다. 초대 강원지부장이 된 이래 전교조 10대 위원장은 물론 퇴임할 때까지 단 한 해도 조직의 역할을 외면한 적이 없다. 직함도 다양하다. 분회장, 지회장, 지부장, 위원장···. 물론 사이사이에도 지회 교선부장, 지부 조직국장, 정책실장 등 잠시도 조직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 위원장 시절에는 그 유명한 '네이스 투쟁'으로 두 번째로 구속이 되었으니 그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도 네이스 투쟁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있는데, 당시를 한 번 회상해 본다면요?"

 

"당시 가장 큰 우려는 '학생들의 개인 정보가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당시 투쟁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은 현재의 네이스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무지막지해졌지요?"

 

"그때 구속도 되었었잖아요. 영등포 경찰서 앞에서 석방 요구 투쟁하던 일이 생각나는데요."

 

"그랬었지요, 네이스 반대 연가투쟁으로…. 세월이 많이 지나서 그런 건지 요즘은 활동가들도 '나이스'라고 부르는 것 같더라고요?"

 

"어떠세요, 그런 얘길 접하시면?"

 

"마음이 조금 짠하지요. 세상에 헛된 투쟁이란 없잖아요. 시대가 지나면 색이 바래기는 하지만 혁명도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잖아요? 지난한 투쟁의 산물인데···. 단순한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자존심이기도 했거든요."

 

그랬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Neis'를 굳이 '나이스'로 부르려는 정부의 삐뚤어진 '음운정책'에 맞섰던 것이 '네이스 투쟁' 아니었던가. 네이스를 나이스로 부르는 만큼 많은 세월이 흐른 것일까?

 

▲ 2003년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전개된 네이스 폐기를 위한 원영만 전 위원장의 단식 농성 투쟁 모습     

 

▲ 2001년 강원지부는 단체협약 이행을 촉구하며 창립 이후로 최초로 삭발, 단식, 장기 농성 투쟁을 전개했다     

 

두 번째 옥살이와 두 번째 해직

2년 여에 걸쳐 대법원까지 갔던 두 번째 해직에 대해 물었다.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을 때 했던 시국선언을 문제 삼은 정부가 국가공무원법과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겼던 것. 그는 해직 당시 재직하고 있던 신철원중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인사를 남겼다.

 

"왜 쉬운 길을 두고 힘든 길을 가느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찌 세상 사는 길에 쉬운 길만 있겠습니까. (중략) 교육의 희망을 위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11월 14일, 대법원 판결로 해고된 신철원중학교 교사 원영만 드림." - <동행, 노동자 부부의 세상 건너는 법(원영만·황선희, 2016, 한내.)>

 

해직 후 그는 철원을 떠나 춘천으로 거처를 옮겼다. 철원은 원영만 황선희 부부에게는 연애, 결혼, 출산의 기쁨과 해직과 투옥의 기억을 묻은 또 다른 고향이다. 춘천으로 옮긴 후에도 그는 '피해자'로서 강원지부 조직국장과 강원교육노동운동사 편찬위원장을 맡아 강원지부 20년 사(史)인 <당당한 교육노동>을 펴냈다. 그런 그에게 2012년 느닷없는 병마가 찾아왔는데 '위암'이었다. 자기 몸을 조직의 몸으로 생각하고 엄격하게 돌보는 이가 그였는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였다. 2006년 해직된 이후 제대로 된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까닭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동안 누적된 피로의 결과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위를 거의 다 드러냈다. 결혼 31주년 기념일을 병원에서 맞았으니, 얼마나 서늘한 시간들이었을까. 원영만이 아니라면 극복할 수 없는 일, 그는 끝내 암과의 투쟁을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노동 공부하는 노동자

옛날 얘기를 나누는 사이 황선희 동지가 물치항에서 떠 왔다는 생선회를 내왔다. 원영만 동지도 술을 한잔 받기는 했지만 입술을 적시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먹는 양이 조금 늘었다"며 해맑게 웃는 얼굴이 예전과는 다른 평화를 가져온다.

 

"위원장으로 당선되었을 때 다들 좀 놀라지 않았었나요? 한마디로 비주류였잖아요?"

 

"그렇지요, 비주류…. 결선투표까지 가서 당선이 됐는데 아마도 조합원 대중들은 합법화 이후 전교조가 좀 물렁해졌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말라는 당부로 받아들였죠."

 

"옛날 조합원과 요즘 조합원, 딱히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뭔가 좀 달라지지 않았나요, 어떤 생각이 드세요?"

 

"예전엔 공부를 참 많이 했죠. 노동자 공부지요. '성직 이데올로기'가 학교에 꽉 차 있을 때니까 '나는 교육 노동자다' 하고 자기 정체성을 고백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함께 읽는 책들도 그 주제가 엄청 넓었어요. 창립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시절이었지요. 지금도 지부 연수에 참석을 하고는 있는데 조합원 토론을 보면 관심사가 자기 교실, 자기 업무, 자기방어로 너무 좁아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다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조금 더 거시적 안목으로 노동운동을 했으면 싶더군요."

 

"시골에서는 어떻게 지내세요?"

 

"일주일에 한 번은 어머니를 뵈러 춘천에 나가요. 이제 봄이니까 밭도 갈고 해야죠. 우리는 공동 농사라 감자, 고구마, 옥수수 이렇게 세 종류만 심어요. 푸성귀는 각자 텃밭에 조금씩 심고요. 명예 조합원으로 지회 모임에도 나가고 퇴직조합원 모임에도 나가고…, 풀들과 연대하며 잘 놀고 있어요."

 

그의 텃밭에도 산마늘, 눈개승마, 참나물이 뾰족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뒤란에서 딴 백표고를 기름장에 찍어 먹었는데 달고 고소했다. 

 

물린 저녁상 설거지를 하던 황선희 동지가 '남성' 방문객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설거지는 원래 원 선생 담당인데 오늘은 인터뷰했다고 제가 봐주는 거예요." 

 

'모두고루'를 나와 미시령으로 올라서는데 운전을 해 준 전 양구지회장 김재곤 동지가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된 것 같던데, 아는 거 있어요?" 한다. 하여 검색창을 열어보니 사실이다. 

 

"전교조는 해직교사 아홉 명을 절대 버릴 수 없어서 법외노조의 길을 가고 있는데 참 아쉬운 합법화네…."

 

다시 '모두고루'의 촌장 원영만 동지가 정년 퇴임식에서 했던 말이 목울대를 뜨겁게 치고 올라왔다. 

 

"노동조합이 자주성을 포기하고 자본과 정권에 휘둘리면 노동조합이라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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