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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기만 한 공주는 이제 그만! <종이 봉지 공주> 함께 읽기
 
임혜정 · 초등성평등연구회 기사입력  2018/04/18 [23:34]

 

<종이 봉지 공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주'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주인공이 등장하여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국어 7단원 '일이 일어난 차례를 살펴요'에 "일이 일어난 차례를 알고 이야기를 꾸밀 수 있다"라는 수업목표와 함께 이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수업을 학년에 상관없이 언제든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수업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해 보았다.

 

등장인물의 말풍선을 칠판에 붙이고, 어느 것이 공주의 대사이고 어느 것이 왕자의 대사일지 추측하여 발표해 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종이 봉지 공주>를 읽은 학생들이 꽤 많아서, 책을 이미 읽은 학생들에게는 알고 있는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도록 미리 주의를 주었다. 책을 안 읽은 학생은 대부분 "구해주세요!"가 공주, "구해줘야겠어!"가 왕자의 대사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성이 불타고 로널드 왕자가 잡혀간 장면에서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라고 물었다. 무서울 것 같다, 울 것 같다는 대답이 많았다. "엘리자베스 공주가 무섭다고 울기만 했을까요?"라고 물었더니, 대부분 아니다, 왕자를 구하러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엘리자베스 공주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냐고 물으니, 아이들은 멋지다, 대단하다, 닮고 싶다고 말한다.

 

로널드 왕자를 엘리자베스 공주가 구해주는 장면에서, 로널드 왕자가 엘리자베스 공주에게 뭐라고 말했을지 질문했다. 반갑다, 고맙다고 대답할 것 같다는 대답이 많았다. 로널드 왕자가 오히려 엘리자베스 공주에게 핀잔을 주는 장면을 읽어주고, 여러분이 엘리자베스 공주라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또 어떤 대답을 했을지 물으니, 아이들이 저마다 분개해서 정말 화가 날 것 같다, 나는 너 같은 친구 필요 없다고 말하겠다고 외친다.

 

책을 다 읽은 후, 엘리자베스 공주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려보고 잘라서 종이인형으로 만들어 보았다. 얼굴에는 검댕이 묻고 뒤집어쓴 봉지는 구깃구깃한, 공주에 대한 고정관념에 전혀 맞지 않는 공주를 아이들은 신나게 그렸다. 

 

마지막으로 <신데렐라>의 장면 바꿔 써보기를 했다. 아이들이 주어진 장면의 문제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신데렐라의 장면은 다소 과장해서 각색했다. 이때, 엘리자베스처럼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신데렐라를 비난하는 것처럼 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데렐라는 다른 사람의 말에 착하고 친절하게 대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꼭 착하고 친절한 것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당당하고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는 엘리자베스였다면, 이런 때 뭐라고 말했을까요? 여러분이 엘리자베스가 되어 생각해 봅시다."

 

마지막으로는 학생들이 스스로 엘리자베스 공주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역할극을 해보았다. 상황 배경지에 직접 만든 종이봉지공주 인형을 대고, 다른 학생들이 상대방 대사를 읽어주면 스스로 학습지에 쓴 내용을 읽는 방식이다. 내 의도를 그대로 따른 답뿐만 아니라, 재미있고 기발한 생각과 본질을 꿰뚫는 말까지 깜짝 놀랄 만큼 다양한 발표가 많이 나왔다. 한 장면을 선택해서 역할극을 하도록 했는데, 다른 장면도 연기해보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아 쉬는 시간까지도 발표가 이어졌다. 

 

평소 소극적이거나 우물쭈물하던 학생들까지도 신나게 웃으며 발표를 했다. 어른의 말에 따라야 한다, 착해야 한다, 친절하게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듣다가 당당하고 분명하게 '싫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큰 소리로 해보는 것이 성별을 떠나 모든 학생들에게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부모를 포함하여 수없이 많은 어른들로부터 "예쁜 공주님이네", "공주님이 이렇게 칠칠치 못하게 옷에 음식을 흘리면 안 되지"와 같은 말을 들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고정관념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는 아이들을 보면, 교사가 단지 이런 말을 조심하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이런 말들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교사의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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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18 [23:34]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