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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카드 한 장 들고 이야기 꽃 '활짝'
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한다고요? 교과수업에서도 해요!
 
김상정 기사입력  2018/04/06 [19:00]

 

서울 중랑구 양원역에 내리면 바로 보이는 학교가 있다. 송곡여고다. 도서관은 교실 5칸 규모로 무려 100평이나 된다. 이 곳엔  반전이 있다. 들어서자마자 왼쪽에는 의자에 앉아서 차도 마시고 얘기도 나눌 수 있는 곳, 오른쪽에는 영상도 보고 노트북으로 검색도 하고 6개 모듬으로 나누어 수업도 할 수 있는 커다란 공간이 있다. 수업이 시작되면 이 곳은 폴딩도어로 닫히면서 독립공간으로 변신한다. 50여종의 보드게임교구가 200개가 넘게 있다. 도서관을 찾는 이들이 보드게임을 할 수 있도록 활용방법도 안내되어 있다. 학교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책으로 놀이를? 지난 1월에 열린 전국참교육실천대회 학교도서관분과에서 발표된 첫 번째 주제였던 '책놀이로 시작하는 만남', 보드게임을 하면서 이야기 나누다보면 첫만남에도 이야기꽃이 활짝 핀다. 

 

 

첫 만남. 반전의 연속, "어? 이게 뭐지?"

왁자지껄, 우왕좌왕, 시끌벅쩍, 3교시를 시작하는 오전 10시 30분경 송곡여고 도서관풍경이다. 올해 입학한 1학년 9반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수업하는 게 낯설다. 이덕주 교사는 먼저 출석부를 손에 들었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도서관을 메웠다. 학생들은 여섯 명씩 모듬을 나눠 앉았다. 모듬별로 주어진 건 그림카드 한 뭉치. 처음 보는 낯선 카드. 간단한 게임규칙을 말하고 바로 게임이 시작됐다. 각자 6개의 카드가 주어졌고 그 카드그림이 뭔지는 알 수 없다. 첫 질문은 "송곡여고하면 떠오르는 것은?" 학생들은 각자 한 장의 카드를 고민 끝에 모듬원에게 보인다. 그 때부터다. 수업시작 전,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반전이다. 왜 이 그림을 선택했는지 얘기를 하고 모듬원들은 그 얘기를 경청한다. 그 다음 질문부터는 모듬원들이 정했다. 나머지 카드를 손에 쥐고 고민 끝에 친구가 내놓은 그림 카드를 바라보고 또 왜 그 카드를 선택했는지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큰둥했던 학생들도 이야기에 집중한다. 수업 중반이 되자 환호성과 박장대소가 잇따른다. 이 교사는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쉴새없이 모듬별로 돌아다니면서 게임의 운영을 돕는다. 어느새 수업종료 신호가 들리자 일제히 아쉬운 탄성을 내지른다. 한시간 동안의 반전이다.

 

자연스레 질문이 쏟아지는 교실

흔히들 독서가 간접경험이라고 한다.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이 교사가 생각하는 독서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독서교육은 어떤가.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독서의 목적은 실력향상에 맞춰져 있다. 지식을 습득하고 똑똑해지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거다. 어른들도 학생들도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고 생기부에 들어가는 독서활동기록을 통해 독서스팩이 된다. 독서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타인을 이해하고 소통하고 경청하는 거라면 보드게임이야말로 이미지를 독서하는 거다. 텍스트만 독서가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친구들이랑 소통한다. 친구들이 왜 이 카드를 우리학교라고 생각하는지 왜 이 카드를 담임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얘기하고 듣다보면 서로를 이해하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독서는 이렇게 확장된다. 인터넷에서 글을 읽는 것도 영화를 보고 영화를 비평하는 것도 큰 범주에서는 독서다. 그림을 보면서 자기 얘기를 하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한 독서다. 

 

보드게임은 수업시간에 쓰는 훌륭한 교구다. 질문카드가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누구랑 만나는지부터해서 단순한 일상을 질문한다. 인생에 대한 질문카드에는 난이도가 있다. 보통 이런 질문은 평상시에는 잘하지 않는다. 내가 왜 사는지, 행복이 뭔지, 궁극적인 인생의 길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것을 가치있게 생각하는지 서로 물어보고 되돌아보는 거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질문을 던지면 성인들도 어려워한다.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해서 깊이있게 자기를 되돌아보는 질문으로 나아가게 하는 교구다. 만남에 이은 소통과 공감이 있는 시간이다. 이런 교구들은 각 교과로 확장된다. 역사, 음악, 미술, 과학, 지리 전과목에 걸쳐 이미 나와있는 교구를 활용해 수업할 수 있다. 올 상반기각 교과에서 도서관을 활용한 수업예약이 이미 꽉 차 있는 연유다. 

 

 

학생들이 그린 그림으로 보드게임을

가장 좋은 건 직접 만드는 거다. 송곡여고는 서울시에서 유일한 미술중점학교로 그림 그리는 학생들이 많이 입학한다. 지난 해에는 보드게임을 하면서 서로의 삶을 나눴던 2학년 학생들이 직접 그림을 그렸다. 240여 장의 그림이 있고 이미 스캔작업도 마쳤다. 두꺼운 종이에 인쇄하고 코팅해서 보드게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 그림에는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 이들의 삶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보드게임 도구다. 직접 만들고 그것을 나누고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내어놓는 시간이야말로 독서교육의 궁극이다. 이 교사가 처음 '딕싯'이라는 보드게임을 알게 된 건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졸업한 도서반 친구들이 선생님이 좋아할 거라며 권한 카드다.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 그림을 들고 이야기나누면서 몰랐던 제자들의 삶을 더 깊이 알게 됐다. 그때가 책을 누구보다도 많이 읽었던 학생과의 소통이 어려워 절망했었던 때였다. 그림카드를 매개로 한 보드게임은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독서였다.   

 

점심 시간, 학생들 한 무리가 도서관에 우르르 몰려왔다. 이들은 금새 그림카드 한 뭉치를 집어들고 한 탁자에 모여 앉았다. "주제어를 받고 저희가 생각하는 대로 저희 생각에 맞게 그림을 공유하면서 애들끼리 서로 얘기를 들어보면 웃긴 것도 많고 생각을 나누니까 재밌었어요. 다른 수업은 그냥 선생님이 원래 책 속에 있는 거 설명을 해주는데 이거는 저희가 저희 생각을 얘기할 수 있어요" 어제 처음 보드게임을 해봤던 1학년 10반 학생 6명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도서관에 달려온 이유다.

 

교과서 밖, 살아 움직이는 지식

서고가 있는 공간은 도서관 안쪽에 있다. 그 곳에 들어서면 그림책과 만화책 그리고 이불과 베개, 그리고 좌식탁자가 있는 커다란 온돌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반 학생들이 다 들어가서 앉아도 될만한 규모다. 그곳에 앉아 앞을 바라보면 그랜드 피아노와 즉석공연이 가능한 음향시설이 갖춰진 공연무대가 있다. 이 곳에서 앉아 교사와 학생들은 피아노 즉석공연도 하고 또 기획된 공연도 하고 청중이 되어 환호를 보내기도 했겠다. 도서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서고는 왼편에 있다. 전혀 어색하지 않다. 편하게 책을 가져다 볼 수 있겠다. 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하면서, 책을 펼쳐보면서, 만나게 되는 내가 아닌 다른 삶, 텍스트로만 배웠던 교과서안의 지식이 그림이 되어 타임라인을 타고 움직인다. 보드게임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책을 찾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책 속에 있는 지식과 삶이 살아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송곡여고 학교도서관의 모습이다. 

 

이야기 꽃, 웃음꽃 '활짝'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1996년, 이 교사가 송곡여고 사서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던 해다. 교실 한 칸보다 훨씬 작은 공간에 책들로 꽉 차 있어 학생들 몇이 들어서면 공간이 비좁았다. 공간을 늘려달라는 요청에 "도서대여점도 더 작은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운영되는데 학교도서관도 그만하면 충분하다"라는 답이 되돌아왔다. 도서관이 교육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하는 의지가 현실화되도록 힘이 된 이들은 바로 송곡여고의 전교조 교사들이었다. 수업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야만 가능한 과제를 냈고 학생들이 대거 도서관에 왔다. 그런 도서관 활용수업이 점점 확대되면서 오늘의 이야기꽃이 활짝피는 교육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지금의 이런 시간들이 이 교사가 전교조 조합원이 되면서 학교도서관 분과를 꾸리고 일구면서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사들과 만나는 시작이 됐다. 만남의 시작, 관계와 소통의 시작이 있는 학교도서관이 있는 2018년 3월, 송곡여고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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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06 [19:00]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