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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역사박물관 5월에 문 엽니다"
| 인 | 터 | 뷰 |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 교육자료기증·건립기금 마련 동참 호소
 
김상정 기사입력  2018/03/21 [17:27]

식민지 역사박물관이 오는 5월 문을 연다. 오롯이 시민의 힘으로 말이다.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을 지난 14,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정역사교과서 폐기 싸움이 한창이던 때, 그는 맨 앞에 서서 싸운 시민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는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역사 속으로 쏙 들어가 그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민중들을 만날 수 있는 박물관은 어떤 모습일까?

 

 

▲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요즘 밤낮없이 바쁘다. 5월 개관을 앞두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기금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 김상정

 

 

지금 이 시대에 왜 식민지역사박물관인가

 

2001년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사전 작업을 하면서 함께 고민을 시작했다. 사전이 만들어지더라도 상당수의 친일파나 후손들은 사실조차 부정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반성없는 풍토를 봤을 때 말이 친일파지만 어떤 죄를 지었는지 모른다. 친일행위에 대한 증거자료들을 모아서 전시하고 어떤 식으로 부정적인 유산을 남겼는가를 보여주는 것을 준비해야겠다. 친일인명 사전을 만드는 것보다 사전이 나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한국사에서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순간부터 혹독한 탄압과 방해와 음해가 있었다. 친일인명사전 만드는 것 자체가 범죄시되는 풍토. 그게 바로 친일파 청산이 안 된 결과였다.

 

친일인명사전의 배를 띄우기 위해서는 위대한 바다가 있어야 한다. 시민들이 친일파 청산을 위해 나서고 기금을 모금하고 시민들의 눈물로 이루어진 역사들이 더 유의미하다. 처음엔 친일파와 관련된 협의의 식민지 역사관으로 시작했다. 친일 행위의 증거, 부정적인 유산, 청산하지 못했을 때의 후과, 그리고 친일 청산의 역사들을 전시하려고 했다. 일본에 우익정권이 들어서면서 식민지 범죄를 부정하고 나아가서는 태평양 전쟁도 동아시아 민족해방운동이라는 일본의 역사교과서(후소샤 교과서) 왜곡 파동이 있었다. 이 시점에서 일제 식민지 지배가 어떤 것인지 실상을 알려야겠구나.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서 일제 식민지 지배가 얼마나 혹독했으며 얼마나 폭력적인지 당시 민중들의 삶은 어땠는지로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2008년 국내에서 더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일본 덕분에 우리가 근대화가 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한국에서 상상도 못하는 심지어 일본의 우익세력조차 주장하기 어려운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정권에 받아들여지고 수구세력들의 이데올로기로 발전하게 된다. ‘친일파는 오히려 근대화의 선구자며 공로자다. 독재자 이승만은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고 박정희는 근대화 혁명가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역사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런 역사왜곡까지도 맞서야 했다. 청산당해야 할 친일세력들에 의해 독립운동가들이 역청산당했다. 이들이 대한민국 주류로 형성되면서 제국주의 식민지사관을 분단버젼으로 재결합시키면서 한국사회의 총체적 후진성을 만들어 놨다.

 

통상 우리나라에서는 식민지 박물관하면 왜 부끄러운 역사를 전시하느냐면서 부정적으로 본다. 어둠이 있을 때 빛의 가치가 드러난다. 일제 식민지 지배의 폭력성이 있고 민중들의 고통받는 삶이 있을 때 독립운동이 더 필요했고, 그래서 그들의 존재 의미가 더 빛나지 않겠느냐.

 

20세기 전반기는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이자 강도들의 시대다. 구체적 가해자는 일본이지만 제국주의 국가들이 약소국가들과 약소민족들에 대해서 식민지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자행한 역사적 강도 시대였다. 그 시기에 우리가 희생자다. 식민지라는 것이 반인도적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반인도적 범죄라고 한다. 식민지 범죄는 수 백 년이 넘었는데도 단 한 번도 세계사적 차원의 반대가 없었다. 반인류 범죄에서 인류가 넘어가야 할 역사적 과제로서 보편사다. 한일 사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런 구조 속에서 바라보면서 보편적 시각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하다보니까 식민지 역사박물관에 대한 인식이 계속 쌓여 오고 넓어졌다.

식민지 역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풀어야 할 공동의 숙제다. 일본의 시민단체 한국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1억 원 넘게 모금도 해주고 자료도 계속 모아서 보내주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적폐청산사업의 1단계가 2009년도 친일인명사전 편찬이었고 2단계가 2014년도 역사 백년 전쟁역사다큐 제작이다. 다큐에서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통해서 역사적폐들의 실체를 밝히고자 했다. 3단계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단순하게 전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역사적폐청산을 위한 대중적 베이스캠프다. 다양한 시민활동들과 결합할 수밖에 없다.

 

 

박물관이 들어서는 곳은 어디인가

 

박물관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자리한다. 용산은 식민통치권력의 정점이 있던 곳이다. 구한말에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고 그 이후에는 일본군이 주둔했다. 해방되니까 미군기지가 됐다. 한나라의 수도가 왜곡된 역사가 120년이 넘었다. 식민지 역사들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남산은 일제의 침략시설과 민족말살 억압의 상징이다. 해방되면서 본래 시민의 산으로 돌려줘야 하는데 용공조작과 국가테러기구 폭력기구가 자리하고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주변에 한국 근현대 100년 역사의 화두가 모두 모여 있는 것이다.

일제로부터의 자주독립, 민주주의, 평화통일이라는 한국현대의 3대 과제가 응축되어 있는 상징화된 공간. 이런 역사적 숙제들을 청산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실천 무대로서 자리 잡을 수 있다. 답사코스가 정해져 있다. 답사 후 박물관에 와서 식민지 역사를 볼 수 있다.

 

박물관에서는 어떤 것들을 볼 수 있는가?

 

건물 2층 전체가 전시 체험공간으로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상설전시관으로 조성된다. 1층은 북카페 겸 오픈 갤러리. 시민단체들이 전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3층은 연구 사무공간, 4층은 교류협력공간, 5층은 보존 열람공간으로 활용할 것이다. 전시공간인 2층에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실상, 식민지의 지배구조와 민중생활의 실상을 도입부로 놓고 체험관을 두려고 한다. 어떤 때는 감옥, 독립운동 체험하는 학습장도 둘려고 한다. 1938년이 되면 국가총동원법으로 전시 총동원 체제가 된다. 징병, 징용, 위안부, 근로정신대 수많은 것들이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그 체제아래서 어떻게 해서 마을 단위로 통제가 되어 있는가. 식민지 파시즘 교육, 황국식민화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전시총동원 체제하의 식민지 조선은 한마디로 거대한 감옥이었다.

 

1945815일, 해방되고 일본인들은 떠났지만 수많은 식민의 유산을 남겼다. 박정희 유신시대와 비교하는 코너도 있다. 박정희의 혹독한 유신독재, 수많은 통제나 폭력구조들이 일제의 파시즘에서 기원했다. 식민지 유산은 세월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청산되어야 하는데 그대로 부활시켰다. 박정희 시대의 정책들을 시각적으로 대비해보면 놀라울 것이다. 박정희는 독재뿐만 아니라 일제유산도 남겨줬다. 농촌진흥운동과 초등학교, 체조, 수류탄 던지기, 장발 단속 모두가 일제의 것이다. 박정희가 배웠고 교사로서 가르쳤고 대통령이 되어서 재생시킨 것이다. 상당히 충격적이다.

 

친일파에 관한 전시도 있다. 이 코너에서는 한 시대 다른 삶, 친일과 항일의 역사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친일파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김성수, 서정주, 박정희,살아있는 권력으로 군림하는 언론사 사주들의 친일 행위 등 오늘날 한국사회의 숨어있는 자화상, 역사적폐의 실상들을 친일파들을 통해서 본다. 친일행위는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한 것이고 지속적이었다. 독립운동의 역사인 항일과 친일 중어느 것이 올바른 역사의 길이었는가를 보여준다.

 

특별코너로 친일인명사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시민들의 노력들을 전시할 것이다. 그들의 다양한 실천활동, 오늘날의 한국과 일본, 세계사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거사 청산운동을 다룰려고 한다. 반민특위 이후의 다양한 청산운동이 어떻게 되고 있는가.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의 피해보상운동도 있고, 진실을 찾기 위한 한일 연대 투쟁도 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한일 과거사 야스쿠니, 일본군 위안부, 재일조선인, 사할린 한인 문제,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신 분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일 과거사 현안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독일, 폴란드, 캐나다. 영국 등 해외에서는 어떤 식으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 왔나. 보편사의 시각 속에서 과거사 청산을 보여주려고 한다. 최대한 오감을 활용한 박물관이 되려고 노력하겠다

 

전시될 사료들은 어떻게 구했는가?

 

자료가 워낙 많아서 전시관이 빽빽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도서자료만 7만여 점 정도 된다. 자료들은 대부분 시민들의 기증이다. 재일 동포, 일본 시민단체 기증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매입할 수밖에 없는 자료도 있다. 17년간 수집을 했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고 나서 박물관을 준비하면 늦는다. 사전을 준비하면서 포스트 인명사전을 준비했고 자료수집을 본격화했다. 기증자들이 제일 중요한 기반이 됐다. 연구소가 가난해서 많은 분들의 기증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생활자료도 기증받고 있다. 일기도 좋고 개인자료도 좋다. 당시 민중들의 일상이 어떻게 반영되느냐를 보여주면서 근현대사 전체를 아우르려고 한다. 1980년대까지 봐야 한다. 자료의 폭은 매우 넓다. 많은 분들이 쑥쓰러워하지 말고 기증해주기 바란다.

 

교사일지도 중요하다. 원로교사들이 교사일지를 썼을 것이다. 교사들이 보관해놓은 교육자료 기증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는 공기관이다보니 기증하는 구조가 없다. 손이 닿고 있지 않다. 교육과 관련된 특별전시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전히 학교에는 일제시대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승복 어린이 동상, 국민교육헌장 명판, 주번, 주간 등이 일제의 잔재다. 역사 적폐의 교육현장을 이런 박물관을 통해서 반성적으로 볼 수 있었으면 한다. 학교도 교육의 민주화와 다같이 맞물려 있다. 교육과 관련된 특별전시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곳이 학생들과의 교육활동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자료를 수집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자료를 구하다보니 수동적인 기증만 기다릴 수가 없다. 좋은 자료가 있으면 구입하러 가야 한다. 경매장까지 드나들 수밖에 없다. 필요한 자료는 비쌀 수밖에 없다. 을사오적 권중현 집안에서 나온 여러 가지 임명장들 훈장수여 증서들이 한꺼번에 나왔다. 그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병합기념 훈장을 주고 증서가 같이 나온 거다. 가격이 비쌌다. 연구소가 수집하고 있으니까 가격이 오른 거다. 돈이 없어서 낙찰받지 못했다. 눈물이 났다. 꼭 필요한 자료를 구하지 못함에 대한 탄식을 했더니 이 모습을 본 어떤 이가 자료를 산 사람을 만나게 해줬다. 그 분은 증서의 직인만 모으는 사람이었고 필요한 자료는 팔겠다해서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자료수집하시는 분이 엄청 두꺼운 자료를 가져왔다. 대정8년보안법 사건이라고 쓰여 있었다. 1919년 함경도 지역에서 3.1운동에 가담했던 500명에 대한 이시카와 검사의 조사 필사 기록이었다. 놀라운 자료다. 현재 당시 판결문은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검사가 조사했던 조사기록서는 없다. 파출소 방화, 순사집 습격, 당시 상황들이 다 기록되어 있었다. 자료를 얻게 되고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이 자료집 중간에 끼어진 종이가 하나 있었다. 기미독립선언서였다. 그것도 원본이다. 함경도에서 시위 현장에 직접 뿌려진 걸 순사가 가져와서 검사가 첨부한 거다. 이후에 조사해보니 서울에 있는 보성사에서 만든 초판본이었다. 서울에서 찍은 것이 함경도까지 갔고 그것이 일본까지 갔다가 일본에서 매물로 나왔고 다시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근대의 중요기록 문서가 된다. 숱한 사연이 많다. 일본에서 재일 조선인 남편의 고통받는 삶들의 기록이 담긴 자료를 보내오신 것도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않는 이유가 뭔가

 

친일 청산 운동 역사 자체가 시민으로부터 시작했다. 시민단체들의 추동이고 시민들이 중심이 됐다. 사실 돈이 없었다.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절망적이어서 지자체의 관련 기관과 협의를 한 적이 있었다. 박근혜 정권 때인데 불가했다. 시도는 해봤지만 현실의 벽을 느꼈다.  민간시민단체들이 모았던 자료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약탈자다. 많은 자료를 모아서 보관하고 있는 수집가들의 꿈은 박물관 만들어서 전시하고픈 게 꿈이다. 지자체와 논의하다보면 부지를 주는 대신 자료를 모두 기증해야 한다. 그것을 명분 삼아서 지자체 소유로 땅과 건물을 만들어준다. 국가가 갖는 방식이다. 돈도 모아서 바쳐야 하고 자료도 기부해야 하고 정작 시민들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다. 정권 바뀌면 그대로 끝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성격이 바뀔 수도 있고 운영주체가 바뀐다. 나쁘게 바뀔 수도 있다. 시민의 힘으로, 아래로부터 역사운동을 하는 게 맞다. 국가와 시민사회는 구분되어야 한다. 선의의 경쟁과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계승하고 보존하려면 정부로부터의 자립이 필수다. 이것이 험한 길로 오게 된 이유다. 시민이 만드는 역사관, 시민들이 참여 주체로 올 수도 있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고 이러다보니 사실 힘들다. 식민지역사적폐 청산은 정부의 몫이기도 한데 아직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아직 한국사회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건립기금 모금 현황은

 

모금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다. 선뜻 나서지 못한 사연이 있다. 회원들은 회비를 열심히 낸다. 회원들에게 또 한번 부담시켜야 한다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손을 내민다는 인상을 받을까 봐 조심스럽다. 정직한 분들이 노동을 해서 번 돈이다. 본격적으로 모금활동을 벌이려고 할 때마다 중요한 일들이 일어났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세월호 참사. 그리고 위안부 합의 사태. 역사적 현장에서 함께 싸우는 게 우선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모금통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고통스런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다양한 역사적 현장에 함께 했고 박근혜 정권 때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맞선 싸움으로 집중했었다. 지금까지 모금 액수가 적은 건 아니지만 5월 개관을 앞두고 함께 해달라고 호소해야 할 상황이다. 돌이켜보면 제대로 된 모금활동을 펼친 적은 없다.

 

▲ 민족문제연구소회보 중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특집호에 실린기금 모금에 참여한 이들 모습이다. 이들의 마음이 모여 5월 개관을 앞두게 되었다.     © 김상정

 

박물관을 만들려면 우선 모금 종잣돈이 필요하다. 물방울이 모여서 바다를 이룬다. 만원이든 천원이든 소중하다. 송기인 신부님이 과거사위원회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 때 받았던 급여를 1원도 안쓰고 통장에 그대로 적립했고 건립기금으로 통장 째 기증하셨는데 그게 2억 원이었다. 어느날 한 초등학생이 엄마와 함께 저금통 에 모든 용돈을 들고 왔다.  

건립기금이 총 55억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억 원을 넘는 빚을 졌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모은 30억여 원의 기금을 더해 51억 원으로 건물을 매입했다. 지금 5월 개관을 앞두고 박물관 내부공사 비용 15천만 원도 없는 상황이다. 스토리펀딩도 하고 다양한 이벤트도 계획하고 있다. 시민들이 만드는 박물관 소식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건립의 주인으로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일본 시민단체들이 5월에 대규모 방문할 예정이다. “돈 있는 사람은 뜻이 없고 뜻이 있는 사람은 돈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에게 돈은 없지만 뜻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올바른 우리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역사적 성찰이고 교육의 현장이다. 학생과 교사들도 같이 실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주체로 참여해주셨으면 한다.

 

지금 이 시대,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갖는 의의는?

 

전 세계에서 하나다. 인권과 평화, 미래를 열어가는 큰 방향 속에서 활동할 것이다. 이를 위한 식민지 역사박물관은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으로 역사 교육의 현장이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살아있는 역사를 박물관에 오면 볼 수 있다.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에서 활동하는 교사, 학부모들과 함께 친일독재 미화와 역사교과서 개악에 대한 대응활동을 무려 8년 가까이 해왔다. 실제 역사국정교과서를 폐기시키는 그것으로 과제가 끝난 것이 아니다. 교과서를 통한 범죄의 재구성, 불가역적이고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항상적으로 가르치고 실현할 수 있는 교육적 공간이 있어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 운동이라는 것이 과정이었다면 남는 숙제로 해야 하는 것, 바른 역사를 남겨서 젊은 세대들에게 교육하고 민주적 가치를 교육하는 공동의 연장선에 함께 하는, 매듭지어야 될 공동의 숙제로서 박물관 건립에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

 

건립에 함께 하는 이들의 이름들을 남기려고 한다. 그 자체도 역사운동이다. 벽면에 새겨서 남기고 기금을 내주신 분들은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수업의 연장으로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을 함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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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21 [17:27]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