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고교 교육의 새로운 대안?

이현 · 전교조 참교육 연구소장 | 기사입력 2017/10/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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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폐지대학평준화
고교학점제, 고교 교육의 새로운 대안?
새로운 교육체제 구상 위한 토론이 먼저
이현 · 전교조 참교육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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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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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육체제 구상 위한 토론이 먼저

 

▲ 획일적 입시 교육이 지배하는 고교 교육의 현실에서 학생들의 과목 선택 폭을 넓히는 고교 학점제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 <교육희망> 자료 사진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고교학점제를 주요 교육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고교학점제가 교육개혁의 핵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교학점제를 획일적인 입시중심의 고등학교 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안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주장하는 사람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몇 가지 기본적인 성격을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지금까지는 국가교육과정에 기초하여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구성하였다면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개인적 선택을 통해 개별적 교육과정을 구성한다. 둘째, 이를 위해 교과군의 경계를 넘어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한다. 셋째, 과목의 수평적(기존 과목의 세분화, 새로운 과목의 추가 등)-수직적(수준별 세분화) 분화를 최대한 추진하여 과목 선택의 폭을 넓힌다. 넷째, 학교 정규수업 이외에 타 학교, 지역기관, 온라인 강좌 등을 통해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다섯째, 과목별 미이수 즉 낙제 제도가 존재하며, 이에 따라 학생별로 교육과정의 이수 속도에 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고교학점제는 새로운 제도라기보다는 7차 교육과정부터 시도되었던 선택형 교육과정을 최종적 형태로 완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교 교육과정, 보편적 성장이 먼저

 

고교학점제 도입 논거는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주장은 고등학교는 대학진학이나 직업선택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진로·적성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학생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학점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잠자는 학생을 깨우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실용적인 주장도 있으며, 10대 후반의 학생들에게 자기가 듣고 싶은 과목을 들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학생의 자율성과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고교학점제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고 교사들의 과목개설권과 평가권을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획일적인 입시교육이 지배하는 고등학교 교육의 현실에서 고교학점제는 매우 매력적인 대안으로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는 고등학교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고등학교 교육이 진로·적성 중심 교육이 되어야 하는지 검토되어야 한다. 고등학교 교육단계에서 학생 개개인에 대한 미래의 진로와 직업을 준비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고등학교 교육의 본질인지 의심스럽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에서 역사교육은 학생들의 역사가로서 자질이나 적성을 탐색하거나, 역사 전공자로서의 기본 소양을 쌓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시간적 인과성, 사건들의 상호 연관성, 개인-사회-자연 사이의 복잡한 상호 규정 등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키우는 것이 고등학교 역사교육의 기본 목적이다. 고등학교 시기인 10대 후반은 개인의 전 생애적 삶의 주기에서 개념적 사고에 기초한 보편적 지성의 형성과 자기-타자-세계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기초한 가치관, 세계관, 윤리성 확립에 결정적인 시기이다. 어떤 직업적 삶을 사느냐와 상관없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건강한 사회적 주체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보편적 능력을 키워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고교학점제는 학교교육을 학생들의 전면적 발달과 보편적 성장보다는 직업적 삶에 필요한 특수한 역량의 육성을 강조하는 최근의 유행사조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 장벽 직시하고 현장 의견 들어야

 

학생들의 자율성과 인권 보장을 위한 과목선택권 보장 논리도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함으로서 학생의 흥미를 유발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겠지만 선택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에 필요한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과 단절된 지식들을 오로지 순위 경쟁을 위해 주입하고 암기하도록 강요하는 입시교육을 타파하고, 학생들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될 수 있는 교육을 구현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 선택권 자체가 학생들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교육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고교학점제는 한국교육의 장점으로 인식되고 있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긴밀한 관계를 해체할 위험성도 존재한다.

 

고교학점제의 현실적 장벽도 매우 크다. 현재의 교원 양성과 수급 체제에 학생의 선택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과목 개설은 한계가 있다. 결국 비정규 교원들을 대폭 양산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학교 구조도 학점제와는 맞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실 규격이 동일하고, 학생들이 머물 공간도 부족하다. 또한 입시경쟁의 해소 없는 고교학점제는 오히려 입시몰입교육을 조장하거나 학교교육의 무력화와 사교육의 폭발로 귀결될 위험성이 높다. 

 

이렇듯 고교학점제는 교육철학적인 측면에서부터 현실적인 문제까지 검토하고 논의해야 할 다양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대통령의 공약이기 때문에 무조건 관철시키기에는 고교학점제가 초래할 영향력이 너무 심대하다. 입시교육에서 벗어난 새로운 고등학교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구상이 먼저 마련되고, 이 속에서 고교학점제가 검토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고교학점제의 시행을 이미 확정된 것으로 전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최근의 교육부의 행보는 심히 우려스럽다. 새로운 고등학교 교육체제 구상을 위한 교육 현장과 폭넓은 열린 토론이 시급하며, 고교학점제 도입 여부는 천천히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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