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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칼럼] 그들은 단 한 사람을 위해 싸웠다
 
정은균 · 교사, 군산영광중 기사입력  2017/10/27 [15:57]

 

레그 테리오는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 만 항구에서 30여 년간 부두노동자로 일한 육체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였다.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ILWU)의 평조합원을 거쳐 부대표를 역임할 정도로 성실하고 열성적인 노조 활동가였다.

 

어느 날 테리오가 속한 노동조합의 상근 간부인 교섭위원(사측이나 고용주와의 교섭을 담당하는 간부 노조원) 한 명이 임기를 마치고 현장으로 복귀하였다. 교섭위원으로 있으면서 강경 노선을 취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활동가였다. 사측은 그가 현장에 그대로 복귀하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교묘한 방식을 써서 그가 현장에서 작업을 맡지 못하게 만들었다.

 

테리오와 노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하였다. 그들은 미국 서부 연안 전체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의 힘을 가동하였다. 서부 연안의 주요 항구에 피켓 라인을 설치하고 대대적으로 파업을 벌였다. 그 여파로 연안에 있는 주요 항구의 기능이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펼쳐지자 사측은 애초 지침을 즉각 철회하였다. 그는 원직에 복직하였다. 테리오가 자신이 직접 쓴 책 <노동계급은 없다>에 소개한 예화들 중 하나다.

 

지난 10월 24일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고용노동부에게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통보"라는 제목의 공문을 팩스로 받으면서 법 밖으로 밀려난 지 만 4년이 되는 날이었다. 해직 교원에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전교조 내부 규약이 관계 법령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수차례 시정 명령을 내린 끝에 나온 결정이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 말기에 쟁점화 한 뒤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부터 밑불을 때기 시작해 2년여 만에 거둔 '수확'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문제 삼은 전교조 내부 규약은 헌법 정신이나 국제적 기준에 비춰 볼 때 하등 문제 삼을 게 없는 조항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침해를 최소화하라는 헌법상의 과잉금지의 원칙과, 해직 교원은 물론 퇴직 교원이나 예비교원(사범대생)에게까지 교원노조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구미 주요 국가들의 상황을 철저하게 모르쇠하였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지난 두 보수 정부가 스스로 최대 '치적'이라고 평할 만한 사안이었다. 나는 그들이 노동조합의 위력이 연대와 협력에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고 본다. 성과제일주의와 경쟁주의에 포박되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채 굴러가는 우리나라 교육판에서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전교조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강했을 것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내부 규약을 고치라며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범정권 차원에서 주요 권력기관들이 치밀한 '공작'을 펼쳐 전교조 탄압에 몰두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 부두 노동자 수만 명이 단 한 명의 노동자를 위해 펼친 연대와 협력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단단하게 조직된 노동조합과, 노동 현장의 문제를 '그'나 '너'가 아니라 '우리'와 '나'의 것으로 본 각성한 노동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였다. 전교조의 '운명' 역시 6만 조합원의 연대와 협력에 달려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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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27 [15:57]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