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강좌] 진실에 대한 용기, 파르헤지아(Parresia)

김환희 · 전북교육정책연구소 연구교사 | 기사입력 2017/10/1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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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강좌] 진실에 대한 용기, 파르헤지아(Parresia)
김환희 · 전북교육정책연구소 연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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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1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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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들려주는 교양강좌'에서는 선생님들의 숨은 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교사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지식·교양을 보내주세요(chamehope@gmail.com) 조합원들의 인문학 소양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 미셸 푸코는 그의 책 'Feer-Less Speech'에서 파르헤지아의 개념을 설명했다.  


1. 미셸 푸코는 학술논문 인용지수 1위에 오를 정도로 현대의 학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프랑스 사회학자이다. 저작활동 초기에 푸코는 <감시와 처벌>과 같은 책을 통해 학교, 병원, 감옥의 구조를 분석하며 감시사회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근대적인 주체가 학교 등의 감시관리 장치 속에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 이후 푸코는 이러한 원형감옥과 같은 통제에서 주체가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한다.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는 국가와 같은 거대권력의 통치구조를 분석했다. 그리고 <성의 역사>, <주체의 해석학>등의 저서를 통해, '자기배려'와 '자기통치'라는 새로운 주제를 탐닉한다. 이와 같은 개인윤리들이 도덕과 법, 명령이라는 강제를 통해 주체를 길들이는 권력의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력한 파해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 '자기배려'와 '자기통치'라는 말로 요약되는 후기 푸코의 작업 중 가장 흥미로운 개념은 '파르헤지아'에 대한 것이다. 파르헤지아(Parresia)는 고대 그리스어로, '진실을 말하는 용기' 정도로 해석되며 그리스-로마철학의 초기부터 중요했던 개념이다. 시민들의 미움을 감수하고도 그들의 무지를 지적한 소크라테스나 제왕인 알렉산더 앞에서 "내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고 직언했던 디오게네스가 파르헤지아를 실천한 대표적 인물(파르헤지아스트)로 꼽힌다. 시민재판에 의해 사형을 당한 소크라테스나 알렉산더의 심사를 거스른 말을 거듭한 끝에 그의 창끝에 죽음을 당할 뻔한 디오게네스의 이야기는 파르헤지아의 실천에서 위험의 감수가 중요한 요소임을 알려준다.   

 

3. 파르헤지아의 위험성은 발화자가 용기 내어 밝힌 진실이 대화 상대자에게 상처를 주거나 분노를 촉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파르헤지아는 항상 대화 상대자에 대한 비판이나 화자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라는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파르헤지아스트는 자신이 말을 거는 대화 상대자보다 힘이 약하다. 따라서 파르헤지아는 항상 아래로부터 생겨나 위로 향하는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린아이를 비판하는 선생이나 부모가 파르헤지아를 행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에 반대되는 진실을 피력한다거나 학생이 선생을 비판하는 경우, 이런 화자들은 파르헤지아를 행한다고 말할 것이다. 파르헤지아스트는 선동가나 아첨꾼과는 반대로, 민중이 듣기 좋아하는 의견들만을 그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듣기 거북한 진실을 부르짖으며, 의견의 불일치를 만들어내는 임무를 담당한다. 

 

4. 그렇다고 파르헤지아가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말들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것, 즉 '모든 것을 다 말하는 말하기' 방식은 아니다. 철학적 중요성이 없는 솔직함은 파르헤지아가 아닌 아튀로스토미아(athurostomia-문 없는 입, 수다)에 속한다. 따라서 말할 것과 말하지 않고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할 것을 전혀 구분할 수 없고, 말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없다면, 그 말하기는 파르헤지아가 아니라 '아튀로스토미아'에 불과하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사람들이 파르헤지아를 아무 기준 없이 사용해 무지한 직설을 행할 경우, 도시국가가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해, 파르헤지아의 실천은 훌륭한 교육과 결부되어야 했다. 

 

5. 여기에서 기술적으로 아주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훌륭한 교육이 가능한 '진정한 파르헤지아스트를 어떻게 알아볼 것이냐'하는 문제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진정한 파르헤지아스트를 식별하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먼저 파르헤지아스트로 간주되는 자가 하는 말과 그의 행동, 삶과의 일치 여부이다. 두 번째 기준은 그 사람이 가진 견해가 다른 사유들에 비해 연속성과 영속성이 높은 과학적 태도를 지향하는가이다. 이 두 가지 팁을 사용하여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단련해줄 좋은 스승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6. 그런데 과거 아카데미아의 스승들이 그러했듯이 오늘날 학교의 교사들은 파르헤지아스트가 될 수 있을까? 여기에는 근본적인 난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견유주의학파의 스승들은 모든 삶과 품행의 판단 기준으로서 자유와 자족을 강조했다. 즉 규칙, 사회도덕의 자의성에 반대했던 것이다. 법률과 제도에 의존하는 삶에 반해 오롯이 자유롭게 되기만을 종용하는 이런 가르침을 오늘날 교사들이 수행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근대학교는 새로운 생명들이 기성사회에 굴종하고 화합할 수 있도록 길들이는 역할만을 수행해온 것은 아닐까? 아직도 각 학교에서 교사의 책무로 중시되는 생활지도는 권력(자)의 규칙에 따르기를 권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배려와 자기통치를 위한 규칙에 따르기를 권하는 것인가? 

 

7. 우리들은 일상에서의 권력구조(관료주의, 나이주의, 성역할주의 등등)에 맞서 싸우는 삶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파르헤지아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 또한 학생들과 우정과 신뢰를 굳건히 함으로서, 서로에게 하는 쓴 소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관계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상의 때(카이로스)를 포착할 때까지 개입하지 않고 기다려야 함은 물론이다. 오히려 교실 내 권력구도에서 아래에 위치한 학생들이 교사와 학교를 향해 파르헤지아의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아낌없이 북돋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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