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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학생생활기록부 정정 '난리부르스'
 
김영진 · 군산 영광중 기사입력  2017/10/17 [15:16]

 

'체육대회'를 '체육행사'로 고치란다. 이유가 뭐냐고 물어도 설득력 있게 대답하는 이가 없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기재 요령 전달 연수하는 교사도 교육청에서 왜 이런 짓을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단다. 이걸 왜 고치라는 걸까. 체육 행사에 체육대회만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체력검사도 체육 행사이고 교내 탁구대회도 체육 행사인데 말이다. 그럼 '합창대회'는 '합창행사'로 바꾸어야 하나? 

 

기간을 표시하는 부호를 '~'로 썼으면 모두 '-'로 정정하란다. 부호 사용 통일하자는 취지라면, 지금까지는 저리 썼더라도 이제부터는 이리 쓰자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학생부에서 '~'를 모두 찾아내어 '-'로 고치란다. 대체 왜 이래야 하는 걸까. 

 

"자율활동 중 행사활동 시간은 시업식, 입학식, 졸업식, 종업식, 전시회, 발표회, 학예회, 경연대회, 학생건강체력평가(PAPS), 체육대회, 수련활동, 현장학습, 수학여행 등 학교에서 주최하고 주관하여 시행하는 활동을 포함한다."(77쪽) 

 

답답한 마음에 교무실 책장에 꽂혀 있는 <2017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중·고등학교용>(교육부 발행) 책자를 찾아 넘겨보니 '체육대회'라는 낱말이 이곳저곳에 쓰여 있다. 기간을 표시하는 부호인 물결표(~)도 이 책자 곳곳에 수도 없이 나온다. 이런 개콘. 이럴 때 지성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고급스러운 문장 하나를 내뱉게 된다. "지랄들 하고 자빠졌다."

 

문장은 반드시 명사형 어미 '-(으)ㅁ'을 붙여 종결시켜야 한단다. 그리 통일하자고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이 역시 이전에 '-다'로 쓴 문장까지 모두 고치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다'로 종결한 문장으로 인해 내용의 왜곡이 생겼다면 모르겠다. 그런 것도 아닌데 굳이 저런 걸 찾아내어 고치느라 교사들이 진을 빼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이 외에도 정정 요구 목록들 줄줄이 이어진다. 전북도교육청 학생부 업무 담당 장학사가 도내 각 학교 해당 업무 담당 교사와 교감 등 300여 명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연수한 주요 내용이 저런 것들이란다. 전달 연수하는 교사도 듣고 있는 교사도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아무래도 학생부 기록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 관료 가운데 독특한 언어 미감을 가진 이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시도교육청도 그렇다. 저런 거 거름종이 대고 걸러서 학교 현장에 보내면 안 되나? 관료들의 속성, 어디라고 다를까. 교육부가 하란다고 그걸 그대로 학교에 내려 보내는 '영혼 없는(넋빠진)' 이들이 교육청마다 득시글거리고 있다. 또 그것을 넙죽 받아 들고 교사들을 채근하는 학교장들도 널려 있다. 교사들이 눈 부릅뜨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저런 것들은 잘못이나 오류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정정할 필요가 없다. 표기를 이리 통일해 나가자고 권고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나는 저 따위 것들에 대해서는 정정할 의사가 없다.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 저런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기실 저들을 저리 만든 건 우리 교사들이다. 위에서 하라면 하고야 마는 교사들의 맹목적 순응이 더 문제라는 말이다. 그래서다. 저항해야 한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일은 교사된 자들의 의무다. 의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학교에 교육이 들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들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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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17 [15:16]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