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그래요?] 분노에서 연대로

김희운 · 경기 화홍초 | 기사입력 2017/10/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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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래요?
[어머 그래요?] 분노에서 연대로
김희운 · 경기 화홍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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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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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교사캠프가 성황리에 마무리 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캠프 당시 난 성차별적인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 열정이 가득했고, 나름 규모 있는 행사에 기획단으로 서있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지나치게 긴장됐다. 내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니! 페미니스트 교사 캠프는 나에게 큰 의미였다.

 

캠프 시작 전 참가자 안내를 하는데, 주말을 통째로 반납해야 하는 1박 2일 연수에 전국에서 찾아오는 모습을 보고 저들이 얼마나 절실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깨닫고 난 뒤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나에게 조신하다며, 허리가 어떻게 예쁘고 다리가 어떻게 예쁘다며 진심으로 칭찬하시는 선생님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항상 고민이었고, 아주 자연스럽게 육아의 책임을 전부 엄마에게 떠넘기는 선생님들의 사고와 언행 속에서도 어디서부터 틀렸다해야 할 지 막막해 책상만 바라보고 있을 때도 많았다. 학부모 상담에서 "우리 아들은 영 남자애 같지가 않아서…", "우리 딸애는 여잔데 남자애들하고만 놀아서 걱정이에요." 등의 말을 들으면 항상 예외로 취급받을 그 아이들의 미래가 그려져서 마음이 답답했고,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다르게 규정지어놓고 다르게 대하고 다르게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내가 어떻게 '여자로서' 키워졌나가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다들 그랬을 것이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 아프고, 화도 나고, 외롭고, 내가 맡은 아이들만큼은 나와 다르게, 성별에 따른 억압 없이 자랐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하며 지냈을 것이다. 그러다 이 캠프를 발견하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에 설레지 않았을까. 

 

나는 초등학교에 국한된 경험만 가지고 있다가 중등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초등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받지 않고 세상의 성차별적 사고와 문화를 그대로 흡수하며 자란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이 되어 더욱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서로를 게이냐, 장애인이냐, 기집애냐 하며 놀리고, 스스로를 자신의 성별에 따른 틀에 가둬놓고 그것에 맞춰 행동하고 사고했다. 여성혐오는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퍼져있었고 남성들의 위계문화 속에서 소위 '있어 보이고 싶은' 남자아이들은 더욱 심하게 여성혐오를 했다. 초등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절실히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초등학교에서도 이미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몸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생리에 대해 말할 때는 혹여 다른 사람에게 들릴까 소곤소곤 말하며, 남자아이들은 서로에게 'ㅆO놈'이 아닌 'ㅆO년'이라며 욕하는데, 이것이 왜 잘못됐는지 누군가는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이 정말 당연한 것인지, 정말 원래 그런 것인지, 사실은 그것들이 무슨 의미인지를 말해주는 사람이 꼭 있어야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정말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뜻깊은 시간이었다. 마음속의 답답함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래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안도하는 시간이었다. 서로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도 다르고, 지식의 정도도 다르고, 페미니즘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도 다를 테지만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분노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은 같았다. 그 어떤 사람도 '여자이기 때문에(혹은 남자이기 때문에)' 행동이나 외모나 능력이나 언어를 제약받지 않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우리는 분노로 시작했지만 분노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연대한다.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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