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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해지지 말고 페미니스트로 사는 모습 보여주겠다"
페미니스트 교사 캠프에 다녀와서
 
구세나 기사입력  2017/09/30 [17:32]

나는 페미니스트 교사다. 내가 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한지 이제 막 2년이 되어가는 참이다. 트위터에는 페미니스트들이 참 많은데, 2년 동안 나는 근무하는 학교 안에서 나 말고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교사를 딱 한 명 마주쳤다. 그런데 2017916, 페미니스트 교사 캠프에서 내 평생 가장 많은 페미니스트 선생님들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최근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혐오 세력의 공격에 힘들게 맞서고 계시는 선생님을 보며 페미니스트로서 공식적인 자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참가 신청이 마감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현장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표정과 말투에서는 열기와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고립 속에서 외로워하고 있었고, 그만큼 만남에 대한 갈증이 컸었나보다.

 

▲ 페미니즘 교사 캠프에 참석한 교사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다     © 전교조 여성위원회 제공

 

학교 안에서 여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차별의 경험을 나누며 의외로 비슷한 경험이 많다는 것에 서로 놀랐고 충격적인 사건에는 분노했다. 눈 앞에서 마주했던 혐오 발언의 상황을 역할극으로 꾸몄고,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유형별로 모여 대응을 연습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안타까움에 혀를 차기도, 야유를 보내기도, 속 시원한 답변이 나올 때면 큰 박수를 치기도하며 즐겼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저자 이민경씨는 처음부터 자리에 함께하며 학교에 페미니스트 선생님들이 왜 더 필요한가를 본인의 경험으로 들려주셨다. 각자 스스로를 지키면서 계속해서 노력해 줄 것을, 학교나 교실 속 여성 혐오에 노출된 여학생들과 함께해줄 것을 부탁하셨다. 친구에게 페미니즘 같이 하자고 구걸하고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을 때에는 화를 내며 관계를 망가뜨려가고 있던 나에게, 절박해지지 말고 그냥 멋지게 페미니스트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라는 말은 위로가 되었다.

 

전교조 여성위원회 활동의 성과를 함께 공유하며 끊임없이 싸워온 우리의 역사를 우리는 왜 이제야 듣게 되었는가를 질문했고, 지역 네트워킹 시간 덕에 나는 우리 지역 페미니즘 독서 모임을 조직해 볼 수 있었다.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페미니스트 교사 선언의 시간이다.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다짐하며 모두가 선언을 이어갔던 순간은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선언 이후에는 눈물과 아쉬움 속에 소감을 나누었고, 그 때의 연결됨은 무엇보다도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페미니스트 교사 캠프의 경험을 가지고 돌아온 지는 벌써 1주일이 지났다. 평소에 별로 글을 쓸 일이 없지만 그 날의 기억은 글로 남기고 싶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외롭게 싸우던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헤어졌다.

 

주말이 끝나고 돌아온 교실에는 특정 유투버들이 사용하는 엄마를 욕하는 여성 혐오 표현을 같은 반 여학생에게 쏟아내는 남학생이 있었고, 지역 페미니즘 독서 모임을 했던 장소에는 여자 나이 스물여덟이면 다 끝난거야라는 말을 하는 남성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무력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말에 함께 분노했던 우리 반 학생들이 있고, 선생님들이 있다. 우리의 움직임은 물결처럼 퍼져 언젠가는 옆 테이블의 남성에게, 우리 반 남학생에게 닿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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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30 [17:32]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