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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무릎 꿇은 학부모의 '이매진'
 
이나리 · 서울 영도초 기사입력  2017/09/15 [15:35]

 

그날 밤, 초등학교 체육관에는 천박한 외침이 가득했고 피켓을 든 내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은 욕설과 멸시 가득한 삿대질하는 자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 날의 비참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는 슬픈 학교였다. 인근 영구임대아파트와 민간분양 아파트 사이에서 외면 받다가 서울 유일의 '분교'가 되었고, 결국 학교 이름만 남아 새로 지어진 마곡 지구 학교로 옮겨갔다. 사실상 폐교였다. 동료 교사들끼리 '이 학교는 복지센터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야' 하며 웃던 때가 몇 년 전이다. 

 

그 학교 부지에 이제 특수학교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 땅은 서울시교육청 소유며 학교용지로 지정되어 있다. 행정예고, 행정명령, 학교 건립을 위한 설계용역도 모두 끝난 상태이다. 이제 학교를 짓고, 아이들이 다니면 되는 것이었다. 원래는.

 

지난 7월 한차례 공청회가 무산되었다. 9월 5일 있었던 2차 공청회, 인근 고급 아파트 거주민을 중심으로 꾸려진 '특수학교설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준비를 많이 하고 왔다. 지역 이기주의로 비치지 않기 위해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국립한방병원을 지어달라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렇다면 특수학교설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이름은?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라 칭한 그들은 함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이 동네에 특수학교는 안 된다는 우주적 화법으로 듣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다. 허준 선생이 동의보감을 집필한 곳이니 그에 걸 맞는 국제적인 관광 테마지로 꾸미는 것이 효율적이라고도 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한평생을 사셨다는 허준 선생이 벌떡 일어날 일이다. 

 

그들의 노력은 거기까지였다. 토론회가 진행되자 금세 바닥이 드러났다. '장애인이 무섭다',  '우리도 좀 살자', '쇼 하지마라', '저런 애들이 학교에는 뭐 하러 다니느냐', '산 속 어딘가 한 곳에 몰아놔야 한다'……. 

 

지역 갈등 해소에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은 어떤가.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총선 당시 학교 부지인 공진초 자리에 '국립한방병원을 설립 하겠다'는 실현가능성 없는 공약을 들이밀어 이날 분란의 원인을 제공했다. 덕분에 특수학교설립을 반대하는 이들은 '한방병원 자리를 특수학교가 빼앗아간다'는 현수막을 걸었고, '장애아도 우리 아이, 특수학교 설립해주세요'라는 손 팻말을 든 나 같은 사람을 위 아래로 훑으며 삿대질과 욕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약자들이 연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크게 보면 누구 하나 강한 이가 없는 마을에서 정치인은 갈등을 부추기고, 어떤 이들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온갖 괴성을 지르며 자신을 바닥까지 드러냈다. 어떤 이들은 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운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어 자신들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이들 앞에 눈물을 흘리며 꿇어앉아야만 했다. 

 

공청회는 급히 마무리되었고 강당에는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이 흘러나왔다. 난장판이 된 공청회장에 배경음악으로 깔린 이매진. 이 상황에 이매진이라니 웃음이 난다.  

 

나는 여전히 높이 든 손팻말을 내리지 못했다. 저기 장애 학생 부모들이 아직 무릎을 꿇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특수학교 찬성 기자회견을 하느라 손팻말을 든 우리들에게 '우리 밖에 없을 줄 알았어요. 정말 고마워요', '험한 말 들을 거에요. 미안해요' 하던 분들이 아직 저 앞에 있다.  

 

공청회 뒤쪽에서 누군가 외친다. 

 

"학교 자리에 학교를 짓는 게 뭐가 문제냐!"

 

뭐가 문제일까. 수모를 일상으로 겪어야 하는 이들에게 오늘 이 자리는.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부모는 학교에 아이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특수학교는 특수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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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15 [15:35]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