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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1989년, 교장교감 정신교육 지도록
 
박준영 · 서울 원당초 기사입력  2017/09/05 [15:02]

 

 

며칠 전, 교감 선생님이 캐비넷을 정리하며 파기할 장부를 한 쪽에 모아두었는데 그 중 한 장부의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름 하여 <교장교감 정신교육 지도록>. 

 

장부는 1989년 3월 20일 '평교사 조직에 대한 학교장의지 천명'으로 시작해서 6월 18일 해직교사 복직 요구에 서명한 교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그 자체로 발기인 서명, 해직교사 복직 촉구 서명에 참여한 교사들의 이름과 면담 기록까지 적혀 있는 그야말로 전교조 역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였던 것이다.

 

1989년,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전교조 출범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내가 다니는 학교는 상대적으로 조용하였고 '우리 학교에는 전교조 교사가 한 명도 없습니다. 안심하고 학교에 보내십시오.'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이 배부되었다. 그런데 가정통신문이 나오고 며칠 후, 영어 선생님께서 침착한 목소리로 마지막 수업이 될 것 같다고 하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학교에도 전교조 선생님이 계셨고 얼마 전 해직을 당하셨다. 그런데 그런 거짓 가정통신문이 나가는 것에 화가 났다. 그 분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고 계신다. 나는 우리 학교에 전교조 교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전교조에 가입하였다. 그 선배님은 부양할 가족이 있는데도 그런 용기를 내셨는데 나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전교조는 영어 선생님의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남았다. 전교조 선생님을 쫓아내고 거짓 평화를 두르고 있던 학교와 그 진실을 알리고자 해고를 무릅쓰고 뒤늦게 전교조에 가입하고, 마지막 인사를 남겨야 했던 선생님. 그 해의 경험이 나를 전교조에 가입하게 만들었다.

 

지금 보면 유치하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참 끔찍한 <교장교감 정신교육 지도록>에는 저들이 전교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막으려 했는지 잘 드러나 있었다.

 

윤원구 명지대 교수를 불러 '민중민주주의란 극히 교묘하게 위장된 용공노선'이라는 연수를 실시하고, 각 신문에 나온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 기사와 사설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1989년 4월 10일에는 발기인 서명교사 22명을 불러 서명하게 된 동기에 대한 대화와 바람직한 교사의 할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적혀있는데 그 대화가 어떠했을지는 쉽게 짐작이 된다. 결국 22명의 교사 중 20명의 교사는 '발기인이란 사실을 모르고 참교육을 한다고 해서 동의했다'고 물러섰다는 내용도 볼 수 있었다. 

 

6월 18일에는 교장 긴급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전달한 내용도 보인다. 해직교사 복직 촉구 한겨레 신문 광고에 9분의 선생님이 서명을 했는데 그 명단을 청와대가 입수하였고 이 서명자들 역시 전교조 가입 활동가와 동일시 취급하겠다는 내용이다. 다만 1.전교조 조합원이 아니다, 2.동정해서 했다 3.공무원 신분으로 잘못되었다 4.앞으로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5.서명을 무효로 한다는 각서를 쓰면 징계에서 면제해주겠다고 한 뒤 각서를 앞에 두고 선생님들을 개별 면담한 기록도 실려 있다.

 

이러한 협박과 회유를 견뎌가며 해직까지 감내했던 선배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지금 한국 교육이 이만큼이라도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저들의 모진 협박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함께 했던 선배 선생님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법외노조 문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관련 조직 입장 등 쉽지 않은 문제들이 전교조를 힘들게 하고 있으나, 언제는 전교조가 쉬운 길을 택한 적이 있었던가? 이 역시 조합원들의 집단 지성과 의지로 헤쳐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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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05 [15:02]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