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강좌] 자전거 타고 진부령 넘자

권혁소 · 강원 원통고 | 기사입력 2017/07/1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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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강좌] 자전거 타고 진부령 넘자
권혁소 · 강원 원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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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1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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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회 한 사발 먹고 싶은 고성 화진포, 반암바다.   

 

내가 사는 곳 '원통'을 소개하면 남자들 중 열에 아홉은, 알은 체를 한다. 군대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내 또래 쯤 되는 남자들이야 '그 시절' 원통의 화려한 오색 네온에 대한 기억으로 반색하는 거겠지만, 지금은 그 오색 네온 대신 치킨집과 피시방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다. 군대도 군인도 변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설악에 들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마을, 원통은 내설악의 관문이다. 그런데 엊그제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됐으니 어쩌면 이곳을 통하지 않고도 설악에 들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편하게'를 외치니 동해로 가는 최북단 고속도로는 더욱 붐빌 것이다.
 

학교는 44번 도로변 가까운 곳에 있는데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멈추지 않는 크고 작은 자전거 행렬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몰라도 목표는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영북3령(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중 하나를 넘어 속초에 이르는 것일 게다.
 

그들은 어떤 길에 자전거를 올려두고 우리나라 최동단 국토에 가려는 걸까? 자전거를 타 본 이들은 알겠지만 자전거를 타고 어두침침한 터널을 통과하는 일은 가히 공포스러운 일이다. '약자의 설움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절감하게 된다. 하여 이 글은 초보 자전거 라이더가 어떻게 차를 피하고 터널을 피해 동해 바다에 이를 수 있는지, 그 여정을 소개하는 글이 될 것이다.
 

일단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원통터미널까지 오시라. 면 소재지이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군부대가 차고도 넘쳐 교통편은 매우 훌륭한 편이다.
 

원통터미널에서 2km 쯤 동북진하면 첫 번째 갈림길 '내설악 휴게소-한계 삼거리'다.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면 한계령길이고 왼쪽으로 꺾으면 미시령이나 진부령으로 갈 수 있다. 한계령은 정상까지 근 20km에 달하는 오르막이니 초보 라이더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근력이 좀 붙었다면 단풍철에 꼭 한 번 도전하시라. 자전거 라이더가 언제 관광버스를 추월하며 정상에 올라 보겠는가. 그렇다, 가을에는.
 

'길을 모를 경우에는 큰길로 가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건 네 발 달린 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전거는 가급적 작은 길로 가는 게 안전하고 평화적이다. '내설악 휴게소'부터 '자전거 길' 표시가 되어 있는데 괜히 큰길을 고집하다가는 무시무시한 터널, '한계터널'과 '용대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차를 두고 왜 자전거를 타겠는가. 걷는 것보다는 빠르지만 차보다는 느리게 가기 위해서 아니던가. 4차선을 피해 오른쪽 자전거길을 택하면 속초로 가던 옛길이다. 오른쪽에 명경지수를 끼고 가는 길, 물빛은 물론 가을이 최고지만 사철 시린 빛깔을 유지한다. 차가 없으니 눈은 맑아지고 마음은 환해진다. 봄에는 말 그대로 연두 터널이다. 큰길로 올라타지만 않으면 소꿉장난 같은 20km 길을 따라 십이선녀탕, 만해마을, 백담사, 황태마을을 지나 '용대 삼거리'에 닿게 된다. 일단 좀 쉬고, 여기서 다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미시령길이고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진부령길이다. 강원도에도 몇 남아있지 않은 편도 1차로다.
 

▲  진부령 정상 서있는 백두대간 표지석. 여기서부터 바다가 보이는 '대대 삼거리'까지 22km는 내리막이다.

 

'령'이라 이름 붙긴 했지만 '용대 삼거리'에서 진부령 정상까지는 밋밋하고 짧은, 5km 남짓한 오르막이다. 숨이 꼴딱 넘어갈 정도는 아니다. 정상에 '진부령 미술관'이 있으니 운이 따른다면 남다른 그림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상에서는 쉬어가는 미덕, 목도 축이고 까치발로 '향로봉'도 한 번 쳐다보고, 고성 '대대 삼거리'까지 장장 22km를 내려갈 생각만 하면 된다. 속도가 느슨하다면 한두 번 페달링으로도 금방 가속이 된다.
 

세월호 무렵 2년 동안 이 20km 길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길을 달릴 때는 '껍데기의 나라'를 떠난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이 길, 진부령 정상에서 진부리, 장신리를 거쳐 고성(간성)에 이르는 길은 가히 우리나라 최후의 원시 도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길이다. 이 길을 다닐 때마다 빌었던 소원이 하나 있었는데 '제발 확장되지 않았으면' 하는 거였다.
 

여전히 오른쪽으로는 수량 풍부한 계곡이 있고 왼쪽 길가로는 향로봉이 흘려보낸, 모골이 다 송연해지는 계곡수가 군데군데 있어서 식수를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여행길이 풍족하다. 급하게 굽은 곳이 열댓 군데 있지만 완만한 내리막길이라 누구라도 안전하게 '다운 힐'을 즐길 수 있다. 아무리 초보라도 시속 40km는 보장할 수 있다. 이런 길에서 노래 한 자락 흥얼대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어딘가 고장 난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서울에 너무 오래 살았던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진부령을 반대로 오르는 나그네들을 만난다면 '엄지 척', 격려를 보내는 여유도 괜찮을 것이다, 
 

휴, 다 왔다. '대대 삼거리'에 도착했다면 이제 선택은 그대의 몫이다. 동해안 자전거 도로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가다가 최북단 '명파초등학교' 앞 검문소에서 막혀 길을 꺾어도 좋고, '반암바다'에서 물회를 한 사발 먹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다가 '대포항'이나 '물치항'에서 활어회 한 접시 시켜놓고 원영만 전 위원장 동지에게 전화를 넣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그가 펌프를 챙겨 들고 바람을 넣어주러 한달음에 달려올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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