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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망 칼 럼] 전교조는 참나무나 돌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은균 · 교사 · 전북 영광중 기사입력  2017/07/11 [14:02]

 

2009년 처음으로 학교 분회장을 맡았다. 20명이 조금 넘는 규모의 분회였다. 분회 막내였다. 부담감이 컸지만 여느 해와 다른 색깔을 내는 분회로 꾸려가고 싶었다. 안팎의 여러 이유로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를 일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해 3월 중순 어느 날 아침이었다. 출근하여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켜는데 바로 옆 출입문이 열렸다. 조합원 선생님 한 분이 찾아와 전교조에서 탈퇴했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말에 뭐라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사이 선생님은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날 오후 퇴근하려고 책상 위를 정리할 때였다. 또 다른 조합원 선생님 한 분이 다가와 통보하듯 전교조 탈퇴 사실을 알렸다. 나는 "예?"라는 1음절의 반문 한 마디밖에 내놓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주를 내내 무력하게 지냈다. 한 해를 새롭게 꾸려가려던 다짐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궁지에 몰려 있던 이명박 정권의 시민사회 반격이 본격화하던 즈음이었다. 전교조부터 단단히 결집한 조합원 선생님들의 힘을 빌려 맞서야 한다는 게 당시 내 생각이었다. 그런 바람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내게 '멘붕'을 안겨준 '형님' 같은 그 선생님들이 차갑게 알려주었다.
 

얼마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전교조 선생님들의 조합 탈퇴 이야기를 담은 글 몇 개를 보았다. 표면적으로 6·30 총파업에 임하는 전교조의 입장과 본부의 대응 방식,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관련한 쟁점들이 주된 이유처럼 보였다. 글들에서 '탈퇴'라는 단어가 보이자 머릿속에 2009년 3월 어느 날의 그 충격적인 기억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시류와 정세는 변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정서나 가치관, 삶에 임하는 태도가 바뀌는 것 역시 당연하다. 이번에 전교조에서 탈퇴한 이들 역시 시류와 정세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바뀌고 있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처음 전교조에 가입하면서 가졌던 생각과 전교조 조합원이 된 뒤 접한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을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전교조는 이번 일을 조그만 '소동'쯤으로 보고 가볍게 지나가야 할까.
 

나는 이번 일을 '사태'라고 규정하고 싶다. 일련의 탈퇴자가 출현하게 된 과정과 배경을 나름대로 따져보았다. 과장해서 말하면 조직이 안에서부터 '붕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적' 사건처럼 보였다. 국가 권력의 탄압과 같은 외적 요인보다 조직 내부의 사정에 말미암은 바 컸다.
 

이번 '사태'에 교훈이 있다면 그 실마리를 이런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전교조의 불길한 앞날에 대한 징후처럼 보이는 이번 조합원 탈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전교조의 기간(基幹)인 분회 조직 선생님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전교조 조직 전체의 의사결정이 좀 더 역동적인 과정 속에서 이뤄지기를 바란다. 가만히 있어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이다. 말하기보다 더 깊이 진심으로 듣고, 어설프게가 아니라 철저하게 알아야 하며, 말로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국가는 참나무나 돌이 아니라 인간으로 만들어진다. 그 인간이 어떠한지에 따라 국가의 모습이 결정된다. 몇 년 전, 미국 언론인 밀턴 마이어가 쓴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서문에서 만난 구절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침묵과 안이함이 만들어낸 나치 독재와 오욕의 역사라는 책의 주제를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전교조 역시 국가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전교조의 활동 방향이나 이른바 '투쟁 방식'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본부나 지회나 지부에 강하게 항의하자. 전교조는 참나무나 돌, 또는 몇몇 지도부나 활동가가 아니라 평범한 대다수 조합원이 만들고 이끌어가는 조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과 겨울에 타오른 1700만 촛불이 가르쳐준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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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11 [14:02]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