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 뻗고 실컷 한번 울어보고 싶다”

김형태 | 기사입력 2017/06/19 [22:31]
특집기획
세월호
“두 다리 뻗고 실컷 한번 울어보고 싶다”
[동행 취재] ‘4.16의 아픔과 진실 마주하기’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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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1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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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취재] ‘4.16의 아픔과 진실 마주하기’

617토요일. 전교조 416특위에서 주최하는 4.16의 아픔과 진실 마주하기행사에 기꺼이 동행했다. 알 수 없는 빚진 마음에 한번은 가봐야 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하루하루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에 아침 일찍 목포신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런 마음으로 40여 명의 명의 교사들이 서울에서, 충북에서 모여 목포를 향해 출발했다.

 

세월호 희생자들 대부분이 학생과 교사들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 입장에서는 남의 일 같지 않다. 자식을 잃은 부모만큼은 아니더라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돼 별이 된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교사들이 많다. 304명 희생자 가운데 우연한 기회에 한 두 명을 보다 깊이 알게 됐고 그렇게 인연을 맺은 아이들이 잊혀지지 않고 반짝이도록 기꺼이 밤하늘이 된 교사들....

 

▲ 목포신항의 세월호     © 최대현 기자

 

최주연 서울 마곡중 교사는 2016겨울방학식 교실 행사에서 우연히 강수정 학생 역할을 맡으면서 수정이를 알게 됐다. 또한 문지성 학생과 생일이 같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지성이도 304명 가운데 특별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는 수정이와 지성이 얘기를 하다 그만 울컥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안산에서 온 강미자 교사는 주일학교 학생이었던 길채원 학생을, 권혁이 교사는 사회복지사를 꿈꿨던 전하영 학생을, 윤경희 교사는 일반인인 이영숙 님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다들 그렇게 이런 저런 사연으로 한두 명의 희생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416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마음에서 참여

목포로 가는 차 안에서, 참여하게 된 계기와 세월호에 대한 생각들을 들었다. 많은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자는 뜻에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세월호도 인양됐고 새 정부도 출범했으니 이제 그만하자, 다른 일들도 많은데 언제까지 세월호 문제에 매달려 있을 것이냐 말들 하지만, 이주연 교사는 “3년이 지났지만 끝난 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고, 이상걸 교사도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고, 계속 관심 가져야겠다는 뜻에서 합류했다고 말했다.

 

▲ 잊지 않겠다는 약속     © 최대현 기자

 

권혜령 교사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된다. 특히 자기가 경험하지 않는 일은 더욱 빨리 잊게 된다면서 발로 뛰어다니며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는 덜 잊기에, 잊지 않기 위해 오늘 시간을 냈다고 말했다. 

 

이길순 교사는 단원고 운동장 계단에 새겨져 있던 노란 리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경기도교육청의 누리집에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팝업창이 사라져 놀랐다고 말문을 연 뒤, “3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탈상하듯 세월호 지우기 작업을 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백순옥 교사는 효순미선 15주기 추모문화제다녀온 일을 예로 들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목포까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속히 접근성이 좋은 화랑유원지에 안전공원이 마련돼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망각과 기억의 싸움에서 나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그러고 보니 고 권오천 학생의 형 권오현 씨에게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물으니 내가 동생의 존재를 까먹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있을 때라고 말한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세월호 투쟁은 망각과 기억의 싸움이고,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며 기억하기 위한 발버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차원에서 준비한 세월호 관련 영상을 목포 가는 버스 안에서 시청했다. 세월호 생존자의 3년의 시간을 담아낸 <승선>, 동생을 잃은 세 명의 형제자매들 이야기 <오늘은, 여기까지>,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했던 민간잠수사 김관홍의 삶을 담은 <잠수사> 6편이었다. 모두에게 가슴 아픈 기억이었던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담아내어 가슴 먹먹한 울림을 선사했다. 영상을 보면서 몇몇 교사들은 말없이 눈시울을 적셨다.

 

오후 2시 쯤 목포신항에 도착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접한 풍경이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처참한 몰골의 세월호를 직접 보니 마치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움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용석 교사는 하늘은 이렇게 예쁜데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는 흉측하다. 살아있는 생명을 삼켜버린 괴물 같다고 토로했고, 완도에서 태어났다는 김미영 교사는 세월호 안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프다며 고개를 떨궜다.

 

▲ 현수막 앞을 지나는 사람들     © 최대현 기자

 

인양된 세월호는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휴전선 앞에 서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일시정지라는 차단기를 보며 더는 접근할 수 없는 분단의 땅처럼 느껴져 문득 진실에 닿기까지는 아직도 많이 시간이 걸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월호 속에 아직도 사람이 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가족의 품으로!”,“엄마는 끝까지 기다립니다. 엄마니까... ”라는 펼침막과 마지막 한 사람 찾을 때까지 우리는 기다립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네게 닿을게 내가 있을 게”, “영인아, 축구화 사놓았어. 땀 흘리며 잔디 위를 뛰는 모습... 매일 상상해 봐...”, “양승진 선생님을 찾아주세요두 아이들의 결혼식날 아빠가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는 팻말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철조망마다 무수히 매달린 노란리본과 추모의 띠가 마치 비바람에 꺾인 애기똥풀처럼 뚝뚝 흘리는 샛노란 눈물로 보였다.

 

▲ 간담회에 참석한 사람들     © 최대현 기자

  

세월호가 인양된 이후, 미수습자들이 돌아오고 있다. 55일 세월호 침몰해역에서 고창석 선생님의 유골이 수습됐고, 510일부터 13일까지 세월호 4층 선미에선 조은화 학생의 유해와 유류품이 발견됐다. 516, 세월호 3층 중앙에서 허다윤 학생의 유해가 수습됐고, 522일 세월호 3층 선미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이영숙씨의 온전한 유골을 찾았다. 그러나 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 단원고 양승진 선생님, 여섯살 혁규와 아빠 권재근씨는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은화엄마, 두 다리 뻗고 실컷 한번 울어보고 싶다.

일행을 만난 은화엄마 이금희 님은 오늘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59일차라고 말문을 연 뒤 그 때 당시는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신이 올라오면 서로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5일이 지나자 얼굴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로 바뀌었고 10일이 지나자 시신을 찾은 부모에게 축하한다고 말하게 됐다. 시신을 찾은 부모들은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마음껏 울지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 은화 엄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 최대현 기자

 

못 찾을까 무섭고, 남겨질까 두렵고... 그렇게 3년을 끔찍하게 보냈다. 여기 있는 게 공포스럽고 정말 싫다. 집에 가고 싶다. 그러나 떠날 수가 없다. 팽목에서 소수로 남겨져 봐서... 우리는 희생자 속에서 또 희생자이다. 끝내 못 찾은 부모들은 어떻게 사나? 처음부터 사람을 중심에 놓고 사람부터 찾자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비교적 차분하게 이야기하던 은화엄마 이금희 님은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30분 정도 계속 말을 이어갔고, 말없이 숙연하게 이야기를 듣던 많은 교사들이 여기저기에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

 

고창석 선생님 정강이뼈 하나 찾았다고 과연 그게 수습한 거냐? 객실 1차 수습이 끝나가는데 이영숙 님 외에는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겨지는 사람 하나 없이 9명 모두 함께 집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 간담회 참가자들을 안아주는 은화 엄마.     © 최대현 기자

 

은화 엄마는 이어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곳 현장에서는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고,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또한 은화가 옆에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은화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도 죽을 수 있다며  옆에 있는 가족들을 많이 안아주고 부디 행복하게, 재미있게, 웃으며 살라는 말과 함께 오히려 방문객인 우리 일행을 한 사람 한 사람 안아주며 따뜻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동수아빠, 틀에 박힌 교육에서 벗어나야

자리를 옮겨 동수 아빠 정성욱(416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님의 이야기도 들었다. 이곳 목포신항에는 20명 정도의 유가족들이 상주하고 있고, 그중에서 10명 정도가 교대로 작업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김영춘 신임 해양수산부 장관이 다녀간 다음이었다. 동수아빠는 새 장관이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며 선체만 올라왔을 뿐 크게 달라진 게 없다. 831일 수색을 마무리하겠다고 하는데, 9, 10월까지 연장해서라도 미수습자 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동수아빠와의 간담회 그의 뒤로 '왜 구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이 선명하다     © 최대현 기자

 

또한 “80일 동안 작업자들이 쉬지 않고 일해 피로가 누적돼 있다면서 안전사고 위험에도 만전을 기해 달라 말했다고 했다. 아울러 다시는 이런 일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산에 안전공원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부 주민들 반대로 쉽지 않다며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끝으로 교사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아이를 잃고 나서 절실히 느끼는 게 우리교육과 우리 사회가 너무 틀에 갇혀 있다. 참사 당일 위험 상황에서 선생님들이 왜 모이라고 했을까? 왜 나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원망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에게 너무 공부 공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 소질, 재능 등을 살려주는 교육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다.

일행은 추모와 다짐의 활동으로 현지에서 노란리본 천을 받아 메시지를 적어 인양장소 주변에 걸기도 하고, 미리 준비해가는 펼침막에 메시지를 돌아가며 함께 적고 걸기도 했다.

 

▲ 다짐의 말을 적어보는 교사들     © 최대현 기자

 

끝까지 진실을 밝혀져서 안전하고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기 바랍니다. 그것이 별이 된 아이들이 바라는 것입니다.”, “긴 시간 동안 무섭고 외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늦은 만큼 오랫동안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단 한명도 남겨지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힘내요. 모든 것이 밝혀질 때까지 함께 해요! 기억과 진실의 약속 함께 하겠습니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교사들은 가슴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펼침막과 노란 리본에 쏟아놓기 시작했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글 대신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홍채연 노곡중 1학년 학생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듣기만 했는데 직접 와서 보고 듣자는 마음에서, 시험을 앞둔 시기임에도 용기내어 왔다미수습자들이 모두 돌아왔으면 좋겠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고, 아빠를 따라 충북에서 온 중학교 2학년 백지민학생도 미수습자들이 하루 빨리 가족들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동생 백의찬 어린이는 이런 아픈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자못 어른스럽게 말했다.

▲ 한 학생은 세월호를 그렸다     © 최대현 기자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일행 말고도 주말을 맞이하여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로 발걸음을 했고, ‘실상사 작은학교학생들은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에서는 붕어빵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선사하는 등 사람들은 목포신항에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일행은 세월호 전시관 등도 둘러보았다. 이제는 서울로 가야 할 시간, 그러나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가 돌아와도 기뻐할 수 없고, 다리 뻗고 실컷 울어보는 게 소원이라는 은화엄마의 말이 자꾸만 귓전을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속히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도하면서, 노란 리본에 그런 마음들을 한 자락 담아 걸어놓고 되돌아섰다.

  

이용석 교사는 이분들이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함께 할 것을 다짐했다여한 없게 하려면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고 했다.구자숙 교사는 아이를 만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고통에 마음 아팠다오늘 집에 가서 당장 실천하겠다고 했다. 우은주 교사는 학생부 사진, 학생증 사진이 영정사진이 된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고, 황다혜 교사는 공허한 구호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실천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걸 교사는 세월호가 인양됐으니 거의 해결된 것처럼 생각했는데 오늘 와서 직접 보니 안일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생각보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고통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며 사람 먼저, 사람 우선, 사람 중심의 교육 및 사회 시스템이 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진실을 감추려는 자와 진실을 밝히려는 자의 싸움에서 기꺼이 진실 편에 서겠다. 교사들이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나?며 다짐과 의지를 보였다. 한 교사는 몸은 비록 탈진할 지경인데 오히려 이곳에 와서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했다. 반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오늘 답을 찾았다는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은 우리 사회의 밀알과 같은 존재다. 누가 뭐래도 이 분들의 희생과 진실 요구 덕분에 우리 사회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온통 상처투성이다. 4.16의 상처는 과연 아물 수 있을까? 또 다른 4.35.18처럼 우리 역사에서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을까봐 솔직히 걱정된다.

 

4.16 이전과 이후는 확연하게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저절로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을 것이다. 노을 속으로 멀어져 가는 세월호를 되돌아보며, 한번 더 무겁게 약속하고 다짐했다. 별이 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교육과 우리 사회가 달라지는 계기로 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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