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그래요?] 연결되지 않을 권리, 연대해야 할 의무

주윤아 · 경기 호평중 | 기사입력 2017/05/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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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래요?
[어머 그래요?] 연결되지 않을 권리, 연대해야 할 의무
주윤아 · 경기 호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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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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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입 온 새 학교는 전체 교직원들의 단체 카톡방이 운영되고 있다. 새 학교 주소록에 내 이름을 올린 순간부터 초대장 한번 받지 않고도 2~3월 사이 내 폰에는 전체 교직원 단체 카톡방, 전교조 단체 카톡방, 동학년 단체 카톡방 등이 줄줄이 생성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전체 교직원 단체 카톡방의 개설 이유를 물으니 신속하고 긴밀하게 업무를 공유하고 일상적인 응원과 격려로 동료성을 높이려는 목적이라는 답변을 들었지만 여전히 동의가 되지 않은 나는 '퇴근 후 카톡 금지법 발의' 등을 운운하며 소극적으로나마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기존 교사들에게는 오래도록 요긴하게 운영되고 있었던 때문인지 결국 나는 단체방을 나오는 것으로 고민 해결을 잠정 보류하였다. 이후 학부모 총회 때에는 부모님들이 작년처럼 학급의 학부모 밴드를 개설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고, 담임반의 아이들 역시 학급 밴드나 단체 카톡방 개설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매년 이런 유사한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독 새 학교는 전 구성원들이 다양한 온라인 네트워크로 촘촘하게 묶여 있는 것 같다. 연결의 과잉이다. 미친 듯이 바쁜 3월의 와중에도 이 불편함의 기저에 대한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연결은 가능한 한 내가 스스로 정한다'이다.
 

요즘 학교의 풍경을 보자. 이제 우리는 상대에게 볼 일이 있어도 서로의 교무실로 찾아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지 않는다. 아니 같은 교무실 안 지척에 앉아 있어도 메신저를 이용한다. 전화 한 통화로 금새 해결될 일도 왠지 수화기 너머로 전달되는 서로의 육성소통이 부담스러워 업무용 메신저로 기꺼이 여러 번에 걸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학생들과도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줄고 덜 어색한 메시지로 용건을 편하게 해결한다. 물론 여전히 발로 뛰고 얼굴 마주하는 부지런한 교사들도 있다. 나의 경우 길에서 버리는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여 10시간 만에 귀가하여 제2의 직장인 집안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버거운 일상이 있다. 특히 수면시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학생과 자녀에게 늘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하루 중 아무 것도 안하고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여유야말로 인공호흡, 그 자체다. 그리하여 여백과 무상무념의 시간을 방해하는 과잉 연결에 더욱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미지의 다수와 소통하는 데 채 1초도 안 걸리는 빛의 속도의 시대, 어디서부터 누구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는 거미줄처럼 얽힌 수많은 SNS들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실제 모습보다 과장하고, 타인들의 피상적 삶의 모습과 경쟁하고, 현실보다는 가상의 공간에서 욕망하는 현실은 우리 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어른이자 교사인 우리는 아이들의 고립과 소통의 부재를 심각하게 걱정한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라. 식사하고 두런두런 모여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친구나 동료로 만났던 시간들이 언제부터 사라졌는지를. 급식실에서 전투적으로 밥을 먹고 곧장 각자의 교무실로 돌아가 업무용 메신저나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건조한 풍경이 다반사일 것이다. 인터넷과 휴대폰, SNS의 상상초월의 효용성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우리가 성찰해야 할 질문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무엇으로 연결되어야 하는가? 불필요한 연결은 과잉되는 반면, 절망의 나락에서 따뜻하게 손 한 번만 잡아주어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소외된 우리 이웃들과 연대해야 할 의무는 정작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님의 저서 <눌변>이 가슴에 와 박힌다. 룗미디어 이벤트에 집단적으로 열광하고 가끔 정치적 함성이 광장으로 모여들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저마다 비좁은 골방에 갇혀 지내기 일쑤다. 또한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치는가에 과민하면서, 타인의 곤경에는 지극히 무심하다. 연결의 과잉, 관계의 결핍 시대다. 공감의 유전자는 아직 살아 있을까룘.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의 무늬를 더듬어본다. 타인에게 이르는 미지의 통로를 응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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