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선 촛불시민, 학교에선 미숙한 아이

이기규 · 서울 초당초 | 기사입력 2017/05/1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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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선 촛불시민, 학교에선 미숙한 아이
이기규 · 서울 초당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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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1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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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들려주는 교양강좌'에서는 선생님들의 숨은 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교사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지식·교양을 보내주세요(chamehope@gmail.com) 조합원들의 인문학 소양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최고 권력인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민주주의 국가의 진정한 권리 주체가 국민임을 재확인시키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에 대한 새롭고 진지한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다. 헌법 읽기 운동 열풍이 분 것도 이런 흐름 속에서 생겨난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는 민주주의의 불모지다. 촛불 광장에서 초등학생은 한 명의 시민으로 대우받지만 학교에서는 여전히 미숙한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다. 우리가 헌법을 배우고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것은 단지 광장의 어른들만을 위한 일은 아닐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의 기본적인 가치를 담은 헌법과 학교의 기본적인 가치를 담은 학칙을 비교해 보는 것은 학교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깊이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민 권리 보장 헌법, 학생 권리 없는 학칙
 

모두들 알다시피 헌법은 국민투표로 개정 된다. 이는 우리 헌법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학칙은 어떨까? 법률상 학칙 개정에 학생은 의견을 낼 수 있고 학교는 당연히 의견수렴도 해야 하지만 학칙 개정안 심의는 학교운영위원회가 하고 학교장의 최종 승인으로 개정한다. 게다가 학칙의 심의를 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는 학생들이 참여할 수 없다. 참관을 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좀 더 심한 경우는 학칙 개정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교장으로 한정된 학교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럴 경우 학생 의견수렴조차 할 수 없다.
 

헌법 총강에 해당하는 제1조부터 제9조까지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자가 국민이며 대한민국이 어떠한 이념과 가치를 가진 국가인지 그리고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어떤 책임을 지는지에 대해 명시되어 있다. 학칙은 어떨까? 학교의 교육이념과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는 학칙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는 말도 물론 없다. 교사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는 학칙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의 제2장에 해당되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의 내용을 학칙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 헌법 제10조부터 제39조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국민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장에서 의무란 단어는 총 11번 나오는데 이 중 국민의 의무를 이야기한 것은 국방, 납세, 교육, 근로 등 4가지 밖에 없다. 나머지는 국민 권리 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학칙은 어떨까? 거의 대부분의 학칙에서 학생의 권리는 단 한 줄도 나와 있지 않다. 여기까지 말하면 우리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야 한다.
 

헌법은 제3장부터 국회, 정부 사법기관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권력 기관들이 어떻게 있어야 하고 서로의 균형을 이루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칙은 어떨까? 학교에서 학생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한 자치 단위는 학생회와 동아리가 유일하다. 그런데 이들은 학교에 대해 어떠한 목소리도 낼 수 없다. 대부분의 학칙에는 학교운영에 학생자치단체가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아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속 모든 권리 배제된 학칙
 

혹자는 학칙을 헌법과 비교하는 것은 너무 과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럼 다른 법률과 비교하면 어떨까? 모든 법률은 헌법 아래에 있다. 헌법의 가치와 방향과 다르다면 위헌이며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은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 모든 법률은 상위법을 침해할 수 없고 최고 가치인 헌법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학칙은 다르다. 서울 등 여러 지역에서 제정된 학생인권 조례는 학칙보다 상위법임에도 조례를 위반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심각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도 조례의 가치와 내용을 쉽사리 어기고 훼손하는 학칙에 대해선 침묵한다. 심지어 조례를 위반한 학칙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강력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 학생인권 조례에는 강제조항이 없어서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헌법엔 강제조항이 있어서 지키는 것일까? 우리가 헌법을 수호하는 것은 헌법의 가치와 방향이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학생인권조례의 대부분의 내용은 대한민국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바탕으로 제정되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누구든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말이 난무한다. 헌법에서는 모든 국민이 신체의 자유를 가지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엔 체벌이 존재한다. 모든 국민은 죄가 확정되기 전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동일 범죄로 가중 처벌을 받지 않지만 학생은 학교에서 한 가지 잘못으로 수차례 징계를 받는다. 헌법에 모든 국민은 사생활 침해를 받지 않지만 학생들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일기 검사며 핸드폰 압수며 소지품 검사를 강요당한다. 헌법에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 집회 시위의 자유를 갖지만 학교의 학생들은 모임을 만들 수 없고 자신만의 여론을 만들 수 없으며 시위를 하면 당연히 징계를 받는다.

촛불시민혁명 이어가려면
 

우리나라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의 권리가 학교의 학생들에겐 항상 배제되어 있다. 정권이 바뀌고 민주주의의 열망이 높아져도 여전히 학생은 국민이 아닌 것이다. 이러고도 우리는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학교 현장에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촛불 시민 혁명의 위대함을 말 할 수 있을까? 여전히 학교에선 위헌적인 학칙이 난무하고 학생들은 여전히 국민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데 말이다.
 촛불이 만든 민주주의의 열망이 학교에서 꺼져버린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에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제는 교사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헌법 다시 읽기' 열풍이 부는 것처럼 교사들이 학생들과 학칙을 읽고 학칙의 비민주성과 위헌성을 바꾸려 노력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시도를 학교 현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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