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그래요?] 여성혐오와 학교의 젠더 무감성

최현희·서울 위례별초 | 기사입력 2017/03/3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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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래요?
[어머 그래요?] 여성혐오와 학교의 젠더 무감성
최현희·서울 위례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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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3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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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의 본질은 여성을 보편적 인간으로 여기지 못하는 인식체계이다. 이명박은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비난받았으나, 박근혜는 대통령 자격이 없는 '여자'로서 비난을 받는다. 첫 여성 대통령이 실패했으니 이제 당분한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은 힘들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살인마 전두환의 성별이 남성이었다는 사실은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학교는 미디어, 가정, 광고 등의 끊임없는 성역할 강요와 성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아이들이 특정 성별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사고하는 개인으로 발달하고 성장하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젠더 무감성의 학교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강력한 성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다. 성장치란 성역할과 성차별을 상식, 자연적인 질서, 원래 그런 것으로 내재화하도록 하여 성적 억압의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성평등한 곳이다. 학교안의 제도적인 차별은 모두 사라졌으며, 여자라고 입학을 제한당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성평등한 학교'에서 젠더에 대한 교육을 삭제하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성차별 문제를 은폐하는 강력한 성장치가 된다. 우리는 학교에서 여성혐오 및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 양성평등을 다루는 초등 사회과에서는 우는 남학생, 축구하는 여학생의 사례와 함께, 양성평등은 편견을 버리고 서로 이해하면 해결될 일 정도로 다뤄진다. 성평등은 기존의 성역할을 뒤바꾸는 식으로 이뤄질 수 없으며, 구조적인 성별 권력에 대한 이해와 이분법적인 성 구분의 폭력성에 대한 인식이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학교는 이것을 다루지 않는다.

 

젠더에 무감각한 학교는 성차별이 스며있는 교육과정 및 교과서를 여과 없이 수용한다. 친자본적이며 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교사들은 많지만 교육과정 재구성에서 성차별을 고려하는 교사들은 많지 않다. 교과서에 실린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남성 주인공의 서사이며 교과서의 삽화에서도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직업군은 여자보다는 남자로 묘사되고,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은 주로 여자로 그려진다. 역사교육에서는 남성중심의 역사를 충실하게 재현하며 여성의 정치적 사회적 활동이 제한된 사회에서도 인류의 많은 여성들이 남긴 투쟁적인 역사는 성실히 삭제한다. 

 

아이들은 이미 교과서 밖의 세상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여성혐오를 내면화해서 학교에 온다. 유아 애니매이션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화 컨텐츠에서 모험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는 대부분 남성이며 여성캐릭터는 남성캐릭터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문다. 아이들은 자신이 소비하는 문화상품에 녹아있는 성차별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평가할 힘이 없다. 

 

학교의 운영이나 학생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 엄마라는 사실에도 학교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주양육자를 당연스럽게 '엄마'라고 호칭하며 성역할을 재생산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아이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요즘 엄마들은'으로 시작하는 여성혐오 발언을 듣는 일은 학교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이밖에도 젠더에 무감각한 학교는 성차별적인 학교 문화를 용인하며 아이들을 이분법적인 성으로 성별화하고, 아이들 개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기에 앞서 성별에 따른 범주화된 틀로 아이들을 평가한다. 여성의 몸을 단속하고 통제하는 식의 성폭력예방교육이 이루어지고, 스포츠동아리가 남학생 위주로 운영되는 것에 대해 별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학교의 젠더 무감성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교사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일이다. 한국사회는 전반적으로 젠더 감수성이 낮은 사회이다. 많은 나라에서 성차별을 심각한 사회적 과제로 여기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사회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국은 성차별의 해결 이전에 그것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고 설명하며 논쟁해야하는 단계이며, 명백한 여성혐오 사건에도 여혐 '논란'이라는 제목이 기사에 붙어 보도되어 이것이 여성혐오다 아니다를 갑론을박하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학교만큼은 배움과 지성의 터전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모든 교사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성찰하며 성적 억압에서 자유로운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만들어기를 바란다. 학교의 성장치 안에서 성차별을 내면화하며 성장해온 우리가, 이제는 성장치가 되어 아이들을 억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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