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그래요?] 여성이 자기방어 시작할 때 세상은 달라진다

성보란 · 경기 부천공업고 | 기사입력 2017/03/1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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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래요?
[어머 그래요?] 여성이 자기방어 시작할 때 세상은 달라진다
성보란 · 경기 부천공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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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1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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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교에 발령을 받은 첫 학기 봄에 있었던 일이 기억이 난다. 교실 뒤쪽에 앉아있던 남학생 한 명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핑계로 나를 불렀고, 다른 학생이 그 뒤를 지나가면서 내 치마 뒷자락을 들어올렸다. 나는 매우 당황했고 수치심이 밀려와 그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동료 교사에게 알리고 학생들을 처벌하면 왠지 새로 옮긴 학교에서 '나약한' 교사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수업이 끝나고 해당 학생을 불러 물어봤으나 그 사실을 바로 부인했다. 나는 통제력을 잃거나 분노감을 표출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 행동이 얼마나 모욕적이며 분한 감정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또다시 그런 행동을 했을 때에는 교칙에 따라 처벌할 것임을 경고했다. 퇴근 후 나는 무너지는 감정을 끌어안고 슬픔에 잠겨 한참을 울었다. 갑자기 수업시간이 두렵게 느껴졌다. 학생이기 때문에 '분개'하지 말고, '사랑'으로 그 행동을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꽃샘추위를 피하기 위해 무릎길이의 치마를 입고 두꺼운 검정 스타킹에 검정 속바지까지 입었다. 신중한 성격이라 학생이라도 쉽게 다가가지 않으며 평상시에 존댓말을 사용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는 편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학생들이 나에게 이런 행동을 했을까?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향하던 비판의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해 의심을 시작했다. 우선 내 가족부터가 어느 정도로 성평등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집안의 주인, '아버지'가 가족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순응하도록 설득하거나 이에 맞춰 행동하도록 강요한 적이 많았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친절'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여성'으로 잘 키우셨지만, 나는 가정과 학교와 사회 안에서 이런 '여성'으로 안전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불편함과 공포를 겪었다. 고3 담임을 하면서 학교 근처 자취방으로 들어갈 때마다 어두운 골목에 남성이 있는지 없는지 미리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또한, 남성 학부모의 폭언과 보복이 두려워 교권보호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성 동료의 차를 타고 학교를 나왔던 경험도 있다.
 

거주지에서조차 기본적인 안전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데, '친절'하고 '착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자기를 방어할 수 있을까? 지독하게도 제대로 분개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다스베이더는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네 분노를 풀어줘. 네 분노만이 너를 강하게 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정의감에 불타는 '쏘녀'였던 것 같다. 몸이 약하거나 내성적인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고,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괴롭히거나 놀리면 끝까지 쫓아가서 큰소리로 화내며 혼을 내줬다. 교사가 된 이후에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슬픔과 분노를 솔직하게 표현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동료들이 먼저 공감하여 함께 눈물 흘려주었고 용기를 내라며 다독여주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나는 결코 단순한 이유로 화를 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제 어려움에 맞설 용기를 가졌고 '용기'에는 성별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분명 여성이 자기방어를 시작할 때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라고 꼭 말하고 싶다.
 
*엘렌 스노틀랜드 지음, 사회평론 <미녀, 야수에 맞서다. 여성이 자기방어를 시작할 때 세상은 달라진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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