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서열화가 입시 지옥 문 열었다

박수선 | 기사입력 2017/03/17 [12:30]
특집기획
입시폐지대학평준화
대학 서열화가 입시 지옥 문 열었다
학벌사회의 짙고 긴 그림자
박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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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1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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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사회의 짙고 긴 그림자

인천교육청은 지난달 한 국제고의 대학 입시 성과를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가 교육단체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여기에는 올해 이 학교 정원의 51%가 이른바 SKY(서울·고려·연세대) 대학에 합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장 교육청이 나서 입시학원에서나 할 법한 홍보를 했다는 질책이 쏟아졌다.
 

노현경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인천지부장은 "명문대를 향한 입시 경쟁의 문제를 개선해야 하는 교육청이 이런 보도 자료를 여과 없이 내보냈다"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고 충분한 예산을 지원받는 학교를 홍보함으로써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하고 명문대나 특목고·자사고를 못가는 아이들에게 상실감을 안겼다"고 지적했다.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인천지부는 교육청에 최근 5년 동안 인권위의 권고 내용에 대한 후속 대응 등을 묻는 민원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학벌사회가 만든 공식 '행복=성적순'
학벌사회가 만들어낸 그림자는 짙고 길다. 서울대를 나와도 취업하기 어렵다는 푸념이 들리지만 명문대 진학을 위한 경쟁은 여전히 뜨겁다. 올해 서울대 정시모집 합격자 가운데 46.4%는 졸업생이었다. '서연고 서성한이 중경외시…' 수험생들은 서울대부터 순위를 매긴 대학 명단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합격을 기원한다. 'SKY' '인서울', '지잡대' 등 학벌 중심의 사회를 담은 표현은 일상 속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대학 간판에 목을 매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학벌 프리미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에 근무하는 고위공무원단(옛 2급 이사관 이상)의 절반은 상위 3개 대학 출신이 싹쓸이 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자료를 보면 서울대(33.7%), 연세대(12%), 고려대(9.5%) 출신이 전체 55.2%에 달했다. 또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신규 검사 가운데 SKY 대학 출신의 비율은 60%였다.
 

특목고·자사고에서 명문대로 이어지는 입시 코스는 한국사회에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진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경제학연구>에 실린 '학력(학벌)의 비경제적 효과를 추정한 연구' 결과는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치게 한다. 응답자 1만 1590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입학성적 상위 10개 대학의 졸업생 55.7%가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반면 고졸과 전문대졸의 경우 생활에 만족한다는 답변이 각각 28.2%, 35.3%로 집계됐다. 반대로 사회생활에서 차별적 처우를 인지하는 비율은 상위권 대학 졸업자의 경우 평균치 보다 4.6% 포인트 낮았다. 중졸 이하의 응답자의 차별적 처우 인지율은 평균치보다 4.0% 포인트 높았다. 
 

연구를 맡은 김영철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논문에서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한 국내 상위권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와 삶의 만족도 향상을 위한 '현명한' 방안이라는 것을 확인해 준 셈"이라며 "상위권 대학 프리미엄은 성적이 우수한 수험생들의 광범위한 재수현상, 우수 장학생들의 편입 풍토, 사교육 내 강화학습 등 국내 입시에서 드러나는 현상의 배경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대학 서열화는 줄곧 입시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특히 고교교육 다양화와 맞물려 고등학교까지 서열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애초 설립 취지와 달리 '명문입시 학원'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 자사고 문제가 대표적이다. 자사고는 이전 정부에서 고교 다양화 일환으로 처음 문을 열었지만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하고 교육 격차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 올해 서울대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 10곳 가운데 5곳은 자사고였다. 서울대가 국민의당 이동섭 의원 등에게 제출한 합격자 출신고교별 현황에 따르면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속고(73명), 하나고(57명), 상산고(44명). 민족사관고(35명), 안산동산고(35명) 등의 자사고가 명단에 올랐다. 

심해지는 교육 격차의 '주범' 
사교육비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수준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최대 8.8배까지 차이가 났다. 김준엽 홍익대 교수가 2015년 자사고 사교육 유발 효과를 분석한 연구에는 2007년 월 7만원 차이를 보였던 일반고와 자사고의 평균 사교육비가 2015년 10만 2천원으로 격차가 커졌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교육 정책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교육부가 최근 내놓은 교육복지종합대책에는 고등학교 수직계층화, 입시 경쟁 등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연달아 발표한 대학구조개혁안을 두고는 대학 서열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임희성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 줄 세우기 식의 평가지표로 정원을 감축하는 구조개혁은 대학 서열에 기반한 구조조정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교육부안대로 추진할 경우 지방의 소규모 대학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뿐더러 대학의 서열화를 공고히 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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