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 학년말 생기부 입력, 뭣이 중헌디?

유성희 서울 한울중 | 기사입력 2017/03/0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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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학년말 생기부 입력, 뭣이 중헌디?
유성희 서울 한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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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0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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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스 담당자는 2월에 참으로 바쁘다. 선생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입력한 생활기록부(생기부)를 최종 마무리해야하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코를 박고 네이스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교무부장님이 공문 한 장을 내밀었다. 공문의 내용은 작년 여름 우리 학교에서 한 학생이 경기도로 전학을 갔는데 "그 학생의 생활기록부의 맞춤법이 잘못돼 있으니 고쳐서 다시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맞춤법이 얼마나 잘못돼 있길래 이렇게 공문까지 보냈나 싶어 뒷장을 넘겨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2학기 회장(2015.08.19. -2016.02.29.)를 (2015.08.19.-2016.02.29.)로 띄어쓰기 수정

 행동특성 종합의견에 "기대됨" 뒤에 마침표가 없으니 "기대됨."으로 수정

 

 이렇게 군데군데 띄어쓰기와 기호 수정 총 4건이었다.


 순간 '아~ 대체 이걸 왜 고쳐야하지?' 한숨이 나왔지만, 어쩌겠는가? 공문 한 줄에 울고 웃는 것이 '전문직' 교사의 민낯 아니던가?


 생기부 수정작업은 대단히 복잡하다. 시작은 '그깟 띄어쓰기, 마침표 수정'이었지만 수정과정은 다른 생기부 수정 절차와 전혀 다르지 않다. 우선 성적관리위원회를 거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네이스 담당자가 수정과 결재를 수정 건수만큼 반복해야한다. 그렇게 수정이 다 끝나면 학생부 반영하고 끝. (네이스 시스템상 항목이 다른 수정 건수들은 일괄 수정이 불가능하다.) 말이 쉽지 네이스담당자-교무부장-교감-교장 4단 결재가 4번씩 왔다갔다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쯤 되니 슬며시 화가 났다. 선생님들로부터 '창의적 체험활동 이수시간이 맞지 않는다, 전학 온 학생의 자료가 네이스에 입력되어 있지 않다. 이건 누가 입력하는 거냐? 졸업처리, 입학처리를 해라'는 등의 정신없는 문의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 2월에 교사들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고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가, 자괴감이 들고 힘들었다.


 학년말, 교사들에게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을 말해보라고 하면, 무조건 '생기부'라고 할 것이다. 다양한 활동으로 수업과 학급운영을 마무리해야하는 중요한 시기, 대부분의 교사들은 생기부 입력에 매달려 있는 게 현재 학교의 현실이다.

 

  게다가 생기부가 입시자료로 활용되면서부터 기록해야 할 항목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이 교육활동 결과가 아닌 과정을 기록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은 이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생기부하면 이제 어차피 짜여진 극본과 그럴듯한 미사여구들로 포장해야 할 과중한 '잡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심지어 맞춤법을 맞춰라, 명사형 '-음'으로 끝내라는 등의 깨알지침들까지 더해지니 교사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생활기록부가 진정한 교육활동 과정의 기록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일단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기계든 시스템이든 직접 쓰고 고쳐본 사람만한 전문가는 없다. 또, 학생 1인당 9쪽이 넘는 생기부 기록 항목들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급별 상황에 맞는 생활기록부를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어사랑'도 좋지만, 의미 없는 '띄어쓰기, 마침표를 수정하라는 식의 요구'는 당연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정신없는 2월, 우리 교사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뭣이 중헌디!"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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