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 학생들 대자보가 불러온 '나비효과'

맹순도·강원 북원여고 | 기사입력 2016/11/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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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학생들 대자보가 불러온 '나비효과'
맹순도·강원 북원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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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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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학생의 날 등굣길에 '줄탁동시'의 의미로 삶은 계란을 나눠주기 위해 교문 앞에 섰다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학생 대자보를 보았다. "우리는 '馬'은 없지만 '말'할 권리는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기득권층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앞으로 물려받을 민주주의를 더럽히지 말아주세요." 민주국가라지만 어른들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글로 쓰기까지 수없이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더욱이 '학생'이라는 '신분'적 제약 속에서 대자보를 붙이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학생들을 떠올리니, 교사로서 학생들의 외침에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사회 구석구석이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대자보가 됐던, 거리에서의 외침이 됐던, 몇몇 교육청과 학교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불온시하고 억압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스스로 풀어가는 방법을 제시하며 '교학상장'하는 것이 바른 교육이자 교사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날 밤 학생들의 목소리에 답하는 형식의 대자보를 썼다. "입시교육에 눌려 시들어 있는 모습에 가슴 아팠는데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을 보며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제자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여러분의 선생님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사실 대자보 말미에 꼭 쓰고 싶었는데 공간 부족으로 미처 쓰지 못한 말이 있다. "여러분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은 졸업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후 후배들의 외침에 엄마세대 쯤 되는 선배가 교문 앞에 대자보를 붙였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건 어디선가 힘들고 외로울 함께 해야 할 이웃을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해. 고맙다, 자랑스럽다, 앞으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겠다"는 답을 했다. 나에게 배운 졸업생들도,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북원여고 졸업생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연락을 해 왔다.


 또 며칠 후에는 서울에 산다는 한 시민이 학생들에게 선물과 함께 정성을 담아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왔다. "미안하다. 부끄럽고 미안하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너희의 말처럼 너희가 민주주의 아래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너희가, 너희들의 아이들이 함께 꽃피우고 어우러져 갈 세상이 더는 오염되지 않도록 이제 보고만 있지 않으마. 이 땅의 민주주의. 더는 남의 손에만 맡겨 놓지 않으마"라며 글을 맺었다.


 학생들의 대자보, 교사로서 답했던 대자보, 선배로서 답했던 대자보, 그리고 이름 모를 시민이 보내 준 편지. 지금껏 교사로서 살면서 접해보지 못했던 이 움직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감동? 아름다움? 연대? 뭔가 부족해 보인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날갯짓'이라고 하면 좀 나을까? 뭐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우리 교육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함께 사는 사람 세상의 모습인 것만은 분명하다.


 혹시라도 이런 움직임을 보며 학생들을 부추긴다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전한다. 북원여고로 오시라. 민주시민 교육 받으시게.


 학생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 표현을 통해 함께 토론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그 의견이 받아들여짐으로써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키워주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각을 불러일으켜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민주시민 교육이고 민주국가의 모습이 아닐까?


 "저희가 배운 민주주의, 어디 갔습니까?"


 지난 9일. 원주·횡성 지역 중고등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현수막을 들고 외친 말이다. 이제 교사, 부모님, 어른들이 답해야 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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