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을 평화롭게 만드는 교실평화프로젝트를 실시한 첫해, 3월을 기세 좋게 열었다. 늘 가해자, 피해자로 살아왔던 두 학생과 상담을 진행했고, 서로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받아들였다. 평화 목표를 세우고 평화규칙을 만들며 반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편안해졌다. 아이들은 안심하고 자기 모습을 드러냈고, 활발하고 단합이 잘 되는 반이 되었다.
4월이 되고,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내지 않은 여학생의 전화벨이 울렸는데 해당 여학생이 끝까지 거짓말로 버티는 일이 일어났다. 그 아이 때문에 덩달아 벌을 받은 학급 아이들의 따돌림이 시작됐다. 거짓말이 문제인지, 따돌림이 문제인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평화로운 학급 분위기는 하나의 사건으로도 금방 싸늘해졌다. 학급을 평화롭게 만들자던 교사의 이야기는 금세 사라졌고, 이후 전 학생이 사고를 치면서 반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악화되어 갔다. 교사가 주도하는 학급의 평화는 왜 쉽게, 어쩌면 대부분 실패하는가?
교사의 언어가 아이들에게 전달되며 변질
여학생의 거짓말 문제로 상심하다가 정의감 있는 여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나그네의 외투'우화를 얘기하며 '따뜻한 관심과 배려로 여학생이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거짓말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선생님이 열심히 상담했는데 잘 안됐고 너희들이 더 이상 이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반장 여학생은 단톡방에 '얘를 더 이상 따돌리면 다 학폭이다, 그만해라'라고 올렸다. 분명 교사가 중점을 둔 부분은 반이 서로 안심할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교사가 자신들에게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주문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교사가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 부탁할 때 아마 아이들은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다. 교사의 권위를 이양 받은 해결사 내지는 정보원 같은… 아이들은 익숙한 방식으로 이해한 것이다.
평화로운 학급을 만들려는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해결사, 정보원이 아닌 교사가 지향하는 가치, 즉 학급 평화라는 가치에 공감하는 그룹이다. 공감그룹은 통역자이다. 교사와 아이들은 마치 외국인처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따라서 교사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아이들이 교사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언어로 번역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교사가 보기에 부족하기 짝이 없는, 그 언어들이 비로소 학급에 평화의 이야기를 확산시키는 교류를 만들어 낸다. 공감그룹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교사에게 전해 주기도 한다. 이들은 학급에서 교사와 아이들이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교류 구조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보원이나 해결사와 다르다. 공감그룹은 학생이지만 교사의 친구이기도 하고 같이 학급의 평화를 만들어 가는 동지이기도 하다. 교사는 의도적으로 아이들과 그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이 특별한 관계는 교사와 아이들 모두를 성장시킬 것이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
평화로운 학급을 만들려고 할 때 교사 혼자라면 실패를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교사가 다양한 공감그룹, 의사소통의 통로를 가지고 있다면 차분히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하나의 굴이 막히면 다음 굴로, 평화로운 학급이라는 목표를 향해 다양한 청사진을 그리고, 변경할 수 있게 된다. 일방적인(또한 일반적인) 교사 주도의 학급이라면 가치를 지향하는 복잡한 시도들은 쉽게 실패할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사들이 스타일에 따라 독재, 내용 없는 민주주의, 방임의 서로 다른 형태로 결국 아이들의 이야기에 타협하며 자존심을 지키는 길을 걸어가게 된다. 평화로운 학급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류구조의 변화, 공감그룹의 발굴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