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문이 없는 아름다운 시설을 가진 학교, 김제의 명문학교라 불리는 학교, 김제 지평선 학교이다.
지난 23일, 지평선 학교 밖 아스팔트 위에서 전교조 전북지부 김제지회 지평선중고 분회 창립식이 열렸다. 분회창립을 위한 학교시설 사용을 학교장이 원천 불허했기 때문에 학교 밖에서 식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 지평선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지지 피케팅 © 양민주 현장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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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회창립식 시작 즈음 아이들은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 학교 밖 광경을 구경하기도 하고 공을 차기도 하고 교문 밖에 나와 구경하기도 했다. 몇몇 교사, 소수의 학부모, 학교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팔짱을 끼고 분회창립식 준비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5시 30분이 되어가자 이 학교 분회원인 다섯 분의 선생님들이 모였다. 다섯 분 모두 2030 젊은 선생님들이다.지평선학교는 대안 중고등학교이다. 지역의 명문학교라고 이름난 곳이지만 학교 내 문화와 선생님들 간 소통의 구조는 30년 전 전교조 결성 당시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이사장과 학교장의 제왕적 지위, 비민주적 운영, 교사에 대한 억압과 굴종. 그런 만큼 이들이 전교조 조합원이 되기까지는 남다른 아픔과 눈물 그리고 희망을 안은 용기가 필요했다. 학교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교조와 소통하면서 ‘독수리 오형제’가 되어 분회 창립까지 해낸 것이다.
지평선중고 분회 창립은 전교조가 권력의 탄압 속에 법외노조로 내몰린 후 처음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단순한 분회 창립식이 아니라, 안팎으로 행해지고 있는 탄압에 맞서 당당히 우뚝 선 저항의 깃발인 것이다.
▲ 박가영 분회장이 학교장의 온갖 탄압을 이겨 낸 분회 창립과정을 이야기하며 울먹이고 있다. © 양민주 현장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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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학교 앞에는 전교조 전북지부 50여 명의 조합원 선생님들과 연대단체 동지들이 모여 들었고 창립식 축하 공연 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축하공연을 해 준 사람은 지평선학교 1회 졸업생 23세 최정완 씨였다. 최정완 씨는 현재 서울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차를 타고 내려왔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서 배웠던, 사회와 소통하며 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했다.
최 씨 외에도 여러 졸업생들이 전교조 선생님을 지지하는 문구가 적힌 피켓, 교장선생님이 학교시설을 불허한 것에 대한 항의문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창립식이 시작되기 전 학교 관계자들이 구경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로 들어가라 야단을 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구경하는 아이들과 지지하는 재학생들이 늘어나 자리를 가득 메웠다.
이 학교 분회장인 박가영 선생님은 분회창립과정을 이야기 하면서 그동안 학교로부터 받았던 억압과 상처를 되새기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참석했던 동지들도 아픔과 탄압의 상처에 공감하며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 조합원에게 참교육 배지를 달아주고 있는 모습 © 양민주 현장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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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회장의 분회창립 경과 보고에 이어 여러 단체의 격려와 지지가 이어졌다. 윤성호 전북지부장은 격려사를 통해 "27년 전, 사립학교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다를 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를 지지하는 많은 연대단체들이 있고 학생들이 있고 끝까지 함께하는 조합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이면서 주민이기도 한 농민단체 동지는 “학교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에게 알려라, 10분 만에 달려오겠다.” 며 연대의 결의를 보여 주었다.
이어서 분회창립식의 주인공인 다섯 명의 분회원들에게 선배 조합원들이 전교조 배지와 분회깃발을 전해주고 축하의 화분도 건네졌다. 분회창립식이 끝날 즈음 어둑해진 학교 밖 아스팔트에는 박수와 눈물, 축하의 함성이 가득찼다.
다음은 지평선중고 분회창립 선언문의 일부이다.
“학교는 어느 개인의 사유물이 아닙니다. 학교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향성 제시는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교사 집단은 수평 조직이지 상하관계, 수직 조직이 아닙니다. 문제 상황 발생 시 교사의 책임을 질타하기보다는, 이마를 마주대고 함께 지혜를 모으는 리더가 더욱 대안적인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 삶을 영위하고 꿈꾸고 실천하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 아이들의 눈망울 앞에서 우리는 당당한 교사로 서고 싶습니다.(중략) 지금 우리들의 손으로 굳게 닫힌 지평선의 문을 활짝 엽니다. 비민주적 관행과 권위적 풍토 제거에 앞장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함께 행복한 희망의 교육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지평선중고등학교 분회창립선언문 중)
▲ 분회창립을 이끌어낸 5명의 조합원 선생님들 © 양민주 현장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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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교문 밖 아스팔트 위의 ‘참교육의 함성’은 지평선 중고등학교 다섯 분의 함성이 아닌 6만 조합원의 함성이었다. 분회창립이 끝난 직후 고등학교 교사 한 분이 추가로 가입을 하였고, 연이어 중학교 선생님도 가입하여 현재 7 명의 조합원 동지들이 함께하고 있다. 학교장의 독선과 아집이 오히려 조합원 가입에 불씨를 지피는 역할을 해 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