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연서

김정훈·전북 임실동중 | 기사입력 2016/09/1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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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연서
김정훈·전북 임실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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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9/1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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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들려주는 교양강좌'에서는 선생님들의 숨은 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교사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지식·교양을 보내주세요(chamehope@gmail.com) 조합원들의 인문학 소양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김상정 현장기자

  

저 높이 푸르스름한 이파리들이
함께 어울려 햇빛을 머금는 것은
스스로 내놓은 상처,
자작나무 지흔의 아름다움이다.

 

 그리움이 타오르는 가을 길목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편지를 쓰고 싶다. 하얀 껍질에 새겨질 사연마다 이 혼탁한 세상을 활활 불태우고 순백의 평원으로 내달리는 그리움이 묻어날 것이다.


 자작나무는 백화(白樺)라고 한다. 백두산 2000m 고도에서 그 허리를 두르거나 눈 쌓인 시베리아 평원에서 20~30m 높이로 곧게 뻗어 자라나는 나무.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어서 자작나무이고, 혼례 때 밝히는 화촉은 자작나무 껍질의 아슴하지만 강렬한 불꽃에서 연유했다.

                                                                                                                                           ©권혁소(강원 원동고)

 
 추운 지방에 사는 나무로 북한 땅이 남방 한계선이라고 하니 더욱 끌리는 무엇이 있다. 자작나무속에는 개박달나무, 거제수나무, 물박달나무, 사스래나무, 만주자작나무, 박달나무, 좁은잎박달나무, 자작나무가 있다. 그 중에서도 자작나무의 껍질은 매우 하얗다. 자작나무가 주로 살고 있는 곳은 매우 춥고 늘 눈이 쌓인 곳이다. 자작나무의 수피가 그렇게 하얀 까닭이다. 눈이 햇빛을 반사하는 반사율은 약 85~90%에 이른다. 지표면의 평균 반사율 30%의 세배에 이른다. 설원에서 얼굴이 타고 화상을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안경을 쓰고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이유다. 검은색은 빛을 흡수하고 흰색은 빛을 반사한다.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은 내부기관을 보호하기 위해 과도한 햇빛은 반사하고 적당한 열만 흡수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키 높은 자작나무에는 지흔(枝痕)이 있다. 줄기에 남는 가지의 흔적이다. 하얀 나무기둥에 다가서면 삿갓 또는 눈썹 모양의 검은 상처를 볼 수 있다. 자작나무와 비슷한 다른 나무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가지가 불필요해지면 가지의 아래 부분에 구분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스스로 가지를 떨어뜨린 자국이다. 나이 15년 이상, 키 5m이상 되는 나무에서 볼 수 있다. 자작나무는 '자작나무 숲'으로 불릴 때 더 자연스럽다. 자작나무가 설원에서 모여살 수 있는 것은 옆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는 지흔 때문이기도 하다. 저 높이 푸르스름한 이파리들이 함께 어울려 햇빛을 머금는 것은 스스로 내놓은 상처, 자작나무 지흔의 아름다움이다.


 자작나무의 숨결은 경주 천마총 천마도와 해인사 대장경에도 있다. 자작나무 목재는 치밀하고 단단하여 수레바퀴 등의 특수 용도로 쓰이고 기름 성분을 함유한 껍질은 종이 역할도 하고 태워서 그림을 그리거나 가죽을 염색하는 데도 쓰였다. 자작나무 숯으로 걸러야 제대로 된 보드카가 만들어지고, 무병장수제로 알려진 수액은 그 발효주도 일품이며 자일리톨의 원료이기도 하다. 자작나무에는 솔제니친의 암병동에 등장하는 차가버섯이 살고, 그 숲에는 산삼도 잘 자라서 심마니들은 자작나무 껍질로 삼을 싸서 보관했다.


 숲이어도 막힘이 없는 평원의 꿈, 백두산 자작나무 평안도 자작나무를 보러 가자. 백석의 시  백화(白樺)를 불러본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문살도 자작나무다//밤이면 캥캥 여우가/우는 산도 자작나무다//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장작도 자작나무다//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박우물도 자작나무다//산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이 산골은 온통/온통 자작나무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나도 한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던 소년이었다/그래서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꿈의 상실이 도드라질 때에 다시 꿈을 꾸기 위하여 자작나무 숲을 떠올린다. 춥디추운 광활한 땅에서 저리 높이 푸르고, 이렇게 빛깔 고운 가을 단풍 만들며 따뜻하게 모여 사는 나무.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 가을날 껍질 곱게 편 자작나무 연서 한 장 그리러 떠나보자.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태백시 소호동으로. 전북 진안고원에도 자작나무 숲이 있다.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운장산 임도길, 선각산 투구봉 가는 길에 있는데, 마이산과 어우러진 자작나무 단풍과 만날 수 있다. 


 누구라도 자작나무를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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