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고 보면 같은 피해자”

김형태 | 기사입력 2016/05/25 [16:38]
특집기획
세월호
“우리는 알고 보면 같은 피해자”
‘1020톡톡, 토크 콘서트’...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와 ‘생존학생’의 만남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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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5/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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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톡톡, 토크 콘서트’...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와 ‘생존학생’의 만남
▲ 지난 21일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열린  ‘1020톡톡, 토크 콘서트’     © 김형태
 
지난 2년 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가장 멀리 있을 수밖에 없었던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와 ‘생존학생’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여 얘기하는, 아주 특별하고도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지난 21일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열린 ‘1020톡톡, 토크 콘서트’에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를 대표하여 김인기 씨와 박예나 씨가 참석했고 생존학생을 대표하여 박준혁 학생이 참석하여 서로의 입장과 상처와 아픔을 진솔하게 꺼내놓았다.  

▲ 고(故) 박성호 군 둘째누나 예나 씨(22)     © 김형태

고(故) 박성호 군 둘째누나 예나 씨(22)는 “지난 2월 방송된 ‘졸업-학교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이라는 SBS스페셜을 통해, 준혁 학생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오늘 처음 본다”며 알고 보니 “성호 뒷자리에 앉았고 성호의 관심 분야였던 역사학과를 진학했다고 해서 더 친근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전부터 많이 친해지고 싶었지만, 서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수도 있었고 불편할 수도 있었기에, 같은 피해자이지만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생존자를 보면 자꾸 희생자 얼굴이 겹쳐 힘들다는 유가족들이 있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다. 생존학생을 공격하는 악플을 접할 때 챙겨주고 싶었지만, 개인적으로 만나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다”고 덧붙였다.
 
단원고 졸업생이라고 본인 소개를 한 박준혁(20) 학생은 올해 대학에 진학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그는 제일 마지막으로 배에서 탈출한 생존자다. 거센 바닷물을 뚫고 힘겹게 나왔지만, 그러나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한동안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탈출하기 직전까지 손을 잡고 있었던 친구를 갑자기 밀려온 파도에 잃어버린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고 참사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물이 차올랐는데,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니 떠서 천장에 머리가 닿는 거예요. 그래서 입구로 잠수해서 나왔는데, 나오다가 어디에 걸린 거예요. 빨리 떠올라서 공기를 마셔야 되는데, 안 떠오르는 거죠. 눈은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 밀고 떠올랐다가, 다시 걸렸어요. 거기서는 조금 무서웠죠. 숨은 벌써 막히는데... 한번 더 걸리면 못 나가겠는 거예요. 그래도 또 올라갔는데, 다행히 (눈앞이) 밝아져서... 팍 나왔어요.' - <다시 봄이 올 거예요> 123쪽 박준혁, 당시 단원고 2학년
 
▲ 영상 자막 중 일부     © 김형태

한동안 숨어 지내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준혁 학생은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학교 갔다 피씨방 갔다 학원 갔다 집에 와서 자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달라져버린 상황에서 한동안 사회로부터 멀어지려 했고 숨어 지내다시피 했단다. 단원고 학생이라고 하면 색안경 끼고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고2, 고3을 거의 집에만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단원고 출신이면서도, 대학 선배들과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 많이 관심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동안 뭐하고 있었나? 숨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을 보며 느끼는 것도 많았고 힘을 얻어 나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기자들의 인터뷰에도 응하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책 내는데도 참여하고 학생회 일에도 참여하는 등 이제는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와 ‘생존학생'과의 대화     © 김형태

친구들(희생자) 부모님들과도 연락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가장 친한 친구였던 경빈 어머니는 경빈이 장례식 때 처음 보았고, 솔직히 불편한 마음도 있었으나 어머니의 배려 덕분에 그 때 이후 자주 만나고 연락하고 지낸다. 또한 내 손을 잡고 나오다 놓친 수정이 부모님과는 처음에는 나를 만나면 아픔이 커질 것 같아 피했다. 그러나 만나는 게 더 힘이 되고 치유하는 길이 될 거라는 방송국 PD님 권유로 만났는데, 만나길 잘한 것 같다. 그밖에도 기수 어머님 등 몇 분 어머님들과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생존학생들은 그동안 카톡방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는 정도였고, 10명 정도가 세월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단다. 그는 “아직 마음의 짐이 남아있다. 오늘 인기 형이나 예나 누나 얘기를 들으면서 아픔에 공감했고 짐을 같이 드는 느낌을 받았다. 친구들이 적어놓은 장래 희망을 보았는데, 하나같이 구체적이었다. 그 꿈 많은 애들 대신 나만 살아남았다. 그 친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고자 한다.”고 토로한 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님들이 그동안 선봉에서 고생하셨고 형제자매들도 목소리를 내며 가세하고 있는데, 우리 생존학생들도 할 일이 있다면 찾아서 할 것이고 계기가 되면 활동보폭을 넓혀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죄책감 갖지 말고 이제는 사회를 바꿀 시민으로 올라서야
 
고(故) 김운기 군의 큰형 김인기 씨(29)는 “생존학생을 만나보고 싶어도 서로 마음 아플까봐 조심스러워 못했는데 오늘 또 다른 피해자인 준혁 학생을 만나 반가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화살을 맞고 단원고라는 꼬리표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준혁 학생처럼 생존자가 있어서 다행이고, 생존학생들이 죄책감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반가움과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준혁 학생이 앞으로 희생자를 생각해서라도 더 뜻있게 살겠다고 하고 기회가 되는대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는데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도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니 자연스럽게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와 ‘생존학생'의 대화     © 김형태

예나 씨도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들 중에서 이런저런 아픔과 말 못할 사정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생존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동생을 잃었고 준혁 학생은 친구들을 잃었다. 한순간에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어린 피해자로서 동병상련의 동질감을 느낀다.”고 공감한 뒤,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겪은 당사자들이기에 우리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생존학생들에게도 희망을 걸게 된다. 자연스럽게 함께 하고 교실 존치 등 몇몇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한편 인기 씨와 예나 씨도 본인들의 아픔을 눈물나게 토로했다.
 
“4월 16일 출근길에 동생에게 연락이 왔어요. 형, 배가 넘어가고 있어... 데이터도 안터져... 설마 무슨 일이 있겠나 싶어, 말 잘 들어, 시키는 대로 잘하고, 침착하게 하라는 대로 행동하렴... 4월 17일 사고 해역에 도착해보니 뒤집혀있는 배, 구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이라더니 그러나 산지옥이 이런 것일까?”

 
▲ 고(故) 김운기 학생이 형 김인기 씨와 카톡으로 나눈 마지막 대화     ©416특위

인기 씨는 이미 동생의 유품을 정리해 놓고도 동생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어, 동생을 아직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밥 먹을 때 동생 수저를 함께 놓기도 한단다. 사망신고도 보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무언의 끈을 붙잡고 동생의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왜 싸우고 있는지 묻게 된다. 솔직히 놓고 싶다. 놔버리고 싶다는 생각 간절하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툭 끊어져버린 시간, 지난 2년은 잠도 못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상실의 시간이었다. 동생이 없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형제자매들은 슬픔이 덜할 것이니 부모님 앞에서 울지 마라 하는데, 왜 우리는 슬퍼할 권리마저 박탈당해야 하는가? 저희 엄마조차도 밖에서는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나를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에 화가 난다. 동생과 약속했다. 더는 가해자, 방관자의 모습으로 살지 않고 사회를 바꿀 시민으로 살겠다고... 나중에 동생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나 씨는 또한 최근 희생학생 제적과 교실 존치 문제로 단원고에 대해 무척 속상했다고 했다. 모교이자 동생이 다녔던 단원고 앞에서 농성할 줄 몰랐다며, 어떻게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제적하고 교실을 뺏을 생각만 하는지, 흔적을 지워버릴 생각만 하는지 화가 난다고 했다. 특히 “남의 학교에서 뭐하는 짓이냐는 행정실장의 말이 아직도 충격적이다. 250명 희생된 선배들 교실에서 과연 공부하고 싶은가를 재학생들에게 물어보았나?”라고 서운함을 표현했다.
 
▲ 영등포여고 학생들이 붙인 쪽지의 말     ©김형태

더는 혼자 아파하지 말고 함께 아파하며 나아가야
 
서로 다른 입장과 처지에 서있었지만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와 ‘생존학생’의 모처럼의 만남과 깊은 대화는 10대와 20대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오늘 만남과 얘기를 통해 인기 씨는 “그동안 주변 사람들의 말에 상처가 되어 제대로 말도 못했는데, 내 생각과 감정에 이렇게 솔직한 적이 있나 싶다. 동생에게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못했는데 그게 후회된다”며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고 많은 힘을 얻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 즉 첫걸음이라고 본다. 끝까지 싸울 것”라고 의지를 다졌다.
 
준혁 학생도 “세월호 참사가 역사에 가감 없이 사실 그대로 기록되어야 하고 우리사회의 큰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 이성대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나도 대학 1학년 때 5.18을 보고 군대 갈 때까지 고통 속에서 힘들게 살았다. 5.18로 인해 인생 행로가 바뀐 셈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희생자 형제자매들과 생존학생들도 우리사회 어둠을 밀어내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본다”고 격려했고, 4.16연대 관계자도 “어린 나이에 세월호 충격을 온몸으로 겪었으니 얼마나 그 고통과 슬픔이 크겠는가? 희생자 형제자매든, 생존학생이든 더는 혼자 아파하지 말고, 이제는 함께 아파하며 외상후 성장을 이뤄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단체 기념사진     © 최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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