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수업 듣고 싶어요. 얼른 돌아와 주세요.”

최대현 | 기사입력 2016/05/1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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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수업 듣고 싶어요. 얼른 돌아와 주세요.”
학교서 3번 쫓겨난 공익제보 교사의 ‘스승의 날’
최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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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5/1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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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서 3번 쫓겨난 공익제보 교사의 ‘스승의 날’
“선생님ㅠㅠ, 문학시간마다 너무너무 그리워요. 얼른 돌아와 주세용~♡”
“수업 받은 날은 얼마 안 되지만 감사했습니다.ㅜ♡ㅜ”
“선생님 수업 듣고 싶어요.ㅠㅠ 다시 꼭 오셨으면 좋겠어요! 정말정말 존경합니다.”
 
스승의 날인 15일을 사흘 앞둔 12일 오후 5시30분, 서울 성북구 평화의 소녀상 앞. 하교를 하던 동구마케팅고 학생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초록색 큰 도화지에 이 같은 글귀를 적었다. 학기 중에 쫓겨난 자신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에게 전하는 마음이다.
 
한 학생은 “여기에서 수업을 듣고 싶은 데 학원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아쉬워요”라고 했다. 이 학생은 “선생님~ㅠㅠ 선생님이 수업하실 때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다시 오셔서 꼭 좋은 말씀 앞으로 더 해주셨으면 합니다!! 꼭 돌아오세요~~”라고 썼다. 
 
▲ 동구마케팅고 학생들이 안종훈 교사에게 남긴 글귀.    © 최대현
 
학생들이 애타게 찾는 주인공은 현재 학교로 출근을 못하는 안종훈 교사(서울 동구마케팅고). 지난 2002년 재단과 학교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안 교사는 지난 3월21일 ‘직위해제’ 당했다. “근무성적이 극히 불량하다”는 것이 학교법인 동구학원이 설명한 직위해제 사유였다.
 
교육단체들은 공익제보 교사를 향한 사실상 보복성 징계로 판단하고 있다. 재단은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나 안 교사를 ‘파면’시켰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파면 취소 결정으로 안 교사는 지난 해 5월 복직했으나, 재단과 학교는 수업 대신 특별구역 청소 업무만 담당케 하는 등 보복 탄압을 지속했다.
 
이날 동구학원 공익제보 교사 부당징계 저지 대책위원회는 안 교사를 위해 길바닥 수업을 준비했다. 학교에서 쫓겨나고서 ‘스승의 날’ 맞은 안 교사에 대한 선물인 셈이다. 오후 5시50분경 안 교사가 시민과 교육단체 관계자, 학부모, 학생 등 50여명 앞에 섰다. 임시 교탁 위에서 조그만 카네이션이 놓였다.
 
“학생들이 아닌 여러 시민들 앞에 서니, 긴장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네요. 오늘 수업은 학교를 자랑하려고 해요.”라는 말로 수업을 시작했다. 안 교사가 이날 수업을 정한 주제는 자신을 쫓아낸 동구마케팅고의 교훈인 ‘정심(正心)’. 학교 누리집에 있는 교훈 화면과 전 이사장의 인사말, 교장의 언론 인터뷰 기사 등을 수업 자료로 준비했다.
 
안 교사는 “정말로 좋은 교훈”이라며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바른 자세를 기르는 것이며 이것인 정심을 통한 바람직한 인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안 교사는 “정심대로라면 비리로 물러난 전 이사장과 교육청으로부터 파면 요구를 받은 학교장이 혼나야 한다. 정심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내가 옳으니까 무조건 따르라는 정심, 이건 교육을 가장한 폭력이다. 명령과 복종의 문화를 정심이라는 교훈으로 가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 안종훈 교사(서울 동구마케팅고)가 12일 오후 시민과 학생 50여명을 대상으로 길바닥 수업을 하고 있다.    © 최대현
 
수업 끝에 1문제의 형성평가도 준비했다. 문제는 ‘<정심>이 교훈인 학교에서 교복에 달 수 있는 것은?’이었다. 5개의 보기 중에 답이 없었다. 지난 4월초 학교측은 세월호 추모 배지와 위안부 할머니 관련 배지, 학생의 날 기념 배지, 개인적인 악세사리 등을 학생들의 교복에 부착할 수 없다는 지침을 내렸다. 이날 수업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답을 맞추지 못했다.
 
15분간의 짧은 수업을 마친 안 교사가 환하게 웃었다. “수업 준비하면서 교훈의 의미를 되새셨다. 부족하지만, 누구보다 교훈을 잘 실천하면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는 안 교사는 “내년에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스승의 날을 맞고 싶다”고 말했다.
 
동구마케팅고를 졸업한 김명화 씨는 “비리를 제보한 선생님을 끈질기게 탄압하고 교육청의 시정권고도 무시하고 있다던데, 내가 다닌 훌륭한 교정이 맞나”라며 “요즘처럼 동구인임이 부끄러운 적이 없다. 이제까지의 부조리를 바로잡아 건강하고 건실한 학교 경영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당장 그만두시라”라고 재단 이사진에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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