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들려주는 교양강좌 <16> 세월호 2주기 문화제 - 지휘자 구자범과 합창단 '유로기아와 친구들'

송재혁·서울 미성중 | 기사입력 2016/04/2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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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들려주는 교양강좌 <16> 세월호 2주기 문화제 - 지휘자 구자범과 합창단 '유로기아와 친구들'
클래식, 시대의 한복판에 서다
송재혁·서울 미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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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4/2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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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시대의 한복판에 서다

 
 
   4월 16일 '기억과 약속의 날' 저녁 7시 광화문 광장. 하늘도 세월호의 슬픔과 분노를 기억하는 듯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문화제의 첫 무대에 선 지휘자 구자범과 '유로기아와 친구들'은 '흑인영가'두 곡과 '민중영가' 한 곡을 불렀다. 가사는 지휘자가 그의 절친 부산대 유인권 교수와 함께 우리말로 새롭게 번역한 것인데, 특히 흑인영가 가사는 세월호 비극을 염두에 둔 번역이다. 연주를 들으며 가사를 음미하니 세월호가, 그리고 바다 속 아이들이 떠올랐다. 경문고등학교 동문 합창단인 '유로기아' 단원들은 작년 12월 12일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그들의 노래, 우리의 노래-꿈꾸는 세상의 노래' 연주회에 올린 곡들을 세월호 2주기 문화제에서 다시 부르기 위해 매주 연습을 진행해 왔다고 한다. 천막 안에서 반주한 9대의 첼로와 1대의 더블베이스는 진중한 남성합창 성부들과 어울려 절묘한 효과를 냈다.
 


 구자범의 선곡은 늘 예사롭지 않다. 그가 쓴 '기획노트'에 따르면 첫 곡인 흑인영가 '이 낡은 망치'는 '노예'의 노래가 아닌 '노동자'의 노래이다. 19세기 후반 흑인 노동자였던 전설적인 인물 죤 헨리는 기계의 힘으로 공사가 가능해지자 노동자들을 해고하겠다는 고용주에 맞서, 자신이 기계보다 더 빨리 일하면 동료들을 해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기계와 경쟁했는데, 기계를 이기고 나자 망치를 쥔 채로 쓰러져 죽었다는 것이다. '이 낡은 망치, 피 맺힌 망치. 나는 결코 잊지 않으리!' 영원한 기억을 호소하는 노래였다.

 둘째 곡은 흑인영가 '이 세상의 모든 고통 곧 끝나리라'. 영어 가사 'I want to meet my mother!'가 우리말 '엄마가 보고 싶어!'로 바뀌어 절규처럼 반복될 때 무대 옆에 서서 듣고 있던 나는 울컥 하는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다. 마지막 곡은 구자범의 용어로 '민중영가'에 속한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장대한 교향곡 3번과 문승현 작사·작곡 '그날이 오면'을 절묘하게 연결한 곡이다. 천진난만한 멜로디로 시작해, 온 세상을 포옹할 듯이 30여 분 동안 '사랑'을 말하고 또 말하는 6악장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의 주선율이 잠시 흐르다가 어느새 음악적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그날이 오면'이 이어진다. '정의의 날, 그날이 오면!' 그리고 '아멘'으로 맺는다. 특정 종교의 의식이 아니라, 세월호 광장에 함께 한, 그리고 새 세상을 바라는 우리 모두의 소망과 꿈을 응축해낸 마지막 가사 한마디로서의 '아멘'이다. 

 하늘이 쏟아내는 눈물 탓에 합창의 울림은 물리적으로 멀리 가지 못했지만, 무대 근거리에 있던 시민들은 미동도 없이 연주에 집중했다. 오마이티비(OhmyTV) 등이 이를 생중계했는데, 유튜브(YouTube)에 올라있는 추모문화제 전체 영상의 중간부(2시간 1분~)에서 이 불같은 연주를 다시 볼 수 있다.

 구자범 지휘자와 유로기아 합창단은 전교조와 인연이 있다. 독일 하노버 국립 오페라의 수석상임지휘자(der erste Kapellmeister) 재임 중 광주시향을 맡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인 2009년 11월, 대중강연 경험이 없었지만 그는 전교조 서울지부 주관 연수에서 기꺼이 강연했다. 2010년 5·18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구자범이 지휘하는 518명의 시민합창단과 광주시향이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김상봉 교수의 우리말 번역에 따라 연주할 때 전교조 서울지부도 합창단을 만들어 참여했고 '유로기아'도 함께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클래식은 여전히 '재수 없는' 음악이고 잘 나가는 클래식 연주자들도 그렇게 여겨지곤 한다. 여기엔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다. 도무지 세상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듯 세속과 단절된 '동굴' 같은 공간에서 나올 줄을 모르는 획일적인 공연 양식과 답답한 행보들 때문이다. 스스로 대중과 거리를 두어야 클래식의 격을 높인다는 착각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시대를 등진' 지휘자가 있고, '시대의 한복판에 선' 지휘자가 있다. 이제 '음악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자기 고백은 우리 시대에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되어야 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갈렐레이의 생애'에서 안드레아와 갈릴레이의 대화이다. "영웅이 없는 곳은 불행합니다." "아닙니다. 영웅이 필요한 곳이야말로 불행한 곳이지요." 구자범은 영웅이 아니며 영웅이 되고자 하지도 않는다. 세월호에 슬퍼하고 분노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대를 함께 호흡하며 의미 있게 음악을 나누는 '진짜' 예술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5월 28일, 시대로부터 상처 받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대의 한복판에 다시 서게 된다. 세계적인 작곡가 류재준이 2013년 '난파음악상' 수상을 거부한 후, 그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서울국제음악제'가 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심사에서 탈락하여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기성 주류 음악계와 거리를 두던 구자범이 지휘를 맡기로 했다. 그 공연이 5월 28일 14시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덴마크 작곡가 루에드 랑고르(Rued Langgaard, 1893-1952)의 교향곡 1번 ‘벼랑의 목가’를 아시아 초연하는데, 고독한 낭만주의자가 17세에 남긴 이 작품은 세월호의 맥락 속에 재해석된다. 정권에 의해 법외노조로 내몰린 채 스물일곱 생일을 맞는 전교조는 이 날 같은 시각, ‘528 합창단’을 집회 무대에 세운다. 합창이 진보운동의 새로운 문화 양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4월 16일 '기억과 약속의 날' 연주된 노래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경우 지휘가가 쓴 '기획노트'가 큰 도움이 된다. '다음(DAUM)'에 있는 구자범 블로그에서 읽을 수 있다. 2010년 5·18 민주항쟁 30주년 시민합창단 연주와 다큐멘터리(광주MBC) 역시 유튜브(YouTube)에서 시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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