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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직교사 내치라는 헌재, 9명 그들은 누구인가? 더 나은 교육 함께 꿈꾼 '전교조 조합원'
'참교육' 이유로 정부가 쫓아내… "전교조의 역사는 해직의 역사"
 
강성란 기자 기사입력  2015/06/28 [18:12]

 
헌법재판소가 지난 달 28일 교원노조의 조합원 자격을 현직 교원으로 제한하는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자 다시 9명의 해직교사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한 주된 이유로 '해직교사 9명의 조합 활동'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해직교사 9명이 누구 길래 법외노조 위험 무릅쓰나' 류의 보도를 쏟아내며 "9명의 해직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5만 3000명 조합원을 법외 노조원으로 만드는 전교조 집행부의 결정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것(조선일보)"이라거나 전교조가 정부를 꺾겠다는 정치투쟁을 하려고 굳이 9명의 해직자를 끌어안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문화일보 칼럼)"이라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법외노조 통보 무효 소송 2심 재판을 앞둔 보수언론의 여론몰이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헌재는 '교원 아닌 사람이 교원노조에 가입해 권한을 행사하면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교원노조법 2조의 '합헌'을 결정했지만 '해직교원이 조합원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법외노조로 할 것인지 여부는 자격 없는 조합원의 수, 이들이 노조 활동에 미치는 영향 등을 따져 법원이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했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명시해 서울 고등법원 재판부에 공을 넘겼다.
 
 전교조가 불법선거운동?
 기획·표적수사 진행


 저들이 '정치적'이라 부르는 교사 9명은 누구일까? 이들은 노조의 자주성을 훼손했는가?
 해직 교사 9명 중 송원재 전 전교조 서울지부장 등 6명은 주민직선제로 처음 치러진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민주시민 후보인 주경복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기소됐고 대법원에서 실형과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아 2012년 해직됐다.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학교자율화 조치'가 0교시·우열반 편성, 야간 자율학습 확대는 물론 고교평준화 해체 등 경쟁교육의 전면 도입을 예고하면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된 촛불의 요구가 '미친 소, 미친 교육 OUT!'으로 확대되던 시기였다.

 당시 재선에 도전한 공정택 교육감은 이 같은 정부의 경쟁 교육 기조를 그대로 수용한 공약을 내걸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지지를 선언한 주경복 후보는 특목고·자사고 확대에 반대하고 교장선출보직제, 교무회의·학운위 의결기구화, 학부모회 법제화 등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쟁교육 반대와 학교 민주화로 요약되는 주경복 후보의 공약은 전교조의 요구와 다르지 않았다. 교사들의 관심은 뜨거웠고 정치중립을 앞세운 '교육자치' 선거였다. 전교조 서울지부 역시 선관위에 문의해 '교육감 선거 관련 후보자의 선거비용은 정치자금법에서 규정하는 정치자금에 해당하지 않는다. 교사·공무원도 후보에게 선거비용을 대여해 줄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받아 주경복 교수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지인들에게 투표참여를 호소하는 전화도 걸었다.

 교육 변화를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어지자 공정택 후보는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색깔론을 전면에 내세웠고 가까스로 이겼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조전혁 의원이 '전교조 선거 개입설'을 제기하며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교육시민단체들의 '기획 수사·표적 수사 중단' 요구가 이어졌지만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100여명의 이메일 자료를 최장 7년치까지 압수수색하는 등 쌍끌이식 수사를 이어가며 '전교조 죽이기' 논란을 부추겼다.

 법원은 당초 제기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특정후보를 지지했다며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등을 들어 이들에게 교사직을 상실하는 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12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를 20일 앞두고 이들에게 확정 판결을 내려 교육시민단체들에게 '사법부의 선거 개입'이라는 비난을 샀다.

 반면 공무원 신분으로 공정택 교육감 선거운동을 한 일부 학교장에게는 80만원 벌금형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부인 명의의 차명 계좌를 재산 신고 과정에서 누락한 혐의로 기소된 공정택 교육감은 150만원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은 선거 과정에서 사설학원 원장들과 전·현직 학교 관리자들에게 수 천만원씩 돈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전교조 서울지부는 성명을 내고 "대법원의 판단에도 교육의 근본적 변화와 교육개혁, 교육의 공공성과 평등성 실현을 위한 진보교육 활동을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 해직이 진보교육 죽이기에 따른 희생이었다는 평가다. 
 
 통일교육운동도 표적돼
 통일 = 친북?


 정부가 지목한 또 한 명의 해직자는 한경숙 전 부산지부 수석부지부장이다. 2006년 7월 31일로 예정된 교육위원 선거를 1주일 남짓 앞두고 조선·동아 등 보수 언론들은 뉴라이트 단체가 제기한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학교 교재의 친북 반국가성 분석'이라는 자료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2005년 전교조 통일위원회 소속 교사들이 진행한 '통일학교'라는 세미나에서 사용된 교재가 이적성을 띠며 친북 편향적 역사관을 수용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의식을 주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었다. 진보·보수진영에서 교육위원 후보를 내고 각축전을 벌이던 때였다.

 부산지부는 성명을 내고 "통일 학교는 통일문제에 관심있는 교사들이 남한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북한의 모습을 알아보자는 차원에서 개최한 세미나로 여기에 참가한 교사들이 친북 편향적 역사관을 수용했다거나 학생들에게 친북 교육을 할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반발하고 나섰지만 경찰은 해당 교사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과정에서 경찰은 수색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채 관련 교사의 자택에서 일방적으로 물품을 가져가거나 학교로 '출두요구서'를 보내는 등 비 상식적인 행태를 보였다. 부산지부는 "경찰은 사전동의 없는 압수수색도 모자라 지부에 있지도 않은 서적을 압수물품으로 공개했다"고 비판했다. 교육시민단체들은 '색깔 공세 중단', '전교조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시교육청은 2009년 1심 판결이 나자마자 징계위원회를 열어 그의 '해임'을 결정했다. 확정 판결이 있기 전 '직위 해제'가 아닌 징계위원회 소집은 전국 최초의 일이었다. 정부는 전교조 조합원에게는 일상적 연구와 토론의 자유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부패사학 비호 교육청이 더 문제
 사학민주화 투쟁으로 해직


 이을재 전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은 사학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해직됐다. 1994년 학생 성적 조작, 불법찬조금 모금 등 각종 비리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상문고 재단이 1999년 12월 복귀를 선언하고, 서울시교육청이 이를 승인하자 상문고 분회와 전교조 서울지부가 이에 반발해 함께 싸웠다.

 2000년 1월 17일부터 27일까지 서울시교육청 별관 학교보건원에서 농성 투쟁을 진행했고 학교정상화를 위한 정상화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새로운 임시이사를 선임하겠다는 시교육청의 약속을 받아냈다. 같은 해 2월 학생들은 대의원대회를 열어 '쾌적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한 뒤 800여명이 학교 운동장에서 집회를 여는 등 투쟁이 이어졌고 관선이사 선임이 결정됐다.

 하지만 당시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이었던 이을재 교사는 이 투쟁 과정에서 구속됐고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해직됐다. 1986년 교육민주화 선언,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이후 세 번째였다.
 
 학생인권과 학교민주화 요구가 '죄'
 지난해 10년만에 복직


 박춘배 교사는 지난 해 9월 해직교사 딱지를 떼고 학교로 돌아갔다.
 2003년 인천외고. 우열반을 편성하고, 흡연 유무를 체크하겠다며 학생 소변 검사를 강행하는 학교 측의 학생인권 침해와 비민주적 학교 운영에 맞서 학교 민주화를 요구하던 그는 '파면'을 통보받았다. 교사 농성에 이어진 학생들의 수업거부로 인천에서는 처음으로 휴업령까지 내려져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는 '거리의 교사'가 되어 있었다.

 2012년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대책위를 꾸리고 이들의 복직을 촉구했고 인천시의회도 '복직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재단이사회는 이들의 복직을 부결시켰고 이청연 교육감이 2014년 그를 특별채용하면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거리의 교사가 될지 모른다. 교육부가 그의 특별채용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임용을 취소한 것이다. 박춘배 교사는 교육부를 상대로 '임용 취소'를 취소하라는 소송 중이다. 행정법원이 임용취소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학교에 남았지만 법원의 결정에 따라 그는 다시 거리의 교사가 될지도 모른다.
 
 전교조의 역사는
 해직의 역사


 정부는 사학 민주화 투쟁, 일제고사 관련, 시국선언, 정당후원 등 다양한 사유로 전교조 교사들을 법 밖으로 밀어냈다. 이들은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거리의 교사가 되어 학교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교육민주화, 교육비리척결, 경쟁교육 반대를 외치는 전교조의 역사는 '해직의 역사'라고 말한다. 과연 이들은 정치적인 교사인가? 정부의 눈엣가시로 찍혀 부당하게 학교 밖으로 내몰린 정치적 희생 교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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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6/28 [18:12]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