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예산 떠넘기기는 대국민 사기”

강성란 | 기사입력 2015/05/30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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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예산 떠넘기기는 대국민 사기”
인터뷰>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편성 거부한 김승환 전북도교육감
강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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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5/30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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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편성 거부한 김승환 전북도교육감
“어린이집과 부모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해결책을 낼 수 없는 이유는 어린이집에 지원하는 만큼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유초중고 특수학교가 황폐화되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결국 모든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지난 달 26일 오후,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편성을 위한 지방채 발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제 지난 4월부터 예산 편성을 중단한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을 만났다.

그는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생긴 문제를 교육계와 보육계의 갈등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교육청에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지원을 강제하는 것은 법 체계를 흔드는 일이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 간간이 보육료 예산 편성 거부에 함께하지 않는 타 지역 교육감들에 대한 실망감도 내비쳤다.
 
▲  김승환 교육감
김승환 교육감은 정부의 예산 편성 약속 이행이 유일한 문제 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교육청의 재정 악화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보육 대란을 막겠다고 지방채 발행을 계속 하면 교육 대란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터뷰 3일 뒤 제주에서 열린 시도교육감협의회는 '누리과정 예산' 의무지출 경비 편성 거부를 결의했다. 서울, 경기, 인천, 광주 교육감은 정부의 지방채 발행 요구를 거부한다는 별도 결의문을 내기도 했다.
 
다음은 이날 김 교육감과 전북교육감실에서 나눈 일문일답.

- 정부가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을 내고 시도교육청의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의무 편성을 위한 법 개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어떻게 생각하나?
“지방교육재정 악성화 방안이다. 국가재정 전략회의는 입법기관이 아니며 논의된 내용이 법률적 효력을 발생하지도 않는다. 시행령 개정은 대통령 권한이지만 헌법과 법률에 합치해야한다. 그렇지 않은 시행령에 교육감이 따를 의무는 없다. 정부는 시행령을 따르지 않으면 다음 년도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압박하지만 예산을 삭감당하는 한이 있어도 법률 위반 시행령을 따르지 않겠다. 교육감 자리는 시행령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 어린이집 지원을 위한 지방채 발행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감의 관할권은 법률로 정해져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1조를 보면 교육감은 자신이 가진 교육예산을 어디에 배정할지 정한다. 교육감은 교육기관 및 교육행정기관을 관할한다. 유치원은 교육기관이지만 어린이집은 보육기관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상 지출의무 없는 어린이집 예산을 지출하는 것은 관할권을 넘어서는 것으로 직권남용이며 제 삼자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해 ‘업무상 배임’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잘못된 행위로 제 삼자가 이익을 얻는 것이 업무상 배임 아닌가. 정부는 법률을 위반하는 영유아보육법시행령을 만들어 놓고 따르라고 하지만 도저히 따를 수 없는 행위를 강요하고 있다.

무상보육은 대통령이 선거 때 들고 나왔고 당선 이후에도 정부가 예산을 책임진다고 했다. 실제 어려움이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공직자의 기본 덕목 아닌가.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식의 떠넘기기는 말도 안 된다.”

- 2013년에는 지방비로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교통법규 위반했으니 앞으로도 위반하라는 것인가? 2012년 11월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이 내용으로 격론을 벌였고 교육부는 정부가 예산을 전액 부담할 테니 시도교육청은 전달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2013년 예산 중 일부만 부담했다. 교육부가 시도교육감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다. 시도교육청의 세수 결손을 보전해주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떠넘기는 것은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이것은 대국민 사기이다.”

-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누리과정 보육료 지원 관련 어떤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특별히 기대하지 않는다. 최소한 네 다섯 개 교육청이 함께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편성을 하지 않았다면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4·16 참사 이후 ‘가만히 있지 않는 교육’을 하겠다며 당선된 진보교육감들이 교육 자치를 훼손하라는 정부지시를 시키는 대로 따르고 있지 않나.”

- 앞으로도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편성 거부 방침은 변화가 없나? 교육감이 지방채를 발행할 것이라는 예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관련 흥정은 없다.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예산안을 도의회에 낼 것이다. 정부가 뾰족한 수를 내주지 않는데 도교육청이 무슨 수가 있나. 도의회가 우리 의사를 최대한 수용하도록 노력하겠다.
 
▲ 김승환 교육감 은 인터뷰 내내 굳은 얼굴로 자신의 주장을 폈다. '화가 난 거 같다'는 기자의 말에 '아니'라며 웃음을 보인 뒤엔 줄곧 단호한 모습이었다
교육단체들은 교육감에게 끝까지 원칙을 지켜달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누리과정 보육료 지원은 전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이슈로 확산되고 있다. 학부모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각각 어린이집과 학교에 다니는 부모라면 큰 아이가 받던 혜택을 중단해 작은 아이의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은 정부가 저지르고 국민끼리 싸움 시키는 상황이라는 것도. 작은 아이의 혜택이 큰 아이의 희생에서 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다. 정권의 부도덕이 이런 사태를 불렀다.”

 - 현 보육대란의 해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보육 대란을 넘어선 교육 대란이다.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면 된다. '교부금을 올려 달라', '시행령을 개정하라'는 요구는 지금까지 계속 해왔다. 하지만 지방 교육을 죽이겠다는 답만 돌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청의 선택지가 없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유·초·중·고, 특수학교 교육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논쟁으로 어린이집과 부모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마음 깊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해결책을 낼 수 없는 이유는 어린이집에 지원하는 만큼 그 고통이 교육감이 책임져야 할 유·초·중·고, 특수학교 교육으로 오기 때문이다. 안 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법률체계상 어린이집은 어린이집 관할권을 가진 지자체가 유치원은 유치원 관할권을 가진 교육감이 책임 있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결국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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