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현실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

이민숙 외 | 기사입력 2013/07/14 [13:14]
특집기획
[여름방학] 현실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
민낯으로 만나는 대한민국의 불편한 교육현실
이민숙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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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7/1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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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으로 만나는 대한민국의 불편한 교육현실

 영화평/ 명왕성
 
  신수원 감독과 같이 근무한 인연으로 영화 <명왕성>을 시사회로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유망주로 꼽힌다는 배우들의 연기력, 스틸사진의 강렬한 컷들, 마지막 부분의 인상 깊은 음악… 그러나 나무랄 데 없이 탄탄한 시나리오는 영화 내내 긴장감과 집중력을 요구했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에다 그녀 자신이 교사였고 아이를 대학에 진학시켜본 학부모로서 직접 접한 교육모순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기에 영화의 완성도는 꽤 높다.

 사실 처음 소재를 접하고 상위 1% 학생들의 이야기, 소수의 이야기가 과연 보편성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고3이 뭐길래", "친구가 어딨어?", "사람이 아니어야 해"… 툭툭 던져지는 대사들은 학생들이 처한 치열한 입시경쟁을 날것 그대로 반영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서울의 한 가난한 지역 중학교 선생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현실과 별로 차이가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명왕성'은 태양계의 9번째 별이었지만 인간의 인위적 잣대에 의해 태양계에서 '퇴출'당한 별이다. 학생 개인의 고유성과 잠재력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 그래서 매일 배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아니, 강제로 퇴출당하는 학생들을 상징한다. 영화는 교육의 본래 목적은 사라지고 명문대 진학과 그것을 위한 죽음의 경쟁만 남은, 괴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허구지만 허구가 아니고, 극단적이고 잔인하지만 매일 마주하는 불편한 일상이고, 상위 1% 학생의 이야기지만 100% 학생과 학부모의 이야기다.
 
 
 
 시사회가 끝나자 관객들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거제도에서 올라왔다는 고3학생부터 학부모까지… 모두 그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울면서 보았다. 현실 그대로 잘 그려냈다. 그러나 너무 어두운 것 아닌가? 과연 우리 교육에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굳이 감독의 대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수원 감독은 대답했다. "어둠을 어둠으로 그대로 드러낼 때 어둠과 상반되는 빛, 희망이 존재해야 함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명왕성은 점성술에서 죽음을 의미하면서도 죽음을 딛고 다시 태어나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별이다. 결국 <명왕성>은 죽음의 교육에서 희망의 교육이 가능하다는, 그것을 위해선 우리 모두가 절실히 노력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다.

 교사인 나에게 <명왕성>은 전교조가 지난 20여간 싸워온 교육모순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영화다. 엔딩자막이 나오는 순간부터 잊혀지기 시작하는 영화가 아니라, 두고두고 되새김질해야 할 영화, 교육을 바꿀 묵직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영화로 다가온다.
 
이민숙·서울 남성중
 
 
 
볼만한 영화
 


나에게 기대라(Lean on Me)



 1989년에 미국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를 보노라면 특목고니 자사고니 학교서열화에 혈안이 돼 대다수 일반고를 위기로 내모는 작금의 우리 학교현실과 오버랩된다.

 한때 뉴저지 패터슨의 명문이었던 동부고교. 젊고 혈기왕성한 조 클라크(모건 프리먼) 선생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하지만 돈만 밝히는 이사회에 맞서 싸우다 학교를 그만두고 떠난다.

 그렇게 20년이 흐른 뒤 학교는 기초학력평가에서 겨우 30%의 학생만 합격하고, 폭력과 마약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학생의 75%이상이 학력평가에 합격하지 못하면 학교는 주정부 관할등급이 될 위기에 처한다.

 이 때 위기의 학교를 구하기 위해 클라크 선생이 새 교장으로 부임해 온다. 하지만 문제학생을 가차없이 퇴학시키고 교권추락의 원인을 교사들에게 돌리며 독불장군처럼 행세하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불편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독한 스승>이란 제목으로 개봉됐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을 보고 어떤 이는 클라크 교장의 리더십을 통해 바뀌어가는 학교를 최선의 결과라고 여기고, 그를 마치 위대한 교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인 것처럼 평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직접 보고 난 뒤 드는 생각은 크게 다를 것이다. 그리고 물음표 하나를 던질 것이다. 우리는 왜 항상 남의 나라의 낡은 교육을 새것인 양 추켜세우는 무리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일까?
 

 

돼지의 왕


 
 폭력이 두려운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고통 때문이지만, 더 두려운 것은 사회 전체가 그 폭력을 답습하고 지속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돼지의 왕>은 굳이 잔혹 스릴러 애니메이션을 표방하지 않아도 충분히 잔인하다.

 첫 장면부터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끔찍한 살인현장… 그리고 15년 만에 중학교 때 폭력의 아픔을 간직한 두 친구의 만남으로부터 이 영화는 시작된다.

 사업이 망해 아내를 살해한 경민과 대필작가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종석은 소주를 기울이며 옛날 중학교 교실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다 자살한 김철을 회상한다.

 액자식 구성을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는 중학교 교실이 배경이지만 어쩌면 이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돈과 힘으로 계급이 나뉘고 군림하는 자들은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개처럼 달려들어 힘없는 돼지들을 물어뜯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체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한 전상국의 소설 <우상의 눈물>을 보는 것 같다. 공부 잘 하고 힘 있는 반장무리에게서 경민과 종석을 구하다 퇴학을 당한 김철, 그는 운동장조회 때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충격적인 반전을 통해 잔인함은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뿐 아니라 폭력을 방관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약자들에게도 숨어 있음을 고발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대만 출신의 세계적 거장인 이안 감독에게 2013년 오스카 감독상을 안긴 작품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오른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가 원작이다. 우선 이 영화는 밤바다를 푸른빛으로 수놓는 해파리 떼와 외딴섬의 미어캣 떼,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날치 떼와 고래 떼의 웅장한 모습 등 3D기술로 창조한 화려한 영상미로 황홀감을 안겨준다.

 가족과 함께 인도를 떠나 캐나다로 향하던 이민선이 난파한다. 순식간에 고아가 된 16살의 인도소년 파이(수라즈 샤르마)는 사나운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작은 구명정에 의지한 채 망망대해에서 227일 동안 표류하며 살아남는다.

 태평양의 폭풍우, 타는 듯한 갈증,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리처드 파카와의 팽팽한 대치… 그 속에서 소년은 절망·공포·고독을 이겨내고 삶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배운다. 한 소년의 성장기로도 읽힌다.

 원작의 감동을 해치치 않으면서 영상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이안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다. 또 생존에 대한 갈망을 이글거리는 눈빛과 표정으로 표현한 어린 배우의 리얼한 연기는 배우로서 첫 연기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 결말은 접어두더라도, 이 영화는 아이들에게 종교와 철학,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일본의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수상한 오가와 요코의 베스트셀러를 고이즈미 타카시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수학은 지루하고 골치 아프다는 선입견을 깨고 수학이야말로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순수하다고 말한다.

 영화는 고등학교에 수학교사로 부임한 루트가 학생들에게 첫인사를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루트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와 엄마인 가정부 교코, 교통사고를 당해 80분밖에 기억할 수 없는 수학박사가 엮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름다운 영상과 대사와 어우러져 가슴을 파고든다. 영화는 완전수·우애수·계승 같은 까맣게 잊은 수학용어와 공식들이 삶 속에서 어떻게 연관되어 움직이는지, 수학을 통해 인생이 얼마나 즐거워질 수 있는지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수학은 낯설고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인간의 삶과 사랑, 수학이라는 학문, 그리고 참다운 교육에 대해 생각을 되새기게 한다. 큰 울림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영화다. 
 
장영돈·부산국제영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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