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여름, 만화삼매경에 빠지다

주상태·서울 중대부중 | 기사입력 2013/07/1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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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여름, 만화삼매경에 빠지다
주상태·서울 중대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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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7/1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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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도서관을 맡고 가장 먼저 만화책을 들여놓았다. 학교도서관은 만화책을 들여놓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만화는 공부 못하고 싸움이나 하는 불량한 아이들이 본다는 고정관념, 한 번 빠지면 공부에 소홀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만화책은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쉽게 빠져든다. 그것만으로도 만화책을 잡을 이유는 충분하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일단 잡아보자.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림만 보고 넘겨도 좋다. 자신의 감정선을 따라 이야기 전개속도가 달라진다.

 
 
 
 요즘처럼 비가 자주 오는 날은 <울기엔 좀 애매한>을 추천한다.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며 찌질한 인생을 살아가는 '불가촉 루저' 원빈과 아이들, 눈물겹도록 힘들지만 마냥 울기만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기엔 사회가 너무 빡빡하다. 정신 번쩍 나게 울분을 토하거나 위안과 희망을 주는 작품은 아니다. 작가가 본 대로 온도 그대로 담으려고 했다는 말처럼 좀 애매한 이야기다. 하지만 뚜렷한 목적이 없기에 오히려 작품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읽다보면 마음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게 있다.

 만화책은 금방 읽어버려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식객>같은 장편만화를 수십 권 쌓아두고 읽는 맛도 있다. 한 장씩 넘기면서 빠져드는 만화책으로는 김태권의 <십자군이야기>가 최고다. 동로마제국에 '신의 이름으로' 지원을 강요하는 십자군,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에만 급급한 동로마 기득권세력, 명분 따위 팽개치고 실리 챙기느라 분열하는 십자군의 탐욕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십자군이야기는 지금 우리 현실처럼 생생한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수박을 먹으며 누웠다가 앉았다가 읽는 책으로는 사랑과 성장 이야기가 제격이다. 날고 싶은 소년의 성장드라마를 그린 <내파란 세이버>를 추천한다. 주인공은 충북 영동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쌕쌕이'라고 부르는 제트전투기를 보고 사랑에 빠져 언젠가 자신도 조종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는다. 시골학교로 부임해 온 교사의 도움을 받아 사이클 선수로 성장해가는 주인공, 오직 머리카락의 자유를 위해 사이클을 타는 누나, 그런 누나를 좋아하는 주인공…

 만화는 기억의 저편에 숨어있는 심각한 이야기도 감성적으로 풀어낸다.

 <용산개 방실이>는 강아지와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2009년 용산참사를 끌어낸다. 식당을 운영하며 일하는 것이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루 종일 일만 하는 주인공, 처음엔 개를 싫어했지만 힘든 생활 속에서 차츰 강아지와 친해진다. 자기 식당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라갔다가 참변을 당하고 강아지는 주인을 잊지 못해 먹이를 거부한다. 강아지와 함께 했던 너무나도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가 사람과 짐승의 관계,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나는 예술에 관한 책은 무조건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고>는 홍대 길거리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예술과 생활의 경계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이 길거리에서 '그림 배틀'을 펼친다. 예술가를 꿈꾸지만 불확실한 미래라는 현실의 벽에 막혀 절망하는 젊은 예술가들, 길거리 벽화를 보면서 '그림 배틀'에서 누가 이겼는지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권하고 싶은 책은 <발작>이다. 가족의 병이 가져다준 불안과 절망을 예술로 이겨내는 이야기다. 형인 장 크리스토프는 하루 세 번 발작을 일으킨다. 시계처럼 정확한 발작의 리듬이 가족의 삶을 지배한다. 가족들은 점점 지쳐가면서도 치료를 위해 갖은 노력을 쏟는다. 지독하게 솔직하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가슴을 후빈다.

 이 책을 읽으며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가 떠올랐다. 가슴 졸이게 하면서도 너무나 당당한 어느 소녀의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당당했던 이유는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동생인 피에르 프랑수아가 고단한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은 고통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프레데릭 페테르스의 <푸른 알약>을 추천한다.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만화책을 읽는 즐거움이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만화책은 심심풀이로 읽는 책이라고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만화책이 참 많다. 이번 여름방학에 만화삼매경에 빠져 더위를 잊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주상태·서울 중대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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