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파행' 교육청이 주범

최대현, 윤근혁 기자 | 기사입력 2013/06/30 [10:12]
특집기획
'일제고사 파행' 교육청이 주범
정답찍기 요령 전수, 벼락치기 암기, 0교시, 강제 자습…
최대현, 윤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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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6/3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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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찍기 요령 전수, 벼락치기 암기, 0교시, 강제 자습…
 
▲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교육시민단체들은 지난 달 25일 전국에서 학교 앞 1인 시위, 민원제출, 체험학습 등을 진행하며 결의를 높였다. 사진은 교육부 앞 민원제출, 결의대회, 서울 시청 앞 체험학습 현장.     © 김민석·안옥수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치러진 일제고사가 파행으로 얼룩졌다. 더욱이 각 시·도교육청들이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파행을 조장한 사례들이 무더기로 드러나 일제고사 폐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울산시 강북교육지원청이 만들어 학교에 내려보낸 '2013 일제고사 성적 올리기 방안'이란 문서는 A4용지 한 장 반에 걸쳐 일제고사 시험문제의 정답을 고르는 요령을 전수했다. "답지에 '절대로, 반드시, 확실히, 모든' 등 단정적 단어가 들어 있는 답지는 오답일 가능성이 크다"고 안내하는가 하면, "영어문제에서 아는 단어를 찾으면 답이 2개로 압축되고 정답을 찾을 확률도 50%"라고 요령을 설명했다. 교육부가 일제고사의 명분으로 내세운 '기초학력 미달학생 줄이기'를 교육청이 '정답찍기 요령'을 가르쳐 충실히 이행한 셈이다. 

 강북교육지원청은 또 일제고사 날인 25일까지 12일 동안 주중 방과후시간과 주말 부진아 지도를 지시하는 한편, 일제고사에 대비해 학교 자체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를 보고하라고 요구해 사실상 교육과정 파행운영을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서를 본 이 지역 한 중학교 교사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어떻게 교육청이 이럴 수 있나. 이렇게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줄이면 학력이 높아지나"고 한탄했다.

 전교조 각 시·도지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교육청 장학사들이 관내 학교를 돌며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줄이라고 압박을 가한 정황도 드러났다. 장학사들이 다녀간 학교들은 하나같이 학습 부진아를 대상으로 심야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특별 보충수업을 실시하는 등 '벼락치기 공부'를 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충북교육청은 '조화로운 학력신장' 명목으로 25억6900만원을 학교에 보내 50%를 교원 회식비 등 노고 격려금으로 쓰도록 했다. 성적을 올리라고 '기름칠'을 한 것이다. 충북지역 중학교 26곳과 고등학교 6곳을 조사한 결과, 중학교 22곳과 고등학교 5곳 등 거의 모든 학교가 기초학력 미달 예상학생에게 특별 보충수업을 강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 사상구의 한 중학교도 4월 중순부터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대상으로 오후 8시까지 기출문제 풀이를 시켰고, 울산 북구의 한 중학교도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모아놓고 오후 8시까지 반강제로 야간 자율학습을 시켰다. 특히 울산의 대다수 중학교는 자체적으로 분류한 미달학생을 대상으로 1교시 시작 전에 0교시 수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는 점심시간에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모아놓고 매일 20분씩 문제풀이 특별수업을 진행해, 학생의 휴식시간을 빼앗는 등 인권을 침해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권장하고 학교와 교육청 특색사업으로 실시하던 아침독서와 명상시간도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가 일제고사를 앞두고 다투어 '0교시 문제풀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의 ㄱ중 3학년 8개 반 254명은 지난 5월 20일부터 아침독서를 할 수 없게 됐다. 일제고사에 대비해 국어·영어·수학 기출문제를 풀라며 학교가 아침독서를 없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오전 8시 20분부터 1교시 시작 전까지 0교시 시간을 이용해 문제풀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전 ㄴ중학교도 일제고사를 앞두고 아침자습시간에 국어·영어·수학 각 5문제씩 모두 15개의 문제를 풀게 했다. 일제고사 훈련이 꿈과 끼를 살리는 아침독서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부산 ㅇ중학교도 최근 아침독서와 명상을 없애고 국·영·수 문제집을 풀게 했다. 장학사가 '일제고사 대비방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한 뒤 벌어진 일이다. 안동수 전교조 대전지부 사무처장은 "단기성과에만 집착하는 일제고사가 학교 교육과정을 망가뜨려 학력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울산의 한 교육지원청은 1년 동안 사용하도록 돼 있는 학습 부진학생 구제예산을 일제고사 전에 모두 사용하도록 했고, 부산의 한 교육지원청은 지난 5월 말 지구별 교육과정부장 협의회에서 "부진학생에 대한 별도의 대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부산의 한 교사는 "3주 전에는 교육지원청 학무과장이 학교에 오더니 얼마 전에는 중등과장이 와서 일제고사 점검을 하더라"면서 "파행을 바로잡아야 할 교육청이 거꾸로 파행을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11일 "정상 교육과정 운영 저해사례가 발견될 경우 행·재정적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교육청은 전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확인 결과 실제로 일제고사 파행과 관련 행·재정적 불이익을 받은 교육청과 학교는 한 곳도 없었다.

 송병찬 전교조 울산지부 정책실장은 "교육청이 실제로 파행을 조장하면서 말로만 파행사례가 없도록 하라는 것은 낯 뜨거운 말장난"이라고 비판했다.

  최대현, 윤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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