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어처구니 없는 오해
학생 70%가 "6.25는 북침"?

윤근혁 | 기사입력 2013/06/17 [16:05]
뉴스
박 대통령의 어처구니 없는 오해
학생 70%가 "6.25는 북침"?
[분석] 설문당사자도 “학생들이 '북침' 뜻 몰라 헛갈렸다”
윤근혁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13/06/17 [16:05]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분석] 설문당사자도 “학생들이 '북침' 뜻 몰라 헛갈렸다”
 
▲ <서울신문> 6월 11일자 1면 보도 내용.     © PDF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교사들의 역사왜곡 교육에 대해 호통을 쳤다. 그 근거는 <서울신문>이 지난 11일자에 내보낸 “고교생 69%, ‘한국전쟁은 북침’” 기사였다.
 
박 대통령 “잘못된 역사왜곡 교육의 단면”, 정말?
 
<연합뉴스> 등이 보도한 박 대통령의 말을 들어보자.
 
“얼마 전 언론에서 실시한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결과를 보면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교사가) 교육현장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중략)한탄스럽게도 학생들의 약 70%가 6.25를 북침이라고 한다는 것은 교육현장의 교육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 고교생의 절대다수가 한국전쟁은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것(남침)’이 아니라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 것(북침)’이라고 배웠다면 큰일이다. 이는 6.25 전쟁의 실상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과거에 설문조사를 한 사례를 찾아 봤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2004년 5월 청소년(초등학교 5학년 이상 초중고생 대상)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호국·보훈의식 여론조사’가 <서울신문>의 설문과 비슷했다.
 
그런데 당시 ‘남한이 북침을 했다’고 답변한 학생은 고작 0.7%였다.
 
그렇다면 8년 사이에 비슷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왜 100배 가량 차이가 난 것일까? 그 이유를 박 대통령은 ‘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역사를 왜곡했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설문조사를 의뢰한 <서울신문>과 실제로 조사를 진행한 입시업체 <진학사>의 생각은 박 대통령과는 크게 달랐다.
 
이들에 따르면 <서울신문>의 설문조사는 전자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설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전쟁은 남침인가, 북침인가?”
 
이 설문 문항을 본 전문가들은 “‘북침’이라는 말이 ‘북쪽을 침략한 것’인지, ‘북쪽이 침략한 것’인지 학생들이 헛갈렸을 수 있다”, “학생들에게 익숙치 않은 한자어다 보니 ‘북’을 ‘북한이’라고 해석해서 ‘북한이 침략했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질문을 학생들 수준에 맞게 제대로 설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울신문·진학사 “학생들이 북침·남침 용어 헛갈려”
 
실제로 <서울신문>도 해당 기사를 보도하면서 “북침과 남침이라는 용어를 헛갈리거나 전쟁의 발발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용어를 오해할 수 있는 설문 설계였음을 인정한 것이다.
 
<진학사> 관계자는 “설문을 진행할 때 ‘북한의 남침’과 같이 자세하게 묻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남침’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학생들이 용어 자체도 이해 못하고 답변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남침’ 또는 ‘북침’이란 단어를 알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질문지를 분명하게 설계하지 않아 착오가 생겼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0.7%만이 ‘남한이 북침을 했다’고 답변한 2004년 국가보훈처의 질문은 ‘6.25 전쟁을 누가 일으켰느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학생들의 54.5%는 ‘북한’이라고 답했고, ‘남한’이라는 답변은 0.7%였다.
 


▲ <천재교육>이 만든 중학교 <도덕> 교과서.     © 윤근혁

현행 중고교 <도덕>과 <역사> 교과서를 살펴본 결과 이번 <서울신문>의 질문처럼 ‘북침’과 ‘남침’이라는 단어를 별도 설명 없이 단독으로 사용한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6.25 전쟁을 일으켰다(천재교과서)”고 적어놓은 교과서도 있었다. ‘남침’이란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북의 침략을 명확히 기술한 것이다.
 
‘남침’이란 단어를 사용한 교과서도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두산동아)”라고 표현하는 등 북한을 ‘침략의 주체’로 명확히 서술해 혼란을 없앴다.
 
이날 인천지역 한 교사는 박 대통령의 호통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 놓았다.
 
“보충수업 중인 아이들에게 ‘6.25는 누가 쳐들어 온 것이냐’고 물었더니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 온 것’이라고 다들 답변합니다. 그래서 ‘그럼 그걸 북침이라고 하나, 남침이라고 하나’ 했더니, 다들 ‘북침’이라고 합니다. ㅋㅋㅋ”
 
박 대통령과 교육부에 제안한다. 질문 내용을 2004년 국가보훈처의 설문지처럼 고쳐 다시 조사해 보라. 결과는 전혀 딴 판으로 나올 것이다.
 
벌써부터 일부 보수신문은 특정 교원단체와 교사들을 겨냥해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대통령이 준 ‘먹이’를 덥썩 물고 말이다. 하지만 그 ‘먹이’는 오해에서 비롯된 엉터리 불량식품이란 소리가 교육계 여기저기서 들린다.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보냅니다.
이 기사 좋아요
ⓒ 교육희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PHOTO News
메인사진
[만화] 돌고 도는 학교
메인사진
[만화] 새학기는 늘 새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