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슬퍼우먼' 교사의 하루

유성희(전교조 서울지부 정책기획국장) | 기사입력 2013/05/19 [23:55]
특집기획
어느 '슬퍼우먼' 교사의 하루
[현장] 고단한 교사의 삶… 돌아서면 또 업무
유성희(전교조 서울지부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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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5/1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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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단한 교사의 삶… 돌아서면 또 업무
▲     일러스트 / 정평한
 # 1 아침 8시20분

 아이 밥 먹여 등교시키고 출근을 서두른다. 8시30분. 학교에 도착해서 옆자리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다. 바삐 나오느라고 거울도 한 번 제대로 못 보는 아줌마 선생은 젊은 여선생의 화사한 옷차림에도 괜히 서글프다.

 아침조회 종이 울린다. 학급함에서 시간표 변경쪽지와 가정통신문 세 뭉치를 집어들고 교실로 향한다. 계단을 오르면서 아이들에게 강조할 것, 어제 청소 안하고 도망간 녀석들 혼내줄 방법을 궁리하느라 머리가 복잡하다.
 
 # 2 교실 도착

 여자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남자아이들은 벌써 핸드폰에 빠져 있다. 아침부터 엎드려 자는 녀석도 있다. "야! 선생님 왔는데 인사 좀 해라!" 끼어들기 멋쩍어서 구박부터 한다. 아이들을 앉히고 지각 확인. 오늘도 다섯이다. 어제 청소 안하고 도망간 녀석은 아직도 안 왔다. 창밖엔 지각생들이 교문 앞에 줄줄이 무릎 꿇고 이름 적고 벌을 받는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지만 교사들이 이런 걸 논의할 자리는 쉽지 않다.

 가정통신문을 나눠준다. 아이들은 대충 훑어보고 그냥 바닥에 버린다. 평소 반항적인 삐딱이가 한 마디 던진다. "샘, 이제 샘들한테 개기면 전학 가요?" "무조건 가는 건 아니고 선생님의 정당한 지시에 반항해서 선생님들이 '너 때문에 수업 못 하겠다' 할 정도면…" "에이 씨발! 짜증나는 교사도 격리해요! 걔 있잖아, 한문" "야, 억울해도 선생님께 말 좀 정중하게 해라. 샘들이 너만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이 녀석은 수업시간에 떠들었다고 벌점 1점을 받고 기분 나쁘다고 반항했다가 지시 불이행으로 또 벌점을 20점 받아 난리를 쳤다.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연신 욕을 내뱉는다.

 한참 잔소릴 하는데 다른 아이들이 수학여행에 대해 질문을 퍼붓는다. 요즘 아이들은 선생이 다른 아이랑 이야기를 하는데도 눈치 없이 마구 끼어든다. "뭐 입고가요?" "방은 어떻게 나눠요?" "우리도 반티 맞춰요?" 대여섯이 동시에 퍼붓는 질문에 대답하랴, 삐딱이와 못한 애기 하랴, 대답이 늦으면 금세 "샘은 맨날 내 말만 씹어… 씨!" 소리가 들린다.
 

 # 3 조회시간 10분

 이러다 보면 조회시간 10분이 훌쩍 간다. 허겁지겁 교무실로 내려간다. 1교시 시작 5분 전. 부랴부랴 '담임모드'에서 '수업모드'로 전환해서 책·노트북·백묵을 챙겨 또 계단을 오른다.

 나는 주당 수업이 19시간이다. 동아리 3시간과 창체는 별도다. 올해는 스포츠클럽이 교육과정에 들어오는 바람에 7교시가 이틀에서 사흘로 늘었다. 스포츠클럽이 오전이면 남자아이들은 오후엔 아예 대놓고 엎드려 잔다. 체육시간이 주 4시간으로 늘어 신나겠지만 교사들은 7교시가 늘어 피곤하다.

 오늘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이 엎드려 잔다. 모둠활동을 하면 좀 덜하기에 지난번에 모둠활동을 시도했다가, 떠들고 장난을 쳐대는 바람에 고생한 악몽이 떠올라 다시는 도전하고 싶지 않다. 수업을 평가하는 글쓰기 수행평가도 애물단지다. 수업 들어가는 반은 모두 다섯. 한 반 35명, 모두 175명이 쓴 글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다가는 일주일 동안 딴 일은 못 한다.
 
 # 4 수업 없는 딱 한 시간

 오늘 수업이 없는 시간은 3교시 달랑 1시간이다. 1·2·4교시 수업을 마치면 5·6·7교시는 동아리활동이다. 주5일제가 되면서 동아리활동을 2주에 한 번 몰아서 한다. 오늘 같은 날은 철인 3종경기 선수가 된다.

 수업이 비는 3교시. 부랴부랴 독서교육 현황보고를 작성한다. 내가 맡은 업무는 독서교육과 도서관이다. 다행히 작년에 사서 보조교사가 와서 일손은 덜었지만, 윗분들이 독서교육이나 도서관 운영에 대해 보고공문을 내려보내시면, 나는 비는 시간에 쉬지도 못하고 종종걸음을 친다. 컴퓨터는 또 얼마나 느린지, 걸핏하면 멈추고 에러나고…

 종 치기 10분 전. 마음은 급한데 우리 반 녀석이 끌려온다. 수업시간에 화장실엘 간다고 나가서 담배를 피웠단다. 흡연으로 한 번 걸리면 반성문, 두 번 걸리면 등굣길 캠페인, 세 번 걸리면 학부모 면담이다. 이 녀석은 두 번째다. 학년부장이 간단히 조사를 끝내고 "김 선생, 얘 데려가!" 한다. 한숨부터 나온다. 작년에 흡연으로 징계를 받았고 올해도 적발돼 학부모와 전화통화도 했지만 도통 끊을 기미가 안 보인다. 이야기도 못 끝냈는데 종이 친다. 쉬지도 못하고 보고서도 못 끝냈다.

 
 
 
 # 5 점심시간

 급식차가 교실에 도착하고 담임들은 교무실에 책을 갖다놓기 무섭게 교실로 올라간다. 아이들이 복도 가득 줄을 서고, 새치기를 하네 마네 웅성웅성 시끌시끌… 그 틈바구니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민감한 '고기반찬' 배식을 한다. 바쁘다고 아이들에게 맡겼다간 힘센 아이들이 독식한다. 아이들이 먹는 걸 확인하고 급식차를 정돈한 뒤, 얼른 내려와 밥을 먹는다.

 한 술 떠넣기 무섭게 생활지도부장이 "김 선생, 국어과 샘들 1시까지 모이래" 한다. 5분 만에 허겁지겁 입에 쏟아 붓고 교장실로 뛰어간다. 교육청에서 학교폭력 실태조사 참여율이 낮다고 자꾸 연락이 온단다. 수업이 비교적 널널한 국어시간에 아이들을 컴퓨터실로 데려가서 일괄참여 시키란다. 순간 왈칵 짜증이 솟는다. 학교폭력을 어떻게 없앨지 교육적 고민은 없이 참여율에만 집착하는 교육관료들이 한심하다.

 "컴퓨터실에서 일괄참여 시키면 피해학생이 솔직히 쓸 수 없어요. 소용없는 짓을 왜 수업시간까지 빼가며 해요?" 교장도 한숨을 쉰다. 다른 학교도 그렇게 했단다. 참여율이 학교평가에 들어가니 어쩔 수 없단다. 문제제기 하려면 교육청에 하란다. 얘기도 안 끝났는데 5교시 시작종이 친다. 선생님들이 슬금슬금 일어선다. 생활지도부장이 얼른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하고 마무리한다. 할 말은 많지만 나도 5교시 수업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일어선다.
 
 # 6 청소지도

 동아리는 도서부를 맡았다. 전엔 토요일 전일제여서 국립도서관이나 도서전시회도 갔는데, 주5일제가 되면서 오후에만 하니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뭔가 새로운 걸 해볼까 싶지만, 전문 강사를 초빙하자니 돈이 없고 외부에 나가고 싶어도 5시면 학원엘 가는 아이들 때문에 엄두가 안 난다. 결국 동아리가 형식적인 '시간 때우기'가 돼버렸다. 봉사활동도 자치적응활동도 그렇다. 답답하다.

 3시40분. 수업 끝. 아이들은 잽싸게 사라지고 청소당번만 남아 교실 뒷정리를 한다. 청소지도도 쉽지 않다. 눈을 속이며 시늉만 하는 아이들을 보면 한편 이해가 가면서도 열불이 난다. 잠시라도 한눈팔면 도망자가 속출한다. 교육한다고 시늉만 내는 선생들을 본받아서 그런가…
 
   # 7 끝도 없는 업무

 청소지도 끝. 이제 업무처리 시간. 저소득층 프로그램에 신청한 아이를 위해 담임추천서를 써야 한다. 아까 끝내지 못한 보고공문도 완성해야 한다. 담배피우다 걸린 녀석 엄마한테 전화도 해야 한다. 그 와중에도 계속 쪽지가 날아온다. 하지도 않은 교과협의회 결과를 적어 동일교과 7명의 사인을 받아 제출하란다. 시험문제 출제 마감이 다음 주란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쪽지가 또 날아온다. 성과급이 입금된단다. 작년에 도서관을 담당하는 바람에 담임도 안 하고 수업도 적게 했더니 최하 B등급을 받았다. 도서관 행정업무가 얼마나 많은데… 슬슬 화가 난다.
 
 # 8 벌써 5시가 훌쩍

 집에선 저녁밥 달라고 아들 딸 전화가 온다. 수업준비는 언제 하고, 아이들 상담은 언제 하나…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오늘까지 기일 엄수하라는 보고공문만 겨우 끝내고 가방을 들쳐메고 일어선다.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 교무실을 나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하늘이 노오랗다.
 
 유성희·전교조 서울지부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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