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 교사로 산다는 것은…

강성란 | 기사입력 2013/04/21 [19:41]
참교육실천
일반고 교사로 산다는 것은…
비상구 없는 '나 홀로 50분'
강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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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4/2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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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 없는 '나 홀로 50분'

▲ 점심먹으러 학교에 온다는 아이들, 그나마 서너명 안 자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며 참담한 가슴을 쓸어내린다는 교사들, 수업시간 교사는 없다. 지난 17일 서울 ㄱ고     © 안옥수

 교실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오늘 이 교실에서 무얼 한 걸까?
 
  책상 위에 탁상달력을 세워두고 뒤에 숨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진 녀석, 수업 시작 뒤 줄곧 창밖으로 시선이 고정된 아이, 모둠수업도 아닌데 작정한 듯 책상을 나란히 붙이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 녀석들,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또 문 앞에서 창가 자리로 장거리 대화를 시도하는 녀석, 벌써 과자 한 봉지를 해치우고 봉지 째 입에 대고 알뜰히 털어먹는 녀석……

 뒤통수 자랑하며 책상에 엎어진 아이들은 셀 수도 없다. 졸음을 쫓기 위해 교실 뒤에 세워둔 스탠딩 책상을 베개 삼아 잠든 녀석의 모습은 차라리 귀엽다. 무단 결과로 구멍이 숭숭 뚫린 출석부에 찬바람이 분다.
 
 '고교 서열화' 직격탄 맞은 일반고
 올해 초 일부 언론보도를 통해 확산되기 시작한 '일반고 슬럼화' 논란이 뜨겁다. 교육부는 "일반고 교육역량 제고 대책을 세우겠다"면서 뒤늦게 진화에 나섰지만 이명박 정부가 '고교 다양화' 이름으로 추진한 '고교 서열화' 때문에 일반고는 직격탄을 맞았다.

 특목고·자사고·자공고… 새로 등장한 고교 서열체제에서 일반고는 바닥으로 밀려났다. 게다가 예전의 실업고인 특성화고에서 떨어져 갈 데 없는 아이들도 일반고로 모인다. 결국 성적이 낮고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들이 일반고로 쏠리면서 교육 사각지대를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조영선 전교조 학생인권국장은 "고교입시에서 실패를 맛본 아이들이 스스로 패배자 낙인을 찍고 무력감에 빠져 있다"고 분석했다.
 
 소통 없는 수업 "참담하다"
 일반계 고교인 서울 ㄱ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석진호 교사는 교사들의 현재 상황을 '나 홀로 50분'이란 말로 표현했다. 그는 "'내가 더 노력해야지' 다짐하지만 자는 아이들을 깨우고 딴 짓하는 애들까지 추스르다 보면 진도를 놓치게 된다. 결국 수업을 듣는 서너 명만 데리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나도 인간인지라 더 이상 잘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자는 아이들을 깨워 책을 읽히거나 잠이 깰 때까지 교실 뒤에 서 있게 하는 등 나름의 방법을 써보지만 근본적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석 교사도 알고 있다. 같은 학교 김 아무개 교사는 "실제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30여 명 중 6~7명에 불과하다"면서 "아이들과 소통 없이 50분을 혼자 떠들다보면 외롭고 버려진 느낌이 든다. 참담하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아이들에게 '50분 중 30분만 열심히 하면 20분은 자유시간을 주겠다'고 타협안을 낸 그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몇몇 아이들에게서 역설적으로 수업할 힘을 얻는다고. 김 교사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수업개선 연수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차라리 담임이 낫다?
 "1학년 아이들이 점점 나빠진다는 말은 일반고 어디서나 듣는 말"이라고 밝힌 ㅅ고 송 아무개 교사는 "교과서 수준을 따라갈 수 없는 아이들이 한 반 30 명 중에서 10명 이상 되는 것 같다"면서 "이 아이들은 수업에 의욕이 없고, 동기부여 할 만한 학급 분위기도 만들기 어려워 조금 더 노력하면 좋아질 것 같은 아이까지 수업을 포기하게 된다"고 전했다. 송 교사는 "담임역할이 차라리 낫다"고 했다. 담임 입장에서 학생들을 만나면 비상구 없는 아이들의 상황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아이들을 수업시간에 만나는 순간 "좌절하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미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는 "고민 끝에 지금은 입시위주가 아니라 아이들 수준에 맞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통제와 일탈의 악순환
 위기감을 느낀 교사들은 통제를 강화하려 하고 아이들은 일탈행동으로 이에 맞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ㅅ고 송아무개 교사는 "아이들이 재미 삼아 교실에 소화기를 뿌리는 등 일탈행동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ㅅ고 최인환 교사도 "최근 들어 교사와 마찰을 일으켜 학생부에 끌려오는 아이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전했다. 잠을 깨우거나 수업태도를 지적하는 교사에게 반감을 표시하는 학생이 늘면서 교사들도 아이들을 제어하기 위해 '벌점' 카드를 빼드는 사례가 잦아졌다는 것이다.

 송 교사는 "생활지도부장이 아이들을 징계하기보다는 함께 산행도 하고 인간적 교류를 시도하며 바꿔나가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방식은 시간이 필요하다. 다급해진 교사들이 아이들을 자꾸 학교 밖으로 솎아내려고 하는 것 같다"고 느낌을 전했다. 

▲ 비상구 없는 학교, 아이들 출석부는 무단 결석 등으로 구멍이 숭숭 뚫렸다.     © 안옥수

 일반고 정상화, 근본적 변화 필요
 학교 주변 아파트 경비실에서 걸려온 "애들이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운다. 똑바로 가르치라"는 전화에 "우리는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적 없다"고 답했다는 생활지도 교사의 자조 섞인 한탄은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교사들은 "자립형 공립고든 특성화고든 교사들은 5년에 한 번씩 학교를 옮긴다. 그런데 왜 일반고에서만 이런 좌절감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털어놓는다. 하지만 "학교에 점심 먹으러 온다", "교실분위기가 원래 그러니 잔다"는 아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자니 아이들이 처한 상황도 처절하긴 마찬가지다.

 최인환 교사는 "수업방법도 바꿔보고 애들 탓도 해봤지만 모두 정답은 아니"라면서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퇴근해도 수업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의 무기력한 표정과 몸짓이 잔상으로 남아 무척 힘들다"는 최 교사의 고백은 비단 그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강성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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