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차 알려드려요” ‘미끼상품’된 일제고사

▲ 한 유명학원인 H업체 사이트.     ©운영자

 
“우리지역 학교가 다른 지역에 가면 몇 위가 되는지 검색해 보세요.”(유명 사교육업체 H회사)
 “신도시 지역 초등학교들의 약진이 돋보입니다.”(경기 파주 P학원)
 
전국 사교육업체에 ‘학교석차 매기기’ 경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유행은 전국단위 유명학원은 물론 동네학원까지 퍼졌다.
 
지난해 말 초6, 중3, 고2를 대상으로 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결과가 학교별로 공개되자 사교육업체들이 지역 또는 전국단위로 ‘학교 순위표’를 만들어 올해 1월쯤부터 일제히 자사 사이트 등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국 학생이 한 날 한 때에 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치르는 일제고사의 결과가 사교육업체들에 의해 ‘미끼상품’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H업체 등 일제고사 ‘알리미 사이트’ 자료 재가공
 
초중등 학생 대상 가정방문 학습사업을 새로 시작한 유명 특목고 입시업체인 H사는 최근 전국 초중고의 학력수준 비교 사이트를 만들었다.
 
5일 ‘우리지역 학교를 다른 지역 학교와 비교해 보기’란 제목이 적혀 있는 H사의 신설 가정방문학습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학교 이름만 치면 지역별 등수가 나오고, 이를 다시 서울 ‘강남구’ 등의 학교 등수와 비교할 수 있었다.
 
H업체 관계자는 “전국 1만2000개 초중고가 일제고사 결과를 제각기 ‘학교 알리미’ 사이트에 올린 것을 우리가 수집한 것”이라면서 “학교별 사이트에서 수합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고 한 달 정도면 전국 석차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과부는 일제고사 결과를 학교별로 ‘보통 이상’,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등 3단계로 나눠 그 비율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사교육업체들이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자료는 고급정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학부모, 학생 등과) 컨설팅할 때 쓴다”면서 “석차 정보는 몇몇 언론사에 제공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전국 입시학원 전문포털’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또 다른 H업체도 초중고 석차를 자체 사이트에 올려놨다. 이 업체 대표도 “일제고사 결과를 수합해 학교석차를 올려놓는 일은 우리뿐만 아니라 입시업체에서 워낙 많아 일반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 경기 파주지역 한 학원이 공개한 이 지역 초등학교 석차.     © 운영자

 
학교석차 공개현상은 동네학원으로까지 퍼져 나가고 있다. 경기 파주지역의 P학원은 지난 해 12월부터 ‘파주 관내 초중고 학업성취도 평가결과표’를 지역 학부모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올려놨다. 이 자료엔 학교이름과 함께 과목별로 ‘보통 이상’인 학생의 비율을 적은 뒤 등수를 매겨놓았다.
 
이 학원 대표는 “사업적인 목적보다는 학부모에게 지역학교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 “낙인효과만…”, 교과부 “개선방안 마련 예정”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는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줄인다는 목적에서 일제고사를 부활시켰지만 그 결과가 사교육업체의 상업적인 학교서열화 자료로 악용되고 있다”면서 “일제고사 정보공개가 학원에게는 ‘미끼상품’으로 악용되고 학생에게는 낙인으로, 학부모에게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교과부 관계자도 “변별력도 없는 일제고사 결과를 갖고 학원들이 마음대로 학교석차를 매기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이라면서 “앞으로 발표할 일제고사 개선방안에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시험결과 공개방식을 변경하는 방안도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