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 교과서가 ‘교과용 도서’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2025년 8월 4일,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의무 도입이 추진되던 새로운 형식의 교과서는 학교장 재량으로 선택하는 ‘교육자료’가 되었다. 교육부는 명칭을 ‘AI 교육자료’로 바꾸고 일부 선도학교를 중심으로 단계적 운영만 이어갈 예정이다. 정책이 사실상 전면 수정된 것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무엇보다 현장이 준비되지 않았다. 학교의 무선인터넷 인프라는 부족했고, 아이들의 디지털 기기 과의존은 이미 오랜 걱정거리였으며, 교사의 업무는 더 늘어날 참이었다. 기술은 있다지만 그 기술을 감당할 조건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 시점만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무엇을 위해 왜 이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합의보다, 언제까지 무엇을 도입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일정이 앞섰다. 교육 정책이 산업 정책의 속도로 굴러갈 때 벌어지는 일이다.
사실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간 나라들이 있다. 그 국가들의 성적표는 이미 공개된 상태다. 스웨덴은 2017년부터 유치원과 학교에 디지털 기기 사용을 의무화했다가, 지금은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종이 교과서를 다시 도입하고 손글씨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교육 혁신의 대명사였던 핀란드도 학생들의 집중력 저하 등을 겪은 뒤 2024년부터 종이 교과서를 부분 재도입했다. 노르웨이 역시 전반적인 성취도 평가에서 하락 추세가 나타나자 (특히 초등학생들의) AI 사용을 제한하고 교실 내 종이책 사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상태다. 실리콘밸리의 대규모 투자를 받아 AI 기반 맞춤형 학습을 실험했던 미국의 알트스쿨 역시 높은 운영비에 반해 확장성이 부족하여 6년 만에 문을 닫았다. 유네스코는 전 세계 국가의 58%가 학교 내 디지털 기기를 규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례들은 AI 교과서가 문해력은 물론 학업 성취와 사고력 배양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의 발달심리언어학자 매리언 울프의 표현을 빌리면, 화면 위의 읽기는 훑어보기를 훈련시킬 뿐 깊이 읽기의 회로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울프는 기술반대론자가 아님에도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 사안에는 문해력이나 성취도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걸려 있다. 사회화의 본질은 관계 속에서 책임과 배려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관계는 서로에게 책임을 지고 서로를 배려하라고 요구한다. 짝꿍의 기분을 살피는 일, 약속을 지키느라 하고 싶은 것을 미루는 일, 내가 한 말이 남긴 자국을 감당하는 일. 학교가 하는 일의 절반은 사실 그런 훈련이다. 그 요구를 감당하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기계와 맺는 관계에는 그런 요구가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나-너’의 관계와 ‘나-그것’의 관계를 오가며 산다. 기계와의 관계는 아무리 정교해도 ‘나-그것’이다. 언제든 끄고, 지우고, 폐기할 수 있다. 상대가 나를 붙드는 힘이 없다. 책임 있는 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앞의 타인은 그 얼굴만으로 그런 책임을 나에게 요구한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나에게 응답하라고. 화면에는 그런 책임의 얼굴이 없다.
문제는 이 비대칭이 사람 사이로 옮겨붙는다는 데 있다.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오래전부터 기계와의 매끄러운 소통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사람과의 어색하고 지연되는 대화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고 경고해 왔다. 기계는 기다리게 하지 않고, 반박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다. 그 편의에 길들면 사람이 주는 마찰이 결함처럼 느껴진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의 사랑을 언제든 해지할 수 있는 접속에 비유했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 번지는 ‘손절’의 문법이 꼭 그렇다. 불편해지면 끊고, 응답하지 않고, 차단한다. 관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기계를 대하는 방식을 먼저 익힌 세대에게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할 것이 아니라 언제든 선택하고 취소할 수 있는 선택이 되어 버린다.
한나 아렌트는 교육을, 먼저 온 세대가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새로 온 이들을 그 세계에 소개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우리 시대는 그 세계에 대한 책임을 기계와 자연에까지 확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요점은 얼굴을 맞대고 서로에게 책임지는 법을 배운 아이라야 기계와도, 자연과도 책임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데 있다.
AI 교과서 정책의 수정을 기술에 대한 거부로 읽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순서에 대한 요구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깊이 기계와 얽혀 살아갈 것이고, 그때 필요한 능력은 기계를 빨리 다루는 솜씨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무엇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를 판단하는 힘일 것이다. 그 힘은 기계가 아니라 소위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더 잘 배양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접속이 아니라 쉽게 끊어지지 않는 관계다. 사람에게 책임지는 법을 먼저 배운 다음에야, 기계도 책임 있게 다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