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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8일 교육부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와 관련한 설명자료를 발표했다. © 교육부 설명자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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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C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가 자살 위험 학생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를 보도했다. 교육부는 곧바로 설명자료를 통해 예산 집행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검사 제도 개선과 보호자 인식 제고 방안을 밝혔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따지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논란을 지켜보며 현장의 전문상담교사인 나는 자꾸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검사가 놓친 학생을 학교는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국민이 궁금한 것도 바로 이것 아닐까. 270억 원의 예산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넘어, 왜 위험에 처한 학생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다시는 그런 학생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는 분명 필요한 제도다. 학교는 매년 검사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상담과 치료를 연계하기 위해 노력한다. 많은 학생들이 이 제도를 통해 적절한 도움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한 가지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가 모든 위험 학생을 찾아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 검사는 학생이나 보호자가 직접 응답하는 자기보고식 선별검사다. 자신의 고통을 숨기는 학생도 있고,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초등학생은 보호자가 대신 응답하기 때문에 보호자의 인식과 이해 수준도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떤 검사도 모든 위기 학생을 완벽하게 찾아낼 수는 없다. 그래서 이번 논란의 핵심은 검사의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데 있지 않다.
검사는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짜 중요한 일은 검사 결과가 나온 이후부터 시작된다. 학생을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듣고, 담임교사와 함께 학생의 학교생활을 살피고, 보호자를 설득하며,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기관으로 연계하고, 이후에도 학생이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일. 학생의 생명을 지키는 과정은 단 한 번의 검사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학생을 살리는 것은 검사 결과표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학교가 학생을 외부 상담기관이나 의료기관에 연계해도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상담 진행 상황을 충분히 공유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위(Wee)센터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의뢰한 결과가 수개월이 지나서야 학교로 회신되는 일도 있다.
그동안 학생은 매일 학교에 나온다.
학교는 학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면서도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공유받지 못한 채 학생의 하루를 함께 보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 학생의 작은 변화를 읽어내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학생의 위험 신호는 검사 결과지만에만 담기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결석, 무기력한 표정, 친구 관계의 변화, 수업 태도의 변화, "요즘 저 친구가 걱정된다"는 또래 학생의 말 한마디가 더 중요한 신호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검사가 놓친 학생을 학교는 다른 방법으로 발견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학생 자살예방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교육부는 최근 예방·감지·개입·회복·기반의 5단계 전략을 제시했다. 방향은 옳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는 일이 아니라 그 다섯 단계가 학교에서 실제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예방은 학생과의 신뢰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감지는 검사와 함께 교사의 관찰 속에서 완성되며, 개입과 회복은 전문상담과 학교,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학교 현장에서 이 다섯 단계가 하나의 안전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문서에 머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책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경험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선별검사의 한계도,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가 어려운 현실도, 위기 학생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고민도 모두 학교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과제다. 이제는 현장의 경험이 정책 결정 과정에 더 깊이 반영되어야 한다.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는 필요하다. 그러나 학생의 생명을 한 장의 검사지만에 맡겨서는 안 된다. 학생을 살리는 것은 학생의 작은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학교이고, 끝까지 곁을 지키는 사람이며, 그 관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정책이다. 우리가 이번 논란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는 교육부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지키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