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지 선생님, 안녕하세요!
방학을 이틀 앞두고 마지막 힘을 짜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옮긴 학교에서 벌써 한 학기가 지나갔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직 이 학교에 한 학기밖에 없었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다사다난 그 자체였던 한 학기였어요. 학교 옮기면 다시 신규가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게 된 반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편지에 큰 위로를 얻었어요.
‘선생님은 교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라는 문장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 집에 가서도 학생 생각에 머리가 아플 때가 있습니다. 잘 해내고 싶은데, 최선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화가 날 때도 있고요.
특히 생활지도가 그렇습니다. 내가 너무 단호했나? 내가 너무 화를 냈나? 내가 너무 물렁했나? 내가 학생들을 일관성 없게 대했나? 내가 차별 대우를 했나? 계속된 질문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 친한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대선배님께서 ‘가르치는 것은 씨를 뿌리는 일이다.’라고 해주셨답니다. 식물이 씨를 뿌리자마자 싹을 틔우고 잎을 피우지 않듯이, 가르침도 결과를 즉시 관찰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마음을 좀 편하게 가지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이 큰 변화를 보이지 않더라도, 빠른 개선을 보이지 않더라도, 마음 속에서는, 그리고 생각으로는 엄청난 투쟁을 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이해심을 가져보려 합니다. 성격이 급한 제게는 어려운 일이지만, 이렇게 또 성장하는 것 아닐까요?
문해력을 위해 어휘왕 대회를 준비 중이시라니 너무 대단하십니다! 저도 학교에서 가장 절망스러울 때를 꼽자면 학생들이 기초적인 어휘를 모를 때입니다. 통합사회 수업 중 낙농업, 수렵 등의 단어를 학급의 모든 학생이 몰라 당황한 적도 있습니다.
기초학력 수업에서는 더 심각합니다. ‘유해하다’, ‘고갈되다’, ‘교류하다’ 등의 단어도 모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휘 등 기초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활동형, 프로젝트형 수업이 가능한 것일까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나무가 있어야 집을 짓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저도 그래서 학기말 여유시간을 활용하여 어휘 초성퀴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맞추면 마이쮸를 상품으로 주고요. 생각보다 학생들이 열심히 참여해서 제가 매우 신이 납니다. 신기한 점은 성적이 높은 학생이 어휘퀴즈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성적이 낮은 학생이 어휘퀴즈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나도 잘 하는 것이 있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학교는 학기말 자율주간을 맞아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학급 자율 활동 2시간이 있는 날입니다. 저희 반은 랜덤 화채를 하기로 했어요! 학급비로 수박과 얼음만 사고, 나머지 재료는 각자가 하나씩 가져와 우리 반만의 화채를 만드는 활동이에요. 학생들이 재료를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아 수박얼음비빔이 될까 걱정은 되지만 기대가 더 큽니다. 건강한 상호의존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저는 몽골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점점 스마트폰 중독이 심해지는 제게 내린 극약처방입니다. 인터넷도 안 터지고 제대로 된 냉방시설도 없는 대자연으로 들어가 인간 본연의 가치를 느껴보고 싶어요. 사실 이미 마음은 몽골 대초원입니다. 학생들에게도 너무 많이 자랑해서 전교생이 다 알고 있습니다.
이연지 선생님도 방학에 즐거운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지난 한 학기의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잊고! 새롭고 즐거운 2학기를 맞이하기 위해 팡팡 쉬어봅시다! 행복한 여름 되시길 바랍니다!
2026년 7월
생활기록부를 쓰려했지만 편지를 쓰다 신나버린,
정환윤 드림